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세기 ‘장화홍련전’ 아동 학대 심각하다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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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식 낮아 ‘범죄행위’도 방치 …부모의 구타로 입원도

4월2일 서울 청량리경찰서는 국민학생 남매에게 가혹행위를 한 계모 김향숙씨를 미성년자 학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현대판 ‘장화홍련전’으로 불릴 만한 이 사건은 전처소생인 국민학교 3학년 ·1학년짜리 두 아동이 자신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폭행을 일삼은 계모 김씨를 남편 심모씨가 고소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6살짜리 여아의 코와 입을 빨래집게로 막은 뒤 발로 목을 조르고 몽둥이로 마구 때려 간 출혈 ·두부좌상의 손상을 입혔다. 또 손톱 밑을 바늘 ·송곳으로 찌르고 담뱃불로 지지는 등의 잔혹 행위 때문에 6살 여아의 손톱 2개가 떨어져나간 상태였고, 얼굴과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9살짜리 남아의 한쪽 귀도 물어뜯긴 상태였다.

이 같은 사건을 접하면 흔히 계모 또는 계부이기 때문에 발생되는 ‘특별한 경우’라고 예단하기 쉽다. 그러나 89년 3월에 창립된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회장 홍강의)에 신고된 사례를 보면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의 예도 자주 발견된다.

지난해 9월 이 협회 광명신고센터에 지역 주민이 신고한 조인래(가명) 어린이의 경우는 친부가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막노동을 하는 부친은 항상 술에 취하여 아내와 두 아이를 심하게 구타하던 중 매질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두 아이 가운데 더 심하게 매를 맞아온 딸을 데리고 가출하자 3세 남아의 머리를 벽에 짓찧는 등 학대한 것이다. 눈두덩에 멍이 든 채 혼수상태로 발견된 조군은 서울대병원 소아과에 입원, 10여일 후 의식을 회복하였으나 타박상으로 인한 뇌수종 증상이 다시 나타나 신경외과 수술을 받아야 했다.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는 조군은 현재 부친과 모친이 모두 친권을 포기한 상태로 몇 달 후 스웨덴의 한 가정으로 입양될 예정이다.

그밖에도 정신질환자인 모친이 9개월 된 남아를 학대하고 방치한다고 부친이 상담을 의뢰한 경우, 폐렴에 걸려 있는 아동을 치료도 안 해주고 방치한 상태라고 부친을 조모가 신고한 사례, 부친이 자전거 체인으로 때려 가슴의 살점과 옷이 한데 엉겨 붙은 채로 발견된 7세 남아의 경우 등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도 많다.

그러나 “미운 아이 떡하나 더 주고 고운 아이 매 한대 더 때리라”는 말이 통념이 되다시피 한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에서나 교육현장에서나 아동학대의 심각성이 좀체로 표면화되지 않는다. 아동들에게 저질러지는 성폭행 유기 매춘 노동력착취 같은 행위가 사회적으로 명백하게 지탄받는 범죄로 인식되는 것과는 달리 가정에서 상습적으로 자행되는 신체적 학대는 사회적으로 방임. 은폐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어머니 중에는 올바른 아동교육을 위해서 매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곧 한국 어머니의 72% 가 아이들에게 가끔 매질을 하는데 견주어 일본 33%, 미국 26%, 영국 28%, 프랑스 30%, 태국 23% 가 매질을 가끔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풍토에서는 훈육과 체벌이 혼동되기 십상이어서 교사가 국민학생을 때려 전치 6주의 상처를 입혀도, 숙제 물을 분실한 중학생을 각목으로 구타해도, 이웃집 아이를 연탄집게로 개잡아 패듯 때려도 그것을 학대의 차원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사랑의 매’ 또는 ‘사내다운 훈육방법’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많다.

87년 서울대의대 홍강의 소아과장 등이 소아과 의사 및 가정의 3천7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가정에서의 아동 학대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15세 이하의 아동이 부모 또는 부모에 해당될 수 있는 양육자에 의해 구타당하여 그 상처로 인해 병원을 찾아온 경우”를 묻는 설문에 전체 응답자 4백36명 중 46%인 2백28명이 구타아동을 진료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 조사로 구타당한 아동 1백61명이 “신체 일부 또는 안구 주위의 멍이나 상처가 있는 경우”였고 “열상 화상 피아골절 고막파열 두개골 골절 등의 심각한 손상”을 당한 아동이 67명이었으며 그중 6명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어릴수록 심한 손상 입는다.
구타당한 아동들의 특징은 남아와 여아의 비율이 약 3대 1이며, 아동들의 평균연령은 6.6 세로 어릴수록 심한 손상을 당하고 나이가 들수록 손상 정도가 가볍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령별 손상 정도는 26쪽 그래프에서 보듯이 O~2세 아동에게 심한 손상의 비율이 가장 높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김광일 교수(한양대 ·신경정신과) 등이 86년 11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1천여 명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시는 한국 아동학대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료이다. 빈 곤충 지역과 부유층 지역의 국민학교 3~4학년 1천1백42명에게 실시한 이 조사는 경제수준과 아동구타 발생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8.2% 의 아동이 1년에 12회 이상 부모로부터 심하게 구타당하고 있으며, 58%가 가벼운 구타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를 맞지 않고 자라는 아이는 34%에 지나지 않았다. 구타 자는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의 순위로 나타났으며, 71%의 아동이 구타로 멍이 들거나 손가락 팔 다리를 삐고 할퀸 상처, 깨문 상처 같은 신체손상이 생겼다고 응답했다. 그중에는 칼이나 흉기로 찔리거나 맞은 경우도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빈곤층 지역의 아동이 심하게 매 맞는 율이 높았으며 아버지가 실직했거나 부모의 직업이 노동인 경우에 학대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또 부모나 편모슬하인 경우보다는 양친이 없거나 편부 친부계모 친모계부 양부모인 경우 가 더 심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구타당한 아동 말고도 다른 기족이 함께 맞는 경우가 많았으며 매 맞는 아동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폭력가정에서 폭력을 배우거나 폭력 적응양식을 배운다는 폭력 학습이론이 하나의 가설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 장위국민학교 차원재 교장은 7년여에 걸친 상담사례를 통해 학대받은 아동은 교육현장에서도 안정을 잃고 소외되고 있다고 말한다. “알콜 중독자인 부친의 상습적 매질에 모 친이 가출하자 국민학교 2학년생 딸을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아 개패 듯 패다 못해 시궁창에다 처박아버린 일도 있었다”고 들려주는 차교장은 구타 아동은 대개 학교생활에 서도 ‘최저 학력아’로 낙인 찍혀 바보 취급을 받는 예가 흔하다고 말한다. 또 이들은 대체로 ‘배가 아프다’ ‘소변이 자주 마렵다’ ‘잠이 안 온다’ ‘정신 이 가물거릴 때가 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다’ ‘잘 때 오줌을 싼다’ 등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예가 많다.

구타당한 아동의 손상은 단순한 타박상 · 골절 등에 그치지 않으며 학대 아동의 10%가 이로 인해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고 보면 아동 학대행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다. 현행 아동복지법에는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아동을 학대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으며(제18조) 또 이를 “조사할 수 있고”(제19조) 이에 대한 처벌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백만 원 이하의 벌금”(제34조)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의 의무’를 법으로 제정하고 있지는 않다.

“아동 구타는 정신적 살인행위”
79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서울에 아동학대신고센터를 개설했으나 신고가 없어 1년 만에 문을 닫고만 것이나, 85년에 서울시립아동상담소에 아동학대신고센터가 개설되었으나 그 후 3년간 신고가 불과 63건에 지나지 않은 사실은 아동학대에 관한 신고정신의 부재를 입증하고 있다. 폭행을 보다 못한 이웃의 ‘인정에 의한 신고’가 아니면 좀체로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신고한 경우에도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형편이다.

한양대 김광일 교수는 아동구타 행위를 “간접 살인행위 또는 정신적 살인행위”라고 규정한다. 아울러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아이를 “신체적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어 사회에 내보냄으로써 사회적 피해를 야기 시킨다는 점에서 사회범죄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학대받는 아이는 반드시 또 학대를 한다는, 세대간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학계의 보고와 히틀러가 아버지로부터 구타를 당하며 자랐다는 역사적 사실을 환기해볼 때, 아동학대가 방치된 상태에서 미래사회의 밝은 전망이라는 것은 한낱 이상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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