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폭행현장 취재 몰두 정당한가
  • 김동선 편집부장 ()
  • 승인 1991.06.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널리즘은 전문직…뉴스 보도에 책임져야

 사진기자가 시위현장에서 취재활동중 바로 그의 옆에서 분신자살사건이 발생했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가지로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직업적 본능으로 분신장면을 촬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적 도리’로 분신자의 몸에 붙은 불부터 끄려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계 풍토로 보아 촬영보다 불을 끄는 일에 열중해 현장사진을 놓친다면 그는 분명히 회사 동료들로부터 “네가 소방수냐”라는 놀림과 함께 바보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지난 5월18일 강경대군 2차 장례식이 열렸던 연세대 앞 철길에서 일어난 이정순씨의 분신현장에서는 취재중이던 사진기자 가운데 두어명이 “사람 죽어가는데 사진만 찍는다”는 힐난과 함께 구타당했다. 이 순간을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여 말썽을 빚은 홍콩의 유력 영자지 <사우드차이나모닝포스트>의 스티링어(비상근기자) 부르스 체스먼 기자의 기사에도 “사진기자들은 셔터만 눌러대고 있었고 아무도 그녀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고 촬영에만 열중했던 사진기자들을 비난했다.

총리 수모 당할 때 기자들 취재 전념
 이 사건과는 다르지만 정원식 총리서리가 한국외국어대 구내에서 학생들로부터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으며 수모를 당할 때 언론사 기자들은 취재에 전념했지만 외대학보사 기자 2명은 정총리서리를 보호했다.

 외대학보사는 사건 다음날 이 사태 관련 주동자로 찍혀 제적대상자 명단에 오른 박재철군과 최윤경양은 현장에서 취재활동을 벌이던 중 학생들의 폭력이 지나쳐 이를 말리다 주모자로 지목됐다며 “이런 사실은 당시 정총리서리 옆에 있었던 비서관들이 알고 있다”고 확인을 요구했다.

 만일 외대학보사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취재에만 열중했던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활동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는 “기자들은 왜 위기에 처한 정총리서리를 보호하려 하지 않았느냐” 하는 ‘순박한 비난’이 나올 수 있다.

 위 사례들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지만 일본에서도 85년 기자들의 현장취재 윤리문제로 일본언론계가 떠들썩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32세에 불과했던 토요타 상사의 나가노 회장은 증권과 골프회원권을 미끼로 “이렇게 하면 부자가 됩니다”라고 선전해 주로 노인층을 상대로 2천억엔(한화 7천5백억원)을 사기·갈취했는데, 결국 경찰이 수사에 착수해 나가노 회장은 체포 직전에 놓였다. 이 사실을 눈치챈 40여명의 기자들은 오사카의 나가노 회장 자택 맨션 앞에서 경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두명의 청년이 경찰보다 먼저 나타나 아파트 창틀을 뜯어내고 아파트 방으로 침입했다. 이 순간부터 기자들은 취재경쟁에 열을 올렸고, 두 청년이 대검으로 나가노를 살해하는 장면까지 사진기자들에게 포착됐다. 두 청년 중 하나는 나가노 회장을 살해한 뒤 피묻은 대검을 보이며 기자들에게 “이런 자는 없애버려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 살인사건 장면은 이날 밤 텔레비전에 방영됐는데, 그 충격파는 엄청났다. NHK에는 살인행위를 저지하지 않고 취재에 몰두한 기자들을 비난하는 항의 전화가 1천여건이 걸려왔고, 다른 언론사들도 시청자와 독자들의 거센 항의에 시달렸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산케이신문> 사회부장은 오사카 판에 다음과 같은 해명 기사를 실었다. “기자 개인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때 경찰이 없었으므로 기자들은 불가항력적이었다. 지금 우리는 독자들의 항의에 겸허한 자세로 이를 받아들인다.”

우리 언론계엔 문서화된 ‘기자수칙’ 없어
 이 사건 파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방 변호사 2명은 최고검찰청과 오사카경찰에 보도진을 정신적 살인방조죄로 고발했고, 여론은 일본언론의 상업주의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무분별한 과열 취재경쟁은 언론의 상업주의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현장에서 기자들이 범행을 막지 못한 것은 범인들이 대검을 휴대하고 있었으므로 ‘불가항력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보도진 중 일부는 무전으로 회사로 연락을 취해 경찰에 통보해줄것을 요청한 사실이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참혹한 타살방법’을 생생하게 보도한 것은 분명히 언론윤리에 위배된다.

 현재 우리 언론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문서화된 기자수칙은 없다. 외국의 경우에는 미국의 CNN만이 다음과 같은 명확한 지침을 정해놓고 있다. “CNN 기자 프로듀서 또는 촬영기자는 직무수행중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개인의 생명 또는 재산에 위협이 가해질 것으로 보이면 관계당국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면 분신현장과 시위현장에서 기자들은 일차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결론부터 내린다면, 저널리즘은 전문직이기 때문에 기자는 분신자살 현장에서 취재활동에만 전념해도 비난받을 수 없다. 자살방조죄가 성립되는 게 아니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나 우리 법조계에서는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를 근거로 들면서 “직업상 정당한 직무수행은 벌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힌다. 李世甲 변호사는 “일반 시민이 불을 끄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면 도덕적 문제가 있겠으나, 사진기자가 촬영에 전념한 것은 정당한 업무수행 행위로 해석해야 되므로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자 홀로 있을 때 분신하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 촬영만 했다면 도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언론계의 윤리강령에는 이러한 경우에 대비한 세부지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나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기준 및 윤리강령 중 ‘기자의 역할’ 부분은 분신현장과 같은 사건취재에 있어서 기자가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래로 본지가 그리고 신문 일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기자는 무대 밖 청중 속에서 남아 있기 위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보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 지침은 결국 저널리즘의 원론이므로 우리에게도 통용될 수 있다. 따라서 분신현장은 물론이고 한국외국어대에서 기자들이 취재에만 전념한 행위는 비난받을 수 없고, 학보사 기자들의 정총리서리 보호행위는 그들이 전문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기자수칙이 적용될 수 없다.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 우리 언론은 또다시 공정보도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따라서 이정순씨 분신현장에서 일부 사진기자들이 구타당한 것은 작금의 언론이 불신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