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夜花’로 시드는 한국여성들
  • 도쿄 ● 김재일 편집위원보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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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현지취재/아카사카에 5천여명 술집 종사… 대부분 5백만엔 이상 빚더미

저녁 9시30분. ‘코리아 타운’으로 불리는 도쿄 아카사카의 번화가인 다마치도리. ㅋ클럽에 들어서면 가라오케가 설치된 30평 넓이의 홀에 둥근 테이블이 10여개 놓여 있고 한국인 호스티스 30여명이 각 테이블의 손님들과 어울리고 있다. 손님과 호스티스가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합석한 좌석은 물론이고 다른 좌석의 손님들도 같이 손뼉을 치며 꽤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국술집은 아카사카에만 줄잡아 5백개 정도이고 종업원은 한집에 평균 10명이다.

술집은 스낵형과 클럽형으로 구분되는데 종업원수가 스낵은 한두명이고 클럽은 대개 10명 이상 70명까지 된다. 스낵은 오후 7시30분부터 새벽 3시까지 영업하며 클럽은 같은 시각에 영업을 시작하여 새벽 1시에는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으로 바뀜과 동시에 주인도 바뀐다. 기본요금이 스낵은 한 사람당 1만엔, 클럽은 2만엔이다. 팁이 없는 대신 시바스 리갈 등 양주값으로 스낵은 병당 2만엔, 클럽은 3만엔을 따로 내야 하므로 두 사람이 클럽에서 한잔하려면 7만엔이 족히 든다.

아카사카는 사연많은 한국여자 5천여명의 애환이 얽히고 설키며 그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이 엇갈리는 곳이다. 10년전 이곳에 와 호스티스 생활을 하다 7년만에 독립, 아카사카에서 스낵을 운영하고 있는 姜모(38) 씨는 매달 가겟세 50만엔을 지불하고 1백50만엔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원화로 계산하면 7백50만원이니 간단한 액수가 아니다.


유학 · 관광비자로 건너가 일본인과 위장결혼

“이만큼 자리를 잡기까지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예요. 술에 취한 채 주차장에서 손가방을 베고 잠을 자다 7만엔을 털린 적도 있고 택시를 탔는데 잠들어 안깨어나자 운전기사가 경찰서로 인계, 그곳에서 밤을 지샌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호스티스 생활 10년이 돼도 독립하기가 어렵고 가게를 운영한다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姜씨는 말했다. 그만큼 한국술집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한국인 호스티스의 일급은 평균 2만엔 정도로 월수입이 보통 50만엔이다. 그들은 대부분 어학연수를 빙자한 유학이나 관광목적의 비자로 이곳에 와 비자기간이 끝나기전에 비자목적을 변경한다. 장기체류를 위한 방편으로 태반이 일본인 남자와 위장결혼을 하는데 호적상 3년간 계약결혼의 대가로 2백50만~3백만엔을 지불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민국관리들이 한국술집을 불시에 ‘습격’하는 경우가 많아 종업원들은 항상 ‘튈’ 준비를 하고 일했는데 도망가다 건물위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한국여자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1백여명의 한국인 브로커들이 한몫을 한다. 여자들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소위 ‘마이낑’(前金) 을 한 사람당 2백만엔까지 꾸어주고 숙식제공 월수입 25만엔의 조건으로 그들을 단체로 끌고와서 비자 연장 등의 올가미를 씌워 한 사람당 매월 20만엔씩을 뜯어낸다. 브로커들은 호스티스들이 도망 못가게 첫 3개월간은 합숙시키며 여권을 압수한다고 한다. “와서 3년이 지나면 자리가 조금씩 잡혀 맘만 독하게 먹으면 돈을 모을 수 있으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요.” 강씨에 따르면 이곳에 온 한국여자들 중 저축을 하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 5백만엔 이상 빚을 지고 있는데 이는 브로커로부터 받은 전금과 사치, 그리고 노름 때문이다. 줄잡아 80% 정도가 실패해서 다른 지역으로 피해가버리든가 ‘헤어나지 못할’ 길로 빠져버리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위통을 앓고 있는 강씨는 2년뒤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돈도 좋지만 이곳에 있다간 제명대로 못 살 것 같아서” 이다.

이곳에 나와 있는 한국여자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다. 그래서 화투를 하게 되고, 잠을 못자 술을 더 먹게 된다. 한국여자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2년전부터 아카사카에 ‘호스트 바’라는 새로운 형태의 술집마저 생겨 10군데가 성업중이다.

ㅊ클럽의 보조마담 金모(32) 시는 서울의 ㅎ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와 3년전부터 이 길로 들어섰다. 그녀는 하루 3시간씩만 자면서 옷, 보석, 시계장사뿐만 아니라 호스티스 생활을 하면서도 스낵코너를 운영, “돈은 꽤 모았으나 몸을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그동안 몇번씩이나 병원에 실려갔고 콩팥이식수술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월수입은 1백만엔 정도. “지금 가진 돈은 없고 1천만엔과 8백만짜리 계를 붓고 있는 것이 고작” 이라고 했다. 아카사카에 밤이 깊어가면서 이곳에서 몸과 꿈을 짓밟혀버린 한국여성들의 소리없는 흐느낌이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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