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철소 터 ‘쇠똥’으로 증명했다
  • 송준 기자 ()
  • 승인 199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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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봉산동 쇠찌꺼기 분석 … 거북선 만들었던 전라좌수영 병기창 존재 입증



 역사는 유적을 통해 현현한다. 史實을 증명하기 이전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이 가설을 진실로 밝혀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소중하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과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잡았던 전라남도 여수에서는 그 동안 주민 중심으로 ‘역사 증명’ 작업을 활발히 펼쳐왔다. 그 결과 임진란 당시 전라좌수영의 병기창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제철소 터가 최근 여수시 봉산동 일대에서 발견됐다.(《시사저널》제162호 참조).

 이 사실은 곧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과학기술원 · 광양제철소 산업과학기술연구소 등 여러 연구 단체가 여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초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는 논문 <여수 봉산동 출토 沙鐵 쇠똥에 대하여>를 내놓았다. 이 논문은, 아직은 가설인 ‘여수 제철소 터’를 과학적으로 인준하는 증명서에 해당한다.

 제철소 터를 발견하고 입증하기까지 유력한 실마리가 된 것은 쇠똥(슬래그 : 제철 과정에서 발생하는 쇠찌꺼기)이다. 쇠똥은 봉산동 일대의 옛날식 돌담이나 가옥의 안마당에서 쉽게 눈에 띈다. 널린 쇠똥을 역사적 안목으로 눈여겨보기 시작한 사람은 전라좌수영성역화추진위원회(위원장 丁埰鎬) 유적지 담당 李重根씨(63)였다.

향토사학자 이중근씨의 끈질긴 추적
 조선 수군의 심장부 여수는 7년 간에 걸친 대란을 일거에 종결지은 군사 요충지였다. 전쟁 유적지 여수에는, 그러나 전쟁의 실상을 가늠케 하는 유적·유물 대신 ‘충민사’처럼 전쟁 뒤에 지은사당이 더 많다. 막강 수군을 지원하던 전함과 거북선, 화살과 화포 따위 각종 무기와 유물이 직접 출토·인양되지는 않았더라도 이들을 만든 병기창은 여수 어딘가 있을 터였다. 외부에서 병기들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당시의 전황은, 병기창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향토사학자인 이씨는 《문화유적총람》《湖左水營誌》《전라좌수영도》같은 문헌 자료와, 동네 노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쇠똥의 유래를 추적했다. 봉산동은 당시 병기창에 철을 공급하던 거대한 제철소의 터였다. 인근에 풍부했던 沙鐵을 원료로 썼던 이 제철소는 고종 32년(1895) 전라좌수영이 폐쇄될 때까지 존속했다.

 《호좌수영지》에는 장인의 종류와 숫자·급여 수준·제철 제련의 연료 배합비율 등이 상세히 밝혀져 있다. 특히 철판을 얇게 펴는 일을 했던 ‘皮鐵匠’이 3명이나 존재했다는 기록은, 거북선의 덮개 철판이 이 제철소의 철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조선시대 제련 기술사 밝힐 자료
 한국과학기술원 금속연구부 崔 炷 박사는 전자현미경으로 쇠똥을 관찰하고, 가루를 내어 원자흡광법·발광분광법· X선 회석분광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쇠똥은 용광로에 사철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출물이며, 기술 수준은 조선 중·후기의 평균치에 해당한다. 이는 또한 일본의 전통적인 사철 제련법의 결과물과 흡사하다.

 최박사는 “쇠똥에 관한 이씨의 가정은 과학적인 사실이다”라고 결론지으며 “임진란 당시의 쇠똥과 숯을 발굴한다면, 이씨의 가설이 더 명확하게 입증될 것으로 믿는다. 거북선 덮개 철판도 이곳의 철을 이용했을 거라는 추론도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최박사는 특히 이 제철소가 사철을 사용한 점, 그리고 풀무질을 이용해 ‘吹鍊’한 점을 주목한다. 최박사에 따르면, 일본의 제철 산업은 거의 사철 제련법에 의존하는데, 대표작인 일본도는 몇백년 비를 맞아도 녹이 슬지 않는다. 이 사철법은 백제에서 전수한 것으로, 정작 한반도에서는 그 명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여수 제철소를 발견한 것은, 백제의 사철 제련법이 어디엔가 살아남아 임진란 당시까지 전수되었음을 입증해준 의의가 있다”라고 최박사는 강조했다.

 “봉산동 일대를 깊숙이 조사한다면 임진왜란사 및 조선시대 제철·제련 기술사를 연구할 자료가 쏟아져 나을 것”이라고 이중근씨는 확신한다. 지금 봉산동 지역에는 주택과 건물이 밀집해 있어, 이씨는 이 지역에 대한 발굴 문제를 곧 시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宋 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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