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일 ‘열린외교’ 시동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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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연맹 총회 ‘새 관계’ 다짐 … 日 정계 실력자 방한 잇따라



 9월 첫째 주는 일본 정계 실력자들의 방한 러시로 인해 김포공항과 정가가 시끄러웠던 한 주였다. 일본 정계의 최대 실력자로 떠오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신생당 대표간사(8월31일)를 시작으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1일), 야마하나 사다오(山花貞夫) 사회당 위원장(4일)의 방한이 잇따랐다. 오는 14일 께에는 도이 다카코(土井多賀字) 중의원 의장(전 사회당 위원장)의 방한도 예정돼 있다.

 비록 우연이긴 하지만, 이들 실력자들의 집중적인 한국 방문은 비슷한 시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새 정권이 출범한 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몇가지 새로운 징후를 시사하고 있다.

 그 첫째는 일본정부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과거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92년 정신대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한·일 관계는 얼마 전까지 최악의 상태였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일본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문민 정부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비자민 연립정권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과거 정권보다 진전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라고 현단계를 평가했다. 많은 외무부 관리들은 앞으로 큰 변수가 없는 한 양국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9월 2~3일 이틀 동안 열린 한일의원연맹 서울 총회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번 총회에는 한국에서 金潤煥 회장과 94명의 국회의원이, 일본에서 다케시타 회장과 38명의 중·참의원이 참석했다. 3일 나온 공동성명의 3항은 ‘양국 대표는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구축 자세를 표명한 것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일본국 총리가 과거 역사에 대하여 솔직한 반성의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이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처럼 새롭게 출범한 양국 정부 하에서 처음 열린 금번 총회는 과거사를 합리적으로 청산하고 진정한 미래 우호를 향해 출발하는 계기로 삼기로 다짐하였다’고 선언해 달라진 양국 정부의 입장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정부간 외교 지원 성격 분명히할 필요
 이번 총회는 △‘21세기 위원회’ 발족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핵무기 개발 문제를 완전 해결하기 위한 공동 노력 △아시아·태평양 국가간 경제협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공동 노력 △‘국제수자원조성센터(가칭)’문제 취급을 포함, 양국 주변 수역의 자원관리 체제 확립을 위한 적극적 노력 △재일 한국인의 법적·사회적 지위 개선과 사할린 한국인 문제 등을 비롯한 전후처리 문제 완전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을 것 등에 합의했다.

 이번 총회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일 기본조약 체결 30주년이 되는 오는 95년에 미래의 양국 친선협력을 상징할 수 있는 기념사업을 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사업 추진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사항이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 사업의 추진 여부에 따라서는 일본 일부의 ‘95년 매듭론’을 감안할 때 95년을 기점으로 한·일간 과거사 문제를 종결지을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한·일 양국의 정치 환경 변화에 따라 한일의원연맹의 성격도 과거와는 달라질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일 간의 모든 교류가 앞으로 점점 투명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朴正熙 정권 때처럼 인맥에 의한 ‘막후 외교’는 全斗煥 정권 때 사실상 끝났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그 이후 양국의 공식 협상은 오로지 양국 대사들의 공식 통로에 의해 진행되었다. 따라서 한일의원연맹도 과거처럼 한·일 외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맥을 쌓으려 하기 보다는 외무부를 도와주는 하나의 지원 체제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직 사회당 위원장으로서는 처음인 야마하나 위원장의 방한도 한반도 문제의 긍정적 해결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은 그동안 일본 내에서 ‘사회당은 북한의 주일대표부냐’는 비단을 들을 정도로 친북 일변도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사회당의 ‘93년 선언’은 △한·일 기본조약 승인 △남북한과의 대등한 평화인권 외교 추진 내용을 담았다. 특히 사회당은 현 8개 정파 연립내각에 최대 주주로 참여하게 됨에 따라 한반도 정책에 변화를 주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그의 방한이 그 자신의 끈질긴 요청에 의해 이뤄진 만큼 한국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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