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국' 한인의 꿈, 땀, 좌절
  • 로스앤젤레스·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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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만 소수민족…꿋꿋이 '사회 주류' 돼야



 4월 29일 인종폭동으로 로스앤젤레스의 교포들이 받은 가장 큰 상처는 3억달러 이상에 달하는 물질적 피해보다 미국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독재와 빈곤에 허덕이던 60~70년대에 조국을 뒤로 하고 '미국의 꿈'을 쫓았던 교포들은 이번 사건을 돌아보며 미국사회에 대해 심한 배신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인에게 미국은 더이상 기회와 꿈의 나라가 아니다"라고 한 교포 변호사가 단정할 정도이다. 로스앤젤레스의 영문판〈한국일보〉의 브렌다 선우 취재부장은 "이번 폭동은 미국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정부, 경찰, 언론, 그 누구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한국인의 '아메리칸 드림'은 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조각들을 다시 주워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번 사건이 25년 역사의 로스앤젤레스 교포사회가 겪은 최악의 충격이었다면, 교포사회가 보여준 단결력도 가장 강했다는 것이 이곳의 일반적 평가이다, 10년 전에 이런 일을 당했다면 교포사회는 스스로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4 · 29 폭동은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에, 미국사회 전체를 상대로 해서 위기관리를 할 수 있을 만큼 교포사회가 성장했다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그러나 교포사회의 성숙은 교포들에게 미국사회 주류의 변화와 흐름을 더이상 외면할 수 없음도 아울러 알게 만들었다. 교포들은 이번 일을 겪는 동안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시의원 한명도 갖지 못한 사실을 알고 미국 사회 주류의 정치과정을 더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정치력 없이는 권리의 행사도 보호받을 권리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냉엄한 현실이다. 범죄가 들끓는 코리아타운에 경찰순찰차 몇대를 확보하려 해도 정치압력을 넣을 힘이 있어야 한다. 미국인구의 1%도 안되는 힘으로는 안된다. 한국인의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이든 한국인끼리만 뭉쳐서는 꿈을 이를 수 없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경찰 순찰차 확보할 정치력도 없어

 대량 이민의 역사가 20년이 넘어가면서 로스앤젤레스의 교포사회도 2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한국인'이라기보다는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교포들이 한인사회의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인' 1세 부모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보고 '한국계 미국인' 2세들이 함께 힘을 합한 것은 교포사회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 않음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일"이라고 타미 엄이라고만 밝힌 한 교포는 말한다.
2세들이 비교적 미국의 체제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1세들은 아직도 미국 국적을 가졌더라도 한국에 대해 더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다. 마치 자신의 지역구인양 로스앤젤레스의 피해 현장을 찾아온 고국의 정치인이나 정부 파견단에게 거부감을 나타내는 1세 교포는 아직 드물다.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는 눈치이다. 교포 라디오 방송국의 한 아나운서는 복구성금 접수현황을 중계하면서 "왜 우리가 남의 나라 땅에까지 와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고, 또다른 아나운서는, '미국 시민'이라고만 밝히고 영어로 "한국 교포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미국인의 전화내용을 소개하면서 "외국분이 전화를 주셨다"고 표현했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되는 아나운서의 잘못된 주체 개념도, 백인을 지칭할 때 '미국인’이라고 표현하는 교포에게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지극히 '한국적인 시각'에서 교포사회 문제를 보도하는 교포언론도 본국 정부가 '미국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지원을 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자 이를 비아냥거렸다. 교포들은 자기들이 양국간 외교관계에서 기본적으로 미국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오히려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아시아계 인종 지도자들은 교포들이 폭동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른 인종의 피해자들과 연대해서 보상과 복구를 요구하지 않는 것을 유감스러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로스앤젤레스의 한 아시아계 사회운동가는 "한국인이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만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해
정부를 상대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교포사회 지도자들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만나 보상을 따로 요구한 것은 "지극히 한국인다운 발상"이라는 비판적인 견해가 교포사회 밖에 있음을 의식하기에 교포들이 받은 충격은 너무 컸을지 모른다. 로스앤젤레스에 온 홍콩의 시사주간지《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워싱턴 특파원 수수무 아와노라씨는"미국정부는 한국정부의 개입에 대해 불쾌해 하고 있다"고 워싱턴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인이 자기만을 위한 보상을 주지사에게 요구한 것은 한국인이 '배타적이고 고립적'이라는 미국사회의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뿐"이라고 미국의 아시아인 문제를 보도해 온 아와노라씨는 지적한다.
로스앤젤레스의 일본계 미국인 신문〈라푸심포〉의 영문판 편집자인 나오미 히라하라씨는 "일본계 미국인이 일장기를 흔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며 한국인들이 시위 때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태극기를 흔드는 것은,  미국내에서 외국인이라고 느끼는 아시아인들의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2차대전 때 '미국인의 신분'을 인정받지 못했던 일본계 미국인에게는 매우 예민한 문제이다. 폭동 때 코리아타운에 공권력이 미치지 못한 것을 규탄하는 평화시위에서 교포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든 사건은 한국 이민사회의 좌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3~4세를 내려가도 백인 눈엔 '한국인'

 선우씨는 "이민온 한국인들은 아직 한국과 미국 두나라에 다같이 소속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두 손에 두 국기를 함께 들고 있는 것은 그들의 가장 솔직한 현재의 입장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한국교포 문제를 연구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유의영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78년에는 로스앤젤레스 교포의 29%만이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나, 89년에는 45.1%로 늘어났다. 교포의 절반 정도가 5년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교포의 투표율은 늘어나는 시민권자수에 비례하지 않고 있다. 교포들이 고국에 대해 갖는 생각에 비해 고국의 한국인들이 교포들에 대해 갖는 시각은 빠르게 변해왔다. 조국이 어려울 때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어려울 때만 고국을 바라본다는 '경멸의 시각'이 있음을 모르는 교포는 없다.

로스앤젤레스 폭동과 관련한 한인대학생들의 시위를 취재하면서 만난 유학생 온규현씨는 "코리아타운에 갈 때마다 왜 교포들이 미국에 와서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고 한다. 잠시 코리아타운에서 하숙을 한 적이 있는 그는 "작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부터 교포들이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서울의 ?증권회사 대리로 근무했던 31살의 온씨가 로스앤젤레스 교포에 대해 갖는 생각은, 이 도시의 코리아타운을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먼저 초라해 보이는 코리아타운 모습에 연민과 놀라움을 느낀다. 한국 식당에서 만난 한 40대 교포는 "이제는 한국에서 재미교포를 거지로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국인 상가가 밀집해 있는 버몬이나 웨스턴가를 따라 남쪽에서 차를 몰고 올라오다 보면 4월29일의 인종폭동이 교포 상가를 어떻게 할퀴고 지나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화염 뒤의 잔해가 아니더라도 코리아타운 지역은 한국에서 온 방문객의 눈에 결코 디즈니랜드와 할리우드가 있는 도시의 일부로는 보이지 않는다. 맥시코에  와 있는지 아프리카에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들의 농담은 미국의 도시빈곤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교포들은 공룡처럼 비대해져 이제는 추악하기조차 한 로스앤젤레스를 떠날 수는 있어도, 20년간 삶의 터전을 만들어온 미국이라는 새 조국을 떠날 수는 없다. "이 땅에서 살려면 흑인지역에 들어가 갈등이나 일으키고 돈만 벌려고 한다는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고 교포 윤여춘씨는 지적한다. 4·29 인종폭동은 고국의 한국인에게 미국 교포의 삶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한 사건이다. 언론도 미국내 한국 교포사회에 대해 유례없는 관심을 표명했다. 교포들은 스스로 무장해서 폭도를 막았고, 조직적인 평화시위로 교포사회의 '울분'을 효과 있게 보여주었다. 미국언론의 왜곡보도 역시 그냥 넘기지 않았다.
미국의 한 백인 기자는 "이번 사건으로 한국인은 아주 강한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미국사회에 분명히 심어 주었다"고 말한다. 교포들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흑인에 대한 뿌리깊은 인종적 편견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흑인과 연대하기보다는 백인동네로 이사가는 것이 급한 교포와 흑인의 감정적 굴곡은 4·29폭동으로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백인의 상권 밖에 있는 흑인지역 에서 교포는 '중간상인' 노릇을 하고 있다. 경제적 자생력을 한번도 갖지 못한 흑인을 상대로 돈만 벌어간다는 비난은 그래서 교포에게 집중되고, 백인중심의 사회구조적 모순은 계속 은폐된다. 복구작업에 나서면서 많은 교포가 험난했던 이민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윤여춘씨는 "60~70년대에 이민온 교포들이 요즘은 후회하는 분위기"라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거듭해 온 고국을 바라보는 이민 1세의 심정을 설명한다. "서울에서 온 동창을 보면서 패배의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말한다. 폭동사건 이후 교포들이 벌였던 평화시위에서는 1세보다 2세가 더 분노를 나타냈다.
윤씨는 "한국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2세는 한국사람일 수밖에 없다. 3~4세를 내려가도 백인의 눈에는 한국인 일뿐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교포가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은 2세의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이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러나 2세의 미래가 1세보다 나으리 라는 보장이
이제는 없다.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그들은 1세보다는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세와 2세의 성공 기준은 각자가 성장해온 문화적 배경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2세는 1세가 너무 '고국지향적'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폭동의 파해수습대책본부는 로스앤젤레스 한국총영사관에 설치됐다. 2세의 봉사기관인 한미연합회의 문희수양은 "1세들은 무조건 영사관에 간다. 우리는 미국사람 이다. 미국 사람은 미국의 제도 안에서 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노스웨스턴 대학 4학년인 앨버트 장군은"1세는 너무 돈에만 집착한다. 돈만 버는 것은 우리에게는 성공이 아니다. 1세와는 성공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장군의 말과는 달리 교포 1세가 2세에게 기대하는 '성공'은 미국사회의 주류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보여주듯 미국사회의 피부색깔에 따른 계층간 장벽은 1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대학 1학년이라고만 밝힌 2세 여학생은 "1세가 갖고 온 꿈은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시아인은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백인 다수로부터 영원히 다른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미국인이 되기는 어렵다." 샌프란시스코 출생 한국인 2세인 백씨 성의 할머니는 "백인들은 다른 인종이 자기네 보다 잘하는 것을 절대 참지 못한다"고 말한다.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 금매달을 딴 일본계 미국인 크리스틴 야마구치가 광고 스폰서는 물론 일반인들로부터 별다른 인기를 못 끈 것은 그가 백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백 할머니는 지적한다.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백할머니는 기자에게 "백인들 참 못됐어"라는 말만은 한국말로 했다. 유리천장! 소수민족의 미국사회 진출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 말로 이곳에서 흔히 쓰이는 '유리 천장'을 교포2세가 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시아인이 가장 많이 살고 또 가장 진보적이라는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인종장벽은 높기만 한데 남부 같은 데는 어떻겠는가"라고 연방 국세청 공무원인 박기영씨는 말한다. 그는 얼마전 인종차별을 근거로 연
방정부를 상대해서 낸 소송에서 이겼다. "온갖 고생 끝에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다 갖추고 나면, 아시아인은 지도력이 없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승진을 시키지 않는다" 라고 60년대 초에 유학왔던 박씨는 인종 차별에 분개한다.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유력한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빌 클린턴에게 새로운 입지를 만들어 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회복지 부문의 재정을 가차없이 삭감해 온 공화당의 정책을 선거 캠페인의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의 최상층 백인이 국가 전체부의 90%를 갖고 있다. 미국 유권자의 핵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 백인 중산층은 자신의 눈에 게으르고 말썽만 일으키는 것으로 비치는 소수민족을 위한 사회복지 정책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내려고 하지 않는다. 클린턴 역시 표를 의식해 자신의 사회복지 정책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접근과도 다른 '제3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둘다 흰색

 미국의 소수 민족은 대개 진보적인 민주당을 지지한다. 소수민족 중의 소수민족인 한국 교포에게 공화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역설이라고 한 교포 정치학자는 지적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상표만 다른 같은 종류의 백색 포도주에 비유된다. 색깔로 보면 결국 둘 다 백색 포도주라는 것이다. 수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이 수차례 겪었던 인종폭동에 비해 이번의 폭동은 경제적 절박감과 좌절감의 원인이 다른 문제보다 더컸다.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로 미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로스앤젤레스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작년 한해에만 20여만명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 도시 빈민지역인 사우스센트럴의 흑인과 중남미계 이민이 폭동을 일으킨 배경에는 이같은 절박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면서 보수주의가 백인의 지지를 얻고 있다. 아시아계 인권운동가들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인종범죄의 증가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아시아인에 대한 백인의 '관대했던 태도'가 냉담하게 바뀌고 있다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WASP(백인 앵글로 색슨청교도)'에의 진입을 꿈꾸는 교포 2세의 희망은, 백인중심의 가치관에서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관으로 미국의 정신이 이동하지 않는 한 밝다고 할 수 없다. 교포 1세가 미국사회를 다시 보고 미국사회의 주인으로서 백인 선조가 신대륙을 개척하던 때 가졌던 것과 같은 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인 이민사회가 1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포들이 조국을 떠나며 가졌던 '아메리칸 드림'은 무엇이던가. 꿈꾸던 미국을 그들은 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찾았는가. 코리아타운이 정상화돼도 교포들은 이런 질문을 끝없이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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