‘풀뿌리 혁명’뒤에 운명의 두 여인 있었다
  • 타이베이 김진화 편집위원 ()
  • 승인 200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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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 총통 당선자 뒷얘기/반신불수 아내․여성운동 대모 ‘내․외조’큰 공헌

타이완 역사를 바꾼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정치적 성공은 두 여인과의 숙명적인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한 여인은 인간 천수이볜의 인성(人性)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또 한 여인은 그가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천수이볜은 남부 타이난(臺南) 현사탕수수밭 노동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네에서는 그를 아벤이라고 불렀다. 일자무식이고 가난한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아벤을 수도 타이베이에 사는 동생 집으로 보내 대학에 다니게 했다. 동생 집도 찢어지게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타이완 대학 2학년 때 충쉰 대학 신입생 우수전(吳淑珍)과의 만남은 아벤의 인생에 전환점이었다. 최근 우수전은 몇몇 기자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아벤과의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내 기숙사에 찾아와서 2시간씩 기다리다 나를 만나곤 했지요. 말은 주로 내가 했고 그는 듣기만 했습니다. 그는 일과 공부에만 빠져 유머 감각이 없는 멋 없는 남자였지요. 한번은 내가 고향에 갔다오는 길에 기차가 고장 나 6시간 연착해 새벽에 도착했습니다. 아벤은 추위에 떨며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는 아벤에게 ‘물’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물처럼 심심하고 냄새 없고 색깔도 없으며 순수하다는 뜻으로.

우수전은 아버지가 의사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난에 찌든 아벤에 대한 동정심과 그의 순수하고 성실한 성품에 끌려 스물두 살 때 두 살 위 아벤과 결혼을 결심했다. 아버지는 이 결혼에 반대해 결혼식에 불참하고 지참금도 주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결혼을 감행했다.

아내 설득으로 시국 사건 변호
아벤이 정치라는 관문에 들어서게 된 직접적 계기는 ‘카오슝 사건’이었다. 1979년 말 계엄령 하의 카오슝(高雄) 시에서 벌어진 15만 시민의 반정부․반독재 시위로 천여명이 체포되었다. 변호사 아벤은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처형 위기에 처한 주범들을 위해 변호해 달라는 간청을 받았다. 정치에 관심도 없고 시국 사건에 말려들기를 꺼리던 아벤을 설득해 변호를 맡도록 적극 설득한 것은 아내였다. 이때부터 이미 우수전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의식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 변호사 아벤은 재판 과정에서 국민당의 폭정과 타이완인의 인권 실태, 타이완 독립의 당위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군사 법정에서 아벤은 또 한명의 여인 뤼수이렌(呂秀蓮)을 만났다. 그녀는 군중 집회에서 반정부 연설을 한 반란죄로 12년 징역형을 받았다. 후두암을 앓고 있던 뤼수이렌은 아벤의 변호로 6년간 복역하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50쪽 인터뷰 기사 참조). 이 재판을 계기로 변호사 아벤은 정치인 천수이벤으로 변신해 타이완 독립과 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그가 만난 시국 사범들은 훗날 민진당 창당의 주역이 되었고, 성장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여인과 한 남자의 만남은 20년 후 타이완의 역사를 바꾼 ‘총통 선거 혁명’으로 꽃을 피웠다.

정치에 뛰어든 천수이벤은 1985년 타이완 현장 선거에서 참패했으나 당시 그의 인기에 놀란 국민당 정보부는 그를 암살 대상으로 지목했다. 암살자는 대낮 시내 한복판에서 트럭을 몰아 군중과 인사하던 아내를 세 번 들이받았다. 아내는 척추가 서른 조각으로 동강 나 가슴 아래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아내 우수전의 참극은 천수이벤으로 하여금 정치 테러와 부정, 독재 정권과 국민당에 대한 무한 투쟁을 결심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아내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그의 존경심과 평등 의식, 여권 신장에대한 신념이 굳어 지는 계기도 되었다.

그의 신념은 총통 선거 러닝메이트로 여성운동의 대모(代母) 뤼수이렌을 택함으로써 극적으로 표출되었다. 뤼수이렌은 국립 타이완 대학과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원과 일리노이 대학원 법과를 나온 수재. 20대에 여권운동에 투신한 화려한 경력과 국제 경험, 유창한 영어와 화술, 설득력 있는 연설, 국제 사회에서의 폭 넓은 교우 관계를 밑천으로 각종 국제 회의에서 타이완을 대표했다.

천수이벤은 그의 아내가 지적했듯이 말수가 적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 어색해 하는, 혼자 있기 좋아하는 수줍은 남자였다. 원만한 대인 관계가 필수 조건인 정치판에서 천수이벤의 기질은 치명적 단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부잣집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아내는 재기발랄하고 활달하며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다. 천수이벤은 아내의 꾸준한 내조 덕분에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정치판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천수이벤은 달변도 열변도 아니다. 그의 연설은 느리고 역양은 단조롭다. 신통치 않은 영어 실력에다 타고난 수줍음 때문에 외국인을 만나면 어딘가 편치 않고 어색한 느낌을 준다. 그는 총통 선거 후보자 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교육받지 않았으며, 그래서 외굑․국제 문제에 정통하지 못한 것이 약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아내가 뤼수이렌을 러닝메이트로 추천
결코 빼어난 미인은 아니나 세련된 패션 감각과 우아한 지성미를 겸비한 국제․외교통 뤼수이렌은 ‘타이완 촌남자’ 천수이벤의 약점을 메우는 ‘외주’를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이 타이완 외교가의 중평이다. 1998년 7월 타오유안(桃園) 현 지 사실에서 그를 만난 기자의 취재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타이완에서 여성 총통이 탄생한다면 이 여인일 것이다.’ 뛰어난 두 여인으로부터 내조와 외조를 함께 받을 수 있는 천총통은 정치적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뤼수이렌과 우수전, 두 여인은 그들의 연령 차만큼이나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기자는 뤼부총통과 가진 인터뷰에서 20여 년간 정치적 동지로서 두 여인 사이에 갈등이 없었는지 물어 보았다. 그녀는 “여자 사이에는 흔히 질투 같은 게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우수전은 나를 러닝메이트로 택하도록 남편에게 강력히 추천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천총통과 우여사로부터 직접 들은 얘깁니다”라고 털어놓으며 우여사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우여사가 앞으로 어떤 정치적 역할을 맡고 싶어하는지 뤼부총통 당선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용기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는 여성입니다. 신체 장애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당선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힘든 일입니다. 미혼인 나도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서 남편과 신체 장애자인 부인이 함께 정치를 한다는 것은 그 가정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민진당은 이번 선거에서 타이완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여성 신장 공약을 내걸었다. 천수이벤은 선거 유세에서 오른쪽에는 휠체어 탄 부인을, 왼쪽에는 뤼수이렌을 대동하고 나타나고는 했다. 이 ‘그림’은 어떤 선거 공약보다, 어떤 선거 포스터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으로 여성 유권자를 끌여들였다. 반신불수 아내를 평생 극진히 보살피는 남자, 가부장적 남성 지배의 정치판에서 여권운동의 상징적 존재를 부총통으로 택한 남자, 그는 타이완 여성의 선택일수밖에 없었다. 차점자를 2%차이로 누르고 국민당 반세기 독재를 무너뜨린 천수이벤과 두 여인의 만남은 민주화를 향한 타이완의 숙명이었던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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