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籍은 또다른 역사의 상징"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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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민적》으로'백정사'3부작 완성한 정동주씨

작가 정동주씨(44)가 20년대 형평사 운동을 배경으로 백정 사회의 인간선언을 그려낸 대하소설《민적》(전5권 . 웅진출판)을 최근 펴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지난 13년 동안 쓰고 발표해온 대하소설《백정》(전 10권, 1988)과《단야》(전 7권, 1992)와 연결되면서 22권으로 된 3부작을 완성한다. 그러나 백정의 고난과 수모를 통해 본 한국 근현대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0년대 시베리아에서 벌어진 한민족 수난사를 조명하는 대하소설《시베리아》연재가 끝나면 나는 다시 저《민적》이후에 손을 댈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정씩 이처럼 백정의 역사를 천착하게 돈 연유는 70년대 후반의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고뇌에서 비롯했다. 끊임없는 피지배, 혹은 피지배 세력의 근원을 백정 사회에서 발견한 것이다. 천민의 역사를 발굴해 복원하는 작업은 이긴자의 역사관을 뒤집는 일이기도 하다.

 《백정》이 1862년 진주농민항쟁 속에서 농민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백정들이 인간이기를 바라마지 않았는가를 되살려 냈다면,《단야》는 신분 질서의 와해와 일제의 침략과정을 밑그림으로 백정 사회의 지도층이 왜 이데올로기 문제에 기울었는가를 밝혀냈다. 백정들은 일제와 기존의 사회라는 이중적 지배구조를 견뎌내면서, 식민지 체제 하의 민족 문제보다는 이념을 통한'인간 해방'문제에 치중한 것이다.《민적》에서 백정들이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형평사 조직에 가담하게 된 배경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민들레'라고 불렀던 백정들은, 그들에게 인간임을 보증하는'민적'이 주어졌을 때에도 민적의 발행 주체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정들의 생명 사상 되살려야"
 김열규 교수(인제대 . 국문학)가 지적했듯이 정동주씨의'소설 백정사'는'역사 밖에 존재했던 또 하나의 역사를 역사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문학과 역사 양쪽에서 의의를 갖는다.《민적》에서 두드러지듯이, 백정사회의 언어와 풍속은, 이들이 인간이라고 부르던'역사 안의 삶'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죽어서도 상여를 탈 수 없었던 인간 밖의 사람이었던 그들에겐, 그러나 놀라운 생명에의 외경이 있었다. 소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극락으로 보내는'그들의 의식은 매우 경건한 것이었다. 정씨는"백정 사회가 전수시켰던 생명 사상은 오늘날 되살려야만 한다"고 말했다.

 백정의 역사는 또한 한국 사회의 암적 요인인 분리(분파) 욕구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일깨운다. 양반 . 평민들은 백정을 향해'나는 네가 아니다'라며 자기가 속한 계층의 기득권을 수호했던 것이다. 정씨는 이같은 분리 욕구가 친일 . 분단은 물론 지역감정과도 연결된다고 해석한다.

 경남 사천에서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정씨는 현재 <부산일보>에 대하소설《시베리아》를 연재하고 있다. 3년 뒤께 매듭지을 이 소설을 위해 지난해 8월부터 금년 5월까지 네차례에 걸쳐 현지를 답사했다. 아직도 현지에서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는 한인 2세 여성 빨치산과 민족주의자, 그리고 김일성을 각각 주인공으로 해 3부 10건으로 묶을 예정이다.
李文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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