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 둔 채 한국에 ‘눈짓’
  •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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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회당, 일 ․ 한위원회 신설등 북한 일변도 정책 수정 시도

북한 노동당의 최대 友黨으로 자처해 오던 일본 사회당이 최근 들어 한국과의 접근을 서두르고 있다. 사회당은 지난 7일 당강령 초안인 ‘93년 선언’을 발표하고 사회주의와 완전 결별하면서 한 ․일 기본조약을 무조건 승인한다고 밝혔다. 이 선언은 또한 한국과 북한 간의 대등 평화 ․ 인권 외교를 추진하여 조선반도의 평화 통일에 전면 협력한다고 명기하고 있어, 종래의 북한 일변도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당은 이에 앞서 지난 3월에 열린 전국서기장회의에서도 28년 만에 한 ․ 일 기본조약을 무조건 승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91년 8월에 발족한 사회당의 그림자 내각도 3월말 《일 ․ 한, 일 ․ 조 정책의 논점 정리와 정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한 ․ 일 기본조약 제2조(한 ․일 합병조약의 원천적 무효 여부)와 제3조(한반도의 관할권 문제)에 해석상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승인한다고 명기했다.

 사회당의 그림자 내각은 조약상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한 ․ 일조약을 조건 없이 승인하는 이유로서 한국과 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러시아 ․ 중국의 한국 승인, 일본과 북한의 수교 교섭 개시 등으로 주변 정세가 크게 변해 더 이상 낡은 해석이나 논쟁이 불필요해졌다는 점을 들고 있다. 사회당의 이같은 갑작스런 변신은 55년 창당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현재의 위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신 사회당’으로 변신하는 문제는 고질인 좌우파 대립 탓에 이시바시 위원장에서 도이를 거쳐 다나베로 집행부가 바뀌는 동안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사회당은 4대 딜레마로 지적되어온 자위대와 한 ․ 일, 일 ․ 미 조약을 인정하는 문제, 에너지(원자력) 문제로 좌우파 간의 무한 논쟁을 벌여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켜 왔다.

 일본의 제1야당인 사회당의 위상 하락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각종 언론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에 이어 30여년간 제2위 자리를 고수해 오던 사회당에 대한 지지율이 올해 들어 작년 7월 결성된 미니 정당 ‘일본 신당’에도 못미쳐 제3의 정당으로 밀려나고 있다.

 연초 사회당 집행부가 교체된 것도 이같은 위기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사회당은 지난 1월 19일 임시 전당대회를 열고 70세인 다나베 마코토 위원장을 퇴진시키고 56세인 야마하나 사다오(山花貞夫) 서기장을 새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세대교체를 통해 사회당에 새 바람을 일으켜 보겠다는 것이 집행부의 의도이다.

당수 방한도 적극 추진
 당은 이와 함께 이른바 4대 딜레마에 대한 적극적인 노선 수정 작업을 벌여 왔다. 예를 들어 야마하나 위원장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개헌 논의에 대해 ‘창헌론’을 제창하는가 하면, 자위대와 일 ․ 미 안보조약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 한 것이다.

 특히 한반도 정책에서는 지난 3월18일 당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그동안의 조선문제대책위원회를 ‘일 ․ 한위원회’와 ‘일 ․ 조선위원회’로 분리해 북한 일변도였던 정책을 시정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사회당은 또 이와 함께 야마하나 당수의 방한을 적극 추진해 왔다.

 그러나 주일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사회당의 한반도 정책이 아직 눈에 띄게 변한 것은 거의 없다고 전제하고, 야마하나 당수의 방한은 시기 상조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당은 10여년 전부터 북한 일변도 정책을 시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왔으나 그때마다 북한 창구를 놓치지 않기 위한 속셈에서 번번히 공수표를 끊어 왔다. 85년 8월 도이 부위원장이 장한 신청을 햇다가 주일 한국대사관에 의해 거부당한 뒤, 10월에는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현 대통령과 이시바시 위원장이 도쿄에서 회담했다.

 이어 사회당은 88년 6월 북한 일변도 정책을 시정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한국과 우호교류에 관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한 뒤 이듬해 연말 첫 공식 방한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다음해에 ‘한국과의 교류는 민주 세력에 국한한다’라고 못박아 북한의 대남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북한의 대남정책 그대로 답습
 2년 전에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한 . 일 기본조약을 승인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두가지 조건을 내걸엇다. 한국의 주원이 남반부에 한정된다는 것과 한 ․ 일 합병조약은 처음부터 무효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얼핏 보면 한 ․ 일 합병조약이 유효라는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보다 한발 앞선 것 같지만 실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조건들이다.

 사회당이 최근에 밝힌 한 ․일 기본조약의 무조건 승인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은 일본과의 수교교섭 석상에서 배상 문제를 거론하기 위해 한반도의 관할권 문제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사회당은 북한이 ‘두개의 조선’ 즉 분단 고정화에 반대하는 춴칙을 포기했다고 보고 65년 12월의 ‘조약불승인 선언’ 이후 견지해 왔던 당 방침을 전환한 데 불과한 것이다.

 주일대사관 관계자도 사회당의 한반도 정책이 아직 북한 추종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때문에 사회당의 한국 접근은 ‘옛 친구를 버리고 새 친구를 사귀려는 것’이 아니라 위기적 상황 때문에 새 친구를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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