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 원님, 백성 투표로 뽑자”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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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장 주민직선제’… 1세기 전 〈독립신문〉 논설에서 서재필 박사 주창

95년 전인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발행신문인 〈독립신문〉이 자치단체장의 주민직선제를 골간으로 한 지방자치제를 주장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독립신문〉 논설에는 “관찰사와 고을원은 정부의 내각 대신이나 협판(協辦 ·구한말 당시 궁내부와 각 부의 차관급)이 천거할 것이 아니라, 지방 백성이 투표로 뽑아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내용을 발견한 경북대학교 물리학과 朱昌護 교수(54 ·양자역학)는 “독립신문 논설을 쓴 것으로 알려진 徐載弼 박사 가거의 1세기 전에 자치제를 거론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朱교수는 한국교회사 관계 자료를 모아 오던 중 독립신문 논설에서 지자제 주장대목을 발견했다.

한양대 趙昌鉉 교수(지방자치면구소장)는 “3권 분립 개념이 없던 당시에 도지사와 군수에 해당하는 관찰사와 원을 선거로 뽑자는 것은 단체장을 직접 선출하고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지자제의 전면실시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장”

이라고 설명했다. 또 서울대 張達重 교수(정치학)는 프랑스 정치학자인 토크빌이 19세기 미국 민주주의의 ‘자발적인 사회조직’ 과 ‘평등’ 개념을 높이 평가한 사실을 예로 들며 “미국 유학파인 서재필 박사도 지자제의 근간인 ‘자발적인 사회조직’의 개념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다음은 논설의 주요부분을 요즘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백성이 뽑은 사람이 천거 받은 사람보다 열 번에 아홉 번은 나으리라 ”
정치학이라 하는 학문은 문명개화한 나라에서들 여러 천년을 두고 여러 만 명이 자기 평생에 주야로 생각하고 공부하여 만든 학문인데, 정부의 관원이 되어가지고 이 학문을 배우지 아니하여서는 못쓸지라.

…외국에서는 관찰사와 원 같은 정부 관원을 백성을 시켜 뽑게 하니 설령 그 관원이 잘못하더라도 백성이 임금을 원망 아니하고 자기가 자기를 꾸짖고 그런 사람은 다시 투표하여 미관말직도 시키지 아니하니, 벌을 정부에서 주기 전에 백성이 그 사람을 망신을 시키니 그 관원이 정부에서 벌주는 것보다 더 두렵게 여길 터이요, 또 청하여 빠질 도리도 없을 터이라. 내각 대신과 협판은 임금이 친히 뽑으시는 것이 마땅하고 외임은 그 도와 그 고을 백성으로 시켜 인망 있는 사람을 투표하여 그중에 표 많이 받은 이를 뽑아 관찰사와 군수들을 시 키면 백성이 정부를 원망함이 없을 것이요, 또 그렇게 뽑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하나 나 두 사람의 천거로 시킨 사람보다 일을 낫게 할 터이요, 그 사람이 그 도나 그 군에 사는 사람이니 그곳 일을 서울에서 가는 사람보다 자세히 알 터이요, 그곳 백성 때문에 원이나 관찰사를 하였으니 그 사람이 그 백성을 위할 생각이 더 있으리라.

…정부에 계신 이들이 관찰사와 군수들을 자기들이 천거 말고 각 지방 인민으로 하여금 그 지방에서 뽑게 하면 국민 간에 유익한 일이 있다는 것을 불과 1 ~2 년 동안이면 가히 알리라.(독립신문 1896.4.14일자 4호 논설)

…정부에서 좋지 않은 일을 하든지 좋은 일을 아니하는 것은 백성의 사정을 모르는 연고요, 백성이 정부를 의심하고 명령을 쫓지 아니하는 것은 정부를 모르는 연고라. 군민간에 서로 알게 하는 직무는 관찰사와 원에게 달렸으되 근일 관찰사와 원들이 자기 직무들을 잘못하는 연고로 경향간에 통정이 못되어 의심이 서로 나고 의심이 난 즉 사랑하는 마음 이 없어지는지라.

…관찰사와 원이 자기 몸 생각하기를 임금이 백성에게 보내신 사신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 몸을 백성보다 높은 줄로 생각하며 백성 대접하기를 무리하게 하고 정부 명령을 자세히 전하지 못하는 고로 백성이 정부도 모르고 정부에서 보낸 사람을 미워하니 어찌 군민간에  교제가 잘 되리오.

…이런 자리 뽑기가 대단히 어려운 즉 정부에서 사람을 골라 보내지 말고 백성더러 자기 관찰사와 원을 투표법으로 골라 정부에 보하면 정부에서 그 사람을 시켜 보내 그 사람이 일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정부에 책망이 없을 터이요 또 이렇게 뽑은 사람이 대신이나 협판이 천거하는 사람보다 열 번에 아홉 번은 나으리라.(독립신문 1896.4.16일자 5호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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