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복지과장 1백69명 증원”
  • 여운연 기획특집부 차장 ()
  • 승인 1991.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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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季順 정무제2장관

정무제2장관실은 세계적으로도 몇 안되는 여성문제 전담부처이다. 북방정책과 함께 6공이 가장 자부하고 있는 여성정책의 산실이다. 실제로 여성계의 기대를 모으며 88년 2월 정무제2장관실이 탄생한 이후, 가족법 남녀고용평등법 모자복지법 영유아보육법 등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켜준 일련의 법안들이 통과됨으로써 그 존재가치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여성관련 업무 총괄 부서인 정무제2장관실은 많은 여성들에게 아직 낯설기만 하다.

 □□□ 金□□ 전임장관에 이어 1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李□順 장관(63). 24명의 국무위원 중 유일한 여성 국무위원인 그는 별로 소리없이 일을 처리해 ‘조용한 실천가’란 평을 듣고 있다. 서울대 사대 영어과 교수로 27년간 재직하면서 전문직여성클럽 한국연맹 한국여성유권자연맹 등 여성단체장을 역임한 학자 출신. 광역의회 선거에서 여성후보들이 참패한 선거결과를 놓고 행정부내 최고 여성책임자인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장관에 취임하신 지 1년3개월 남짓 되는 것 같습니다. 전임장관에 비해서도 그렇고 6공의 잦은 각료경질관례로 보면 이장관계서는 ‘장수장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수장관에 들어가는 겁니까. 작년만 해도 그 기준이 2년 정도돼야 장수장관이었는데 지난번 개각 때는 1년2개월이 장수에 들어가더군요. 1년3개월이 됐는데 장수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고, 어쨌든 주어진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다른 국무위원들과 함께 합심해 나라발전에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또 때가 되면 나가는 거고요.

●세간에서는 학자 출신인 이장관이 ‘보수적’이라고들 평하고 있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요? 그것은 학자였기 때문이기도 할테고. 글쎄 진보적 여성은 아닐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제 생각 자체는 여성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는 상당히 앞서 있어요. 행동면에서는 좀 조용하게 일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활발하게 비치는 않았겠지만 안으로는 적극적인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대학교수들을 총리를 비롯해 각료로 발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자 출신으로서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어떤 점이 유리하며, 또 어떤 때 한계를 느끼게 됩니까?
 좋은 점이라면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데 좀 체계있게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일까요? 결국은 모든 면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성실하게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 유리한 점일 겁니다. 한계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탁상공론이 될 수가 있다는 것, 불리한 점은 제 경우는 순진하고 거짓말을 못하니까 대인관계에서 정치성이 부족하다는 걸 들 수 있겠지요.

●그동안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정책은 무엇입니까?
 지난 1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선 여성정책추진기구가 확장됐다는 것입니다. 정무제2장관실이 생기면서 각 지방에 시·도가 정복지국이 생겨 전부 여성국장을 임명했거든요. 그런데 인구 10만 미만 시·군·구에는 가정복지계밖에 없었어요. 계장과 계원 두 사람이 불우아동 여성 노인 청소년문제, 그리고 묘지관리까지 다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규모로는 도저히 폭주하는 가정복지 행정업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건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금년 4월1일부터 인구 10만 미만의 1백69개 시·군·구의 가정복지계가 가정복지과로 승격해 1백69명의 여성과장이 태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6백76명의 여성공무원이 증원됐어요. 이는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하나는 여성개발원이 지난 4월에 여성 정책기구로 이관됐다는 것입니다. 정책개발 기능이 좀더 활성화되겠지요. ‘정무’라는 게 중앙집행부서가 아니고 각 부처에 널려 있는 여성정책을 종합조정하고, 서로 협의해 정책을 개발하는 기능을 갖고 있거든요. 또 여성개발원에 ‘공동의 장’을 건립하게 돼 있어 금년내로 개발원 바로 옆 땅에 착공할 겁니다. 기구상으로는 그렇고, 고용·복지면에서는 당정협의를 통해 지난 6월19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지방공무원의 성별구분 모집 철폐를 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성취업의 문호가 굉장히 넓어질 겁니다. 그다음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사업자에 대해 노동부가 시정지시를 내리고 두 번 이상 불응할 때는 사법처리를 하도록 각 지방노동사무소에 시달한 것입니다.

●지난번 광역의회 선거에서 여성후보들의 참패는 많은 여성들에게 뼈아픈 한계를 느끼게 했습니다. 8백66명을 뽑는데 63명의 여성후보가 도전해서 8명만이 당선되는 데 그쳤습니다. 여성 관련정책 전담부서 책임자로서 이런 선거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처음부터 여성후보 공천이 너무 적어 실망했습니다. 사실 행정부에서는 정치권 일에 깊숙이 간섭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저로선 여성의 정치참여에 관심이 많아 당에다 여성후보 공천을 많이 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원래 지방자치제란 생활과 관련된 사안을 다룬다는 인식을 가져야 되는데, 이번에는 당이 개입하는 바람에 전부 정치가를 뽑는 것처럼 돼버렸어요. 이번에 저조한 데는 우선 공천이 적었다는 것, 또 남성 위주의 권력지향 성향이 높아 성차별 의식도 있었고. 결국은 공천이란 게 자금과 조직력있는 당선 가능한 이를 찾고, 그래야 다음 총선에서 뒷받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성 공천이 적었다고 봐야지요. 그 다음은 경력있고 훈련받은 여성 정치지망생이 아직까지는 적다는겁니다. 프랑스 파리의 여성 부시장을 만났더니, 겨울은 정치인도 전문인이니까 그 안에 뛰어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2명의 여성장관도 만났는데 2시간쯤 얘기하고 나서 지역구 관리하러간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여성들의 정치경력을 쌓은 후 선거에 참여해 당당하게 싸워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1%란 당선율은 외국사람들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치거든요. 그다음 지방자치 선거에 나가려면 그 지역에 바탕을 두고 뿌리를 내려 평소에 대민 봉사활동을 펼쳐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총선도 있는데 남성 못지 않게 잠재능력을 갖춘 많은 여성들이 지금부터라도 훈련을 쌓았으면 좋겠어요.

●남성 위주의 정치권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정치권 진출을 위해 비례대표제·공천할당·선고공영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은 것 같습니다.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특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막연한 생각은 과거에도 가졌었어요. 그런 검토가 여성계에서 활발히 있어왔는데, 깊이 연구해보면 비례대표제·공천할당제 등도 그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특별한 혜택을 준다는 것은 평등원칙에 어긋나고, 뒷걸음질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돼요. 어쨌든 선거제도라든지 정치문제는 정부에서 관여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남성들이 잘 양보 안합니다. 대만의 경우는 40년대말부터 10%의 여성의석 할당제도를 실시해왔어요. 그런데 최근에 한 대만여성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지금은 15~16%까지 당선되고 있어 ‘10%’라는 제도가 구태의연하다면서 오히려 반대한다고 하더군요. 이를 모방하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든 여성을 많이 공천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또 선거풍토가 여성이 적응하는데 아주 힘드니까 정당별로 여성후보의 선거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체제가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판례가 최근에 나와 관심을 모았습니다만 여성계에서는 재산분할청구권을 생활속에 정착시키기 위해선 여성에게 불리한 세법개정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이점에 관해 장관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이 문제는 저희가 당정협의 때 들고나간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개정된 가족법 취지에 맞도록 관련 세제를 개선해야 된다해서, 1단계로 상속세의 공제액이 과거에 비해 파격적으로 높아지긴 했어요. 그렇지만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학자들의 기초조사가 이루어져 작년에 책자로 내놨고, 금년에는 한 연구소에서 실제 가사노동을 계량화하여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상속세나 증여세의 경우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는 판단하에 세제개선의 방향모색을 위해 학계와 여성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주무부처와 협의중에 있습니다.

●88년 2월 정무제2장관실 출범 당시 대통령명을 받아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문제 등 관련업무를 전담키로 돼 있었으나 관련 부처간에 혼선을 빚다가 지난해 여성관련 업무만 전담키로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다수 여성들은 여성문제 전담부처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에 많이 홍보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여성지위 얼마나 향상되고 있는가》란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다만 아직 역사가 3년밖에 안됐고, 이름 자체도 ‘여성처’정도 되면 분명할텐데 ‘정무’라고 하니까 정치활동을 돕자는 걸로 생각되기 쉽지요.

●6공에 들어 신설된 정무제2장관실은 당초 명분과는 달리 ‘힘없는 부처’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인원도 30여명으로 하부구조가 취약해 타부처의 여성관련 업무를 조정하기에도 역부족 아닙니까?
 기능직까지 포함해 34명, 실무자는 20여명에 불과해 현재 3개국이 있는데 적어도 2개국은 더 있어야겠다고 판단돼 직제 개정안을 총무처에 제출해놓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은 참 많아요.

●듣기로는 정무제2장관실의 예산이 서울시 가정복지국 예산의 5분의 1정도라는데, 이처럼 적게 책정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각 부처간의 여성관련 정책조정과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운영, 여성단체 사업지원, 정책개발을 하는 데 예산이 아주 부족합니다. 활동하는 업무는 많은데 집행은 각 관련부처에서 하거든요. 집행기능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은 일대로 많고, 우리는 독촉만 하고…. 총무처나 공보처처럼 앞으로 ‘여성처’가 되면 어느 정도 집행능력을 갖고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겠지요. 제 임기중에는 안되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한꺼번에 요구할 수도 없고, 기다려보는 거지요.

●지난 연말 여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영유아보육법은 비판도 많던데요. 민간지역 탁아소를 모두 불법화시키는 등 무엇보다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 더 큰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그동안 직장탁아는 노동부, 지역탁아나 가정탁아는 보사부, 유아원은 교육부 관할로 돼 있어 하나로 통합이 돼야 한다 해서 영유아보육법이 생겼어요. 또하나는 아이를 기르는 데는 신체·지능발달을 위해 시설도 갖추고 보육사도 제대로 확보해야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 자체는 잘 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탁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그들이 갖고 있는 시설에다 정부가 보조를 해줘야 된다는 것이거든요. 정부로서는 아이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아야 된다 해서, 3년 동안 시설을 보완할 말미를 주면서 등록을 하도록 하고 있어요. 보사부 당국자에게도 지역탁아측의 의견을 가능한 수렴해달라고 얘기했습니다.

●27년간 강단생활을 하셨는데 언젠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실 계획입니까?
 이제 얼마 안있으면 정년퇴직이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서울대는 다시 받아주지 않습니다. 할 때까지 하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여성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면서 제 전공분야에서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해 저술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계속 늘어날 것인데 장관께서는 여성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입니까. 어떻게 보면 정무제2장관실이 필요없는 때가 빨리 와야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남녀평등 문제는 구미 선진국에도 상존에 있습니다. 프랑스만 해도 아주 보수적이어서 여성들이 불만을 많이 갖고 있고 우리처럼 남녀고용평등법은 있는데 벌칙은 없어요. 남녀평등이란 게 유토피아가 아닌 다음에야 완전히 이루어지기엔 오랜 세월이 걸릴 겁니다. 우리나라는 여성정책에 눈을 뜬 지 이제 얼마 되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남녀평등을 위한 제반 시책을 개발하면서 일관성있게 추진해나가고,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확대해나가는 정책을 심도있게 개발해나가겠습니다. 도덕성 회복이라든지 건전생활의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여성이고, 여성의 결집된 힘이 건강한 국민생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지금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를 향한 이 시점에서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뭔가 도약을 해야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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