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일수록 외국 특파원 선호"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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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웨인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주필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미국 최대의 경제 신문이다. 이 신문은 아시아와 유럽에서 각각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과 <월 스트리트 저널 유럽>을 발행하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사가 발행하는 세 신문은 기사와 논설은 공유하면서 각기 독립적인 편집 체제를 유지한다. 호주 출신인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의 베리 웨인 주필(48)은"세개의 독립적인 대륙판을 발행하는 것이 전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취재 ․ 보도하는 하나의 체제"라고 말한다. 지난 92년 5년 간의 편집국장 임기를 마친 웨인 주필은 아시아 각국을 순회하며'더 리전(The Region)'이란 명칼럼을 쓰고 있다. 외교 전문 기자 출신인 그는 아시아에 가장 정통한 영어권 언론인으로 손꼽힌다.'신한국'을 조망하려고 서울에 들른 그를 만나 보았다.

혹시 이번 서울 방문에서 새롭게 느낀 게 있습니까?
택시 타기가 조금 나아진 것 같더군요. 서울에 오기 전에 저는 북한핵 문제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을 매우 위태롭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울에 와보니 여기서는 안보 문제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전쟁 가능성은 전혀 생각지도 않습니다. 언론도 탈 냉전후 한반도 주변의 안보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언론은 지금 새 정부의 사정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신문이나 방송 간에는 보도 내용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많은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그런 변화를 당연히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국내 문제만을 다루면, 독자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국제 문제는 전혀 없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모든 매체가 동일한 문제를 동일한 접근 방법으로 동일한 시기에 다룬다면, 대다수 국민의 시각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일본 언론은 어떻습니까?
일본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습니다. 동경 지국에서 일하는 기자 중에 정말 일본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말을 잘하는 기자가 있었습니다. 그 기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큰 경제단체장이 출입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했는데, 우리기자 얘기로는 별로 질문도 없었고 회견 시간도 아주 짧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별 뉴스가 안된다고 판단했는데, 그 다음날 일본 각 신문에는 거의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장문으로 실렸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기자단이라는 취재방식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도 때문에 그런 식의 기사가 나옵니다. 나로서는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한국도 기자단을 중심으로 취재하는 관행 때문에 보도 내용이 비슷합니다.
기자단이 생겨난 두 나라의 역사적 배경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모든 힘이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그 정부를 취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기자단이 생겨나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지금도 내가 한국에 대해 아주 놀라는 점은 모든 것이 너무나 중앙집권화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민주주의란 권력의 분산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의 경우, 심지어 경제 분야까지 중앙 정부가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집건 민자당의 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한 국회의원이 귀지의 특파원과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도 않은 경제성장률을 미리 알려줘 특종 기사를 안겨 주었더군요.
아시아에서는 사람들이 미국 언론사의 특파원이 매우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대개 후진국일수록 외국의 유력 언론을 선호하는 현상이 강합니다. 그러나 취재원들이 외국 언론이라고 무조건 회피하는 현상도 동전의 이면처럼 존재합니다.

최근에 귀지의 서울 특파원이 북한의 남북대화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기사를 썼는데, 미묘한 시기라 그랬는지, 한국 언론들이'<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렇게 보도했다'는 식으로 난리를 피운 기억이 납니다.
우리 서울 특파원의 그 기사는 정부 발표를 배경 설명과 함께 단순히 정리 보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떠들 이유가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 특파원은 서울에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한국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나는 방금 말씀한 기사의'역수입 현상'하나만으로 한국 언론의 취약성을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 이면에는'밖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보나'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문화적 배경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정부의'개혁'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습니까?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진행되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일어나고 있는 단편적인 사건보다 장기적으로 한국이 어디로 가고 있나 하는 측면에서 관심을 가집니다. 민주주의는 여러 분야에서 여러 방향으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번의 민주적인 대통령선거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금방 성숙한 민주 사회가 달성되지는 않습니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염두에 두는 독자는 누구입니까?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의 독자들은 대부분 미국인이 아닙니다. 76년 창간호가 발행되던 날부터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독자 대다수는 아시아인이었습니다. 우리 독자의 75% 정도가 아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 사실에 놀랄겁니다.

다수의 독자가 아시아인인데도 귀지의 기사는 대부분 지극히 미국적인 관점에서 쓰여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에서 발행되므로 당연히 미국인 독자만을 염두에 두고 기사를 씁니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아시아인 독자를 위해 기사를 작성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비판이 있다면 아마 지역과 관계가 있을 겁니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지국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미국판과 아시아판에 다같이 기사를 보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동북아 기사는 좀 미국적인 시각과 초점으로 기울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와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간에 불편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까?
전두환 정부가 한국 관련 기사로 자주 항의를 해 왔었습니다. 서울 특파원에게 자주 불만을 표시했고, 나에게도 직접 항의해 왔으며, 한번은 홍콩으로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한국 정부는 어떤 특정 문제에 대해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무조건 싫어했습니다. 당시 평양과 서울 간에 어떤 접촉이 있었고, 우리는 그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런 접촉이 무조건 없었다고 주장하더군요. 우리는 당시 누가 언제 어떻게 서울과 평양을 방문했는지를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저에게 세가지 사실이 잘못 기술돼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나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는데, 접촉 내용에 관한 사실이 몇가지 틀린 것이 왜 문제 되느냐고 농담으로 받아치기도 했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목표는 많은 부수가 아닙니다. 독자가 가장 신뢰하는 신문을 만드는 게 우리의 최상 목표입니다. 미국 내에서나 밖에서나 <월 스트리트 저널>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신문이라는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부수도 미국 내에서 최대인 일간지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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