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왕’ 역사 속으로 걸어가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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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왕 김 일 선수(71)는 공식 후계자인 이왕표 선수에게 호랑이가 새겨진 가운을 물려준 뒤, 눈을 감은 채 한참을 링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역도산 밑에서 돌에 이마를 부딪는 훈련을 하며 일본인 오오키 긴타로로 활동하던 자신의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검은색 부츠를 신고 세계의 내로라 하는 ‘반칙왕’들을 물리치고 수많은 타이틀을 차지했을 때의 모습이었을까.

 3월25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박치기왕 김 일 선수 은퇴식’은 시종일관 숙연하게 진행되었다. 김선수는 지병 때문에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링 위에 올랐지만, 굵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스승인 역도산 밑에서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때 잘 참고 팬들이 도와준 덕에 정부로부터 훈장(체육훈장 맹호장)까지 받고, 이런 영광된 자리에도 서게 되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 날 옛 영웅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자리에서는 그가 박치기 한 방으로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모습뿐만 아니라, 거구(키 185㎝ ․몸무게 130㎏)를 이끌고 불우한 이웃을 돕던 모습이 기록 화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관중석에는 나이 든 팬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객석의5분의 3쯤은 비어 있었다. 옛날의 그 짜릿한 기분을 맛보기 위해 잠시 은퇴식에 들렀다는 한 택시 기사(60)는 “일본인들이 진작(1994년)에 열어준 은퇴식을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갖는 것과, 관중이 이렇게 적은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영웅을 받들고 만드는 데 인색하다는 것을 뜻한다”라며 아쉬워했다.
吳允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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