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의 왕실 ‘할퀴기’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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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깨고 일왕 부처 사생활 비판…왕실 존립 둘러싼 수구…개혁파 대립



 ‘왕실·검찰·세무서’이것은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기 꺼리는 3대 금기이다. 특히 왕실에 대해서는 패전후 불경기가 형법에서 삭제되었는데도 이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금기 중의 금기로 여겨왔다.

 한 예로 일본 궁내청은 91년 6월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결혼 상대를 보도하지 말라고 이른바 ‘보도 자숙’을 언론계에 요청했다. 언론의 과열 보도로 말미암아 도무지 혼담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시의 언론 통제를 연상케 하는 이런 요청을 일본의 일간지들은 아무 불평 없이 받아들여 ‘보도자숙’은 11개월 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언론이 금기 중의 금기인 왕실에 대한 비판을 자주 하고 있어 일본 국내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랫동안 ‘기쿠(菊)의 커튼’으로 가려져 왔던 일본 왕실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또 언론은 왜 비판해선 안된다는 금기에 도전하고 있는가.

“왕비가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테니스 경기”
 전대미문의 왕실 비판이 처음 화제가 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월간지 《가카라지마30》이 현직 국내청 직원이 가명으로 투고한 폭로 수기 <왕실의 위기, 기쿠의 커튼의 내측으로부터 증언>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 수기는 왕실을 관리하는 궁내청 직원들도 잘 알 수 없는 일왕 부처의 사생활을 예로 들어가며 왕실의 내막을 폭로하고 있는데, 아키히토(昭仁) 일왕보다는 평민 출신인 미치코(美智子) 왕비를 통렬히 비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수기에 따르면, 금욕적이었던 히로히토 (裕仁) 전 왕에 비해 현재의 일왕 일가는 너무 쾌락을 추구하고 위엄이 없다는 것이다. 한 예로 일왕 부처는 여름마다 고급 피서지인 가루이자와에서 정양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또 34년전 이곳에서 테니스를 함께 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했던 것처럼 해마다 이곳의 별장족들과 함께 테니스를 즐긴다.

 그런데 테니스 경기가 일반 국민도 구경할 수 있도록 일부터 도로에 인접한 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능인이 아닌 바에야 일부러 여러 사람에게 보이면서 테니스 경기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미치코 왕비가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경기를 하는데, 그것이 왕비의 복장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수기는 일왕 부처의 그야말로 사적인 일상생활을 들춰가며, 왕실 직원들이 그로 인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즉 일왕 부처는 친지들을 불러모아 밤늦도록 환담하기를 좋아는데 이 때문에 시중 드는 직원들은 퇴근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기가 일쑤다. 또 오전 1시, 2시가 넘어서도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 오라, 사과를 깎아 오라는 지시를 내린다는 것이다. 이 수기는 일왕 부처의 번거로운 나들이에 대해서도 매섭게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히로히토 전 왕에 비해 아키히토의 외출 횟수가 3배로 늘어났다는 얘기다. 즉 히로히토는 주위의 부담을 고려해 사적인 용무로 외출하는 것을 극력 억제했는데, 현재의 일왕 부천는 틈만 나면 음악회다 전람회다 파티다 해서 나들이를 하는 통에 경비진과 시중들이 비명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키히토 왕은 즉위후 ‘개방된 왕실’을 지향하기 위해 외출 때 거리의 신호등 조작을 삼가라고 경호 경찰에 지시한 바 있다. 일반 국민과 똑같이 빨간불이 켜지면 정지하고 파란불이 켜지면 달리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이 수기는, 도쿄 경시청이 일왕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어 경비하기 쉬운 교차로 한둘을 골라 일왕의 승용차가 부러 빨간불에 걸리도록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폭로하고 있다.

‘텐노’는 텐노여야 한다
 이 수기는 앞서 말한 대로 미치코 왕비를 주표적으로 하고 있다. 수기에 따르면, 미치코 왕비는 감정 변화가 시하고 세심하고 꼬치꼬치 따지는 성격이다. 시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1시간 이상 나무라기가 예사다. 또 왕실의 모든 일에 일일이 간섭해 시중들이 왕보다 왕비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수기는 미치코 왕비를 마치 女帝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일본 최대의 주간지 《주간 文春》은 이 수기보다 더 통렬히 미치코 왕비 비판 캠페인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발행 부수 약 60만인 우익 성향 《주간 文春》이 첫 비판 기사를 실은 것은 이 수기보다 4개월 앞선 지난 4월15일. <(일왕의)신 거처를 둘러싼 문제>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약 60억엔을 들여 왕궁 내에 거처를 증축하고 있는데 과연 불황 때에 방이 1백개나 딸린 거처를 새롭게 마련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하고 왕실을 비판하는 첫 포문을 열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히로히토 전 왕이 거처했던 곳에는 현재 와병중인 왕후가 살고 있는데,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왕후에게 박대받았던 미치코 왕비가 그와는 얼굴을 맞대기 싫어서 새로운 거처를 마련토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미치코 왕비는 일본 왕실 사상 첫 평민 출신 왕비다. 그 때문에 그는 왕세자비 시절 숱한  박대를 받았는데, 특히 왕후를 비롯한 왕족들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진다.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많고 늙어 보이는 것이 이것이 원인이라는 사실은 일본에서는 이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주간 文春》은, 4년전 정식으로 왕비로 등극해 궁중의 실권을 장악한 미치코 왕비가 그에 대한 앙갚음으로 자기 식의 궁중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는 또 지난 9월 이탈리아와 독일을 공식 방문한 일왕 부처의 여행 경비 약 2억엔 중 양보대가 3천5백만엔, 선물비가 8천만엔이나 계상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또 새 거처에 영사실·콘서트회장 등 초호화판 시설이 즐비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미치코 왕비의 사치와 낭비에 비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언론의 왕실 비판은 사생활 문제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주간 文春》은 지난 6월10일호에 궁중 연회에서 기미가요 연주를 중지한 것을 크게 문제삼았고, 9월30일호에는 유업에서 귀국하는 일왕 부처를 영접하러 나간 활공막료장(공군참모총장)이 궁내청 요청으로 군복 대신 사복차람으로 나갔다는 점을 대서특필했다. <텐노(천황), 황후 양 폐하는 자위관의 제복을 싫어한다>라는 충격적인 제목을 단 이 기사는, 아키히토 왕이 자위대 제복을 싫어하기 때문에 현역 군인이 사복을 입고 영접하는 불상사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일련의 왕실 비판 보도는 한마디로 일본 왕실의 근본적인 존립 문제를 둘러싼 수구파와 개혁파의 대립에서 흘러나오는 마찰음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키히토와 미치코 왕비는 결혼 직후부터 왕실 개혁에 적극적이었다. 오랜 전통인 親子 분리 양육의 관례를 깨고 2남1녀를 손수 기른 것도 그 중의 한 예다. 또 젊었을 때 아침 10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샐러리맨적인 왕을 꿈꾸었다는 아키히토는 서유럽 왕실처럼 사생활을 크게 중시해 왔다.

 그러나 극우 세력을 등에 업은 수구파는 바로 이러한 궁중 개혁이 큰 불만이다. 비록 패전은 했지만 ‘텐노’는 어디까지나 강한 구심력을 갖는 사회적 통합자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때문에 ‘텐노’는 사생활보다는 공적 생활을 우선 해야 하며, 왕실 개방은 자칫 왕실 대중화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왕실을 둘러싼 개혁·개방 논쟁은 하나의 시대적 조류다. 왕실 비판이 계속되자 59회 탄생일 행사를 앞둔 미치코 왕비가 지난 20일 갑자기 쓰러져 실어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텐노는 어디까지 텐노여야 한다’는 수구파의 반발로 이 소동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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