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덮친 특혜 의혹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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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평민당의 수서지구 특별분양 ‘협조공문’ 말썽
 서울 강남구 수서지구 주택조합 ‘특혜분양’ 시비가 일면서 여야 고위층이 다 같이 관련됐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와 ‘뇌물 외유’ 사건으로 가뜩이나 움추러든 정가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이 의혹은 청와대와 평민당이 군부대 언론사 금융기관 등 막강한 힘을 가진 기관의 연합주택조합에 ‘특혜성 우선 분양’을 해주도록 도와준 ‘흔적’이 밝혀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 연합조합이 서울시에 특별분양을 요구한 직후인 90년 2월16일 청와대 비서실은 “적법한 가격으로 우선 공급하는 등의 방안을 건설부와 협의·검토, 적의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달라”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민원서 이첩 형식으로 서울특별시장에게 보냈다. 이 공문에는 당시 洪性澈 비서실장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이어 8월 30일 평민당은 “조합주택 건설용지의 환지 및 우선 분양이 옳다”는 검토의견과 함께 협조공문을 건설부장관과 서울특별시장 앞으로 보냈다. 이 공문에는 金大中 총재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또 지난 연말 연합조합측의 ‘택지 특별공급에 관한 청원’을 받은 국회건설위원회는 “특별분양을 해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함께 구설수에 올랐다. 게다가 시공업체인 (주)韓寶건설과 여야 고위층이 관련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나오면서 ‘특혜’ 의혹은 더욱 부풀고 있다.

 이번 ‘수서 사건’은 지난 1월21일 서울시가 26개 연합직장주택조합에 특별분양키로 최종 결정함으로써 서울 시정을 맡고 있는 행정위로 떠넘겨진 상태다. 이를 두고 행정위 소속 위원들은 “건설위가 벌여놓은 말썽을 행정위가 뒷처리하게 됐다”고 푸념하면서 청와대 비서실뿐 아니라 야당 총재까지 구설수에 오른 이번 사건을 과연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더구나 주택청약예금이나 청약저축 가입자들은 특별분양으로 입주의 기회를 잃게 됐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한편 서울고등법원에도 소송을 제기, 특혜파문은 법정으로까지 번지는 등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주무부서인 서울시와 건설부, 국회 건설위는 책임회피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 청원심사 후 ‘불가’ 입장 바꾼 서울시

 특혜 의혹은 서울시가 지난 1월 30일 3층과 5층 이하고 건축 높이가 제한되어 있던 15·16·18블록에 대해 모두 15층 이상 고층 아파트 건립을 허가하는 등 원칙을 깨뜨리면서 증폭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혹의 소지는 그 전부터 있었다. 89년 12월 26개 연합직장주택조합(조합원3천3백60명)이 (주)한보건설의 임원 ㅊ씨 등 4명의 소유였던 이 지역내 자연녹지 4만 9천여평을 사들인 것 자체가 문제의 발단이 됐던 것이다. 이들 조합은 88년 2월부터 89년 12월 사이에 개별적으로 설립인가를 얻은 뒤 이 땅의 매입을 추진, 89년 12월 인수를 마치고 연합조합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녹지인 이 땅이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된 것은 소유권이 이전되기 9개월 전인 89년 3월 21일. 일의 진행 순서로 보아 이 땅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땅의 용도변경이 추진됐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연합조합은 90년초 서울시에 특별분양을 요구했고, 청와대 비서실이 서울특별시장에 공문을 보낸 것은 90년 2월 16일. 평민당 김대중 총재 명의의 공문이 발송된 것은 같은해 8월 30일이다.

 의혹설을 따른다면, ‘힘센’ 기관의 조합들이 자연녹지를 사들여 용도변경을 하고, 뒤이어 청와대와 야당까지 끌어들여 특별분양허가를 받아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평민당 공문에는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의 해석에 근거해 “기득권을 가진 주택조합에 대해 택지를 우선 공급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민원인(주택조합측)들의 주장을 전폭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첨부돼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건설부와 서울시는 특별 공급 불가 입장이었다. 한편 주택조합측은, 공영개발은 개발방식상의 문제일 뿐 무주택자에게 주택을 공급한다는 기본 취지와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서울시가 특별공급 불가 방침을 확정 발표하자 주택조합은 10월 27일 국회 건설위원회에 택지 특별공급에 관한 청원(소개자 李台燮의원)을 접수시키면서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게 되었다.

 특별공급 불가를 고수해온 서울시가 국회의 청원심사 후 당초 방침을 뒤집자 당사자 간의 말썽은 정치성 의혹으로 번졌고, 특히 26개 연합직장주택조합이 ‘막강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데 대해 일반분양 대상자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연합주택조합은 한국산업·한일·외환·주택은행 농협 대한투자신탁(2개 조합) 대한투자금융 서울투자금융 동양증권 건설공제조합 한국신용평가(주) 금융결제관리원 한국금융연수원 등 14개 금융기관, 중외제약, 그리고 경제기획원 농림수산부 서울지방국세청 한국감정원(3개 조합) 한국전기통신공사 등 정부관련기관, 이밖에 <매일경제신문> <내외경제신문> 등 2개 언론사, 강남 경찰서, 군부대 한곳 등이다.

 서울시에 몰려와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일반분양 대상자들은, 이들 주택조합의 상당수 조합원들이 이미 주택을 가지고 있는 무자격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도 그런 조합원이 일부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주택조합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가 특별공급에 반대했던 것은 일반분양을 확대해 특정 건설업체에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위와 행정위 소속 의원들도 이번 사건이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는 듯하지만, 관련 법조항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일 뿐 특혜 시비로까지 비화 시키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한다.

‘오해의 소지’ 안은 경솔한 조처들
 건설위의 평민당 간사인 李原湃 의원측은 “주택건설촉진법과 택지개발촉진법에는 특례조항이 있기 때문에 주택조합에 대한 우선 공급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 “투기 가능성이 높은 일반분양 대상자와 내집마련을 위한 주택조합원 중 어느쪽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서민 주택난 해소에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또 청원심사에 참여했던 건설위 소속 의원들도 “청원심사는 강제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현행법상 특별공급이 가능하다면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특별공급이 되고 안되고는 행정부의 판단에 달린 것이지 국회의 청원 심사 결과가 이래라저래라 하고 행정부에 강요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민당의 의견서 첨부 공문에 대해 이원배 의원측은 “관계 기관에 특별공급의 적법성 여부를 문의했을 뿐”이라고 답변한다.

 지난 1월 31일 건설위는 ‘필요한 경우에 시행자가 택지공급 대상자의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된 택지개발촉진법(18조 3항의 택지공급조항)이 재량조항이기 때문에 특혜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리논쟁만 벌이다 결론없이 끝났다.
 원칙에 어긋난 서울시의 행정처분도 문제지만, 집단민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중한 검토없이 정부에 특별공급이 옳다는 의견을 전달한 평민당의 경솔한 조치가 의혹을 불러들인 것 같다. 민원이첩의 형식을 띠긴 했지만 청와대 비서실의 공문 하달은 청와대의 말이라면 맹종하는 관행으로 봐 ‘압력’의 소지가 충분히 엿보이게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못한 것도 불씨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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