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지하 30미터의 진실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2.06.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방부·민간 탐지자 서로 ‘장비·능력’의심 軍 확실한 물증 제시 못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연방이 붕괴한 이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꾸준히 추진해온 우리 사회는 요즘 매우 당혹스러운 질문을 한 가지 받고 있다. 북한이 아직도 무력으로 남한을 장악하기 위해 땅굴을 파들어오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같은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군이나 정보기관 관계자가 아니라 일단의 민간인들이다. 전직 보안사 준위 출신인 정지용씨(34) 등은 수년 동안 사재를 털어 서울 근교를 탐사한결과, 북한이 남족을 향해 땅굴을 파들어오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포착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잇따라 언론에 공개했다.

 이들은 경기도 김포·연천·파주·동두천 지역 등에 뚫은 3백여개의 시추공에서 녹음했다는 청음테이프를 공개했는데, 이 테이프에는 착암기 굴착음·갱차음 등 기계음과 흡사한 소리와 심지어는 사람의 육성가지 수록돼 있다. 이들은 또 모두 여섯 군데의 시추공에서 인공시멘트로 추정되는 물질을 발견했다고 밝히고, 이상 징후가 하루가 다르게 남하하는 것으로 볼 때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이미 서울 시민의 발밑까지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고 확언했다.

 이같은 의문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터무니없다”고 일축했지만 민간 탐지자들은 이에 질세라 다음날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틀림없다”고 반박하고 나서 땅굴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점차 가열되고 있다. 국방부는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민간 탐지자들이 지적한 지역을 군의 전문인력과 고도의 땅굴탐지 장비를 투입해 정밀분석했으나 적어도 민간인들이 지적한 지역에는 땅굴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민간 탐지자들이 기계음이라고 주장하는 지하음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분석해본 결과 시추기의 충격음이나 전기잡음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군의 청음기에서는 어떤 이상음도 포착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잡음이 녹음된 까닭은 군에서는 시추를 한 뒤 시추공이 충분히 안정된 다음(2~7일 후) 청음을 하는데, 정씨 등은 시추한 뒤 바로 녹음을 했기 때문에 돌멩이나 흙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녹음됐을 것으로 풀이했다. 또 민간 탐지자들이 녹음기 성능을 실험해본 결과 2m 떨어진 곳에서 나는 착압기 타격음은 녹음됐으나 기계음 파형이 잡힐 정도는 아니었으며, 5m 정도 떨어진 곳에서의 타격음은 아예 녹음조차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방부, 민간인의 증거 조작 가능성 비쳐

 “위에서 들려”“이게 뭐야”등 녹음기에 잡힌 육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분석 결과 남한 사람들의 통상적 어투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로 미루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역주민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민간 탐지자들이 인공시멘트라고 주장하는 물질은 물에 넣었더니 10분 내에 모두 분해되고 말았다며 “인공시멘트가 어떻게 10분 만에 물 속에서 용해될 수 있겠는가”하고 반문했다. 그리고 코아의 직경이 시추공보다 큰 점을 들어 이는 시추 때 추출된 돌가루를 민간인들이 통조림통에 응고한 것 같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볼 때 국방부는 민간 시추자들의 탐지능력을 매우 불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노골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으나 민간인들이 여러 증거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대해 민간 탐지자들은 극도의 불쾌감을 나타내면서 기자회경에서 “이제까지는 군의 입장을 생각해 될 수 있으면 덮어두고 넘어가려던 일”까지 공개했다.

 이들은 국방부가 입만 열면 전문인력·고도의 장비 등을 내세워 민간인들의 의견을 깔아뭉개는데 “군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씨 등은 기자회견에서 전방 ㅇ사단 지역에서 청음병으로 근무하던 ㄱ병장이 지난해 3월 털어놓은 군의 땅굴 청음 실태에 대한 증언을 공개했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 있는 청음시설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용지물이다. 이것들은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청음병들이 이 쓸모없는 기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귀로 폭발음 등을 듣고 보고를 올려도 묵살되기 일수이다.”

 

“혹시 우리측 시설 아니냐”등 소문 무성

 88년 8월 자신의 텃밭을 시추현장에 내줬다가 정시 등과 합류하게 된 김천환씨(44)는 군이 땅굴을 탐사하는 자세가 얼마나 소홀한가 하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를 공개했다.

 “우리 밭에서 이상 징후가 있길래 군부대에 요청해 부대 ‘전문가’들과 1주일 동안 같이 청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허술하게 만든 녹음기에는 소리가 잡히는데 1km 밖에 있는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도 잠을 수 있다는 군의 청음기에는 아무런 소리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 조사해봤더니 그 기계는 벌서 고장이 난 지 오래였다. 그들은 고장난 기계를 들고와 밥까지 얻어먹으며 1주일을 허송한 것이다.”

 그들은 군이 자랑하는 ‘고도의 장비’에도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금 군이 자랑하는 최신장비라는 것은 대부분 미군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미군은 돈이나 많이 썼지 땅굴을 찾은 적이 있습니까. 월남전 때도 월맹군이 사이공 대통령궁을 향해 3백70km나 파고들어갔는데 미군은 까맣게 몰랐어요. 나중에 월맹이 승전한 후 자랑삼아 밝히고 난 다음에야 알았지요. 미군의 위성감지 능력을 너무 믿는데, 그거 다 땅굴을 파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입니다.”

 군에서 오랫동안 땅굴문제를 깊이 연구한 정씨는 “지금 우리 군은 땅굴을 탐지해낼 만한 능력도 의지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국방부가 발표한 ‘정밀검사’결과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국방부가 “민간인들이 지적한 지역에서 만큼은 땅굴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시추 몇 번 해보고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4개의 땅굴은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찾아내는 데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이나 걸렸는데 국방부가 무슨 배짱으로 그 지역에 땅굴이 없다고 호언장담하는지 영물을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지하음과 녹음기 성능에 대한 국방부 주장에는 상당한 모순이 있다고 반박했다. 국방부는 녹음기에 잡힌 음은 시추기 충격음이라고 발표하고 민간인들의 녹음기는 착암기의 충격음을 제대로 녹음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앞뒤가 안맞다는 것이다. 어떻게 5m 떨어져 있는 곳의 착암기 타격음도 잡지 못하는 녹음기가 10여m나 떨어진 곳에 있는 시추기의 충격음은 잡을 수 있느냐 하는 반론이다. 또 표준과학연구원측에서 그 이전에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자신들이 제시한 녹음 테이프를 분석해보고 기계음이란 판정을 내린 바 있는데 그 사실은 왜 쏙 빼고 발표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시멘트 코아를 통조림 깡통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국방부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기왕 조작하려면 제대로 하지 왜 10분이면 물에 풀어질 돌가루를 and처 군에 보내겠느냐 하는 것이다. 당시 정지용씨는 오해를 살까봐 보안대 모 중사를 입회시켜 시추한 뒤 코아를 보냈는데 잘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민간인들을 매도한다고 분해했다.

 군과 민간 시추자들이 팽팽히 맞서자 항간에는 밀도 끝도 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혹시 우리측 시설이 아니냐, 군이 벌써 감지하고 발표할 ‘택일’을 하고 있는데 민간인들이 재를 뿌려 저렇게 어정쩡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 등 별의 별 말이 다 나돌고 있다. 군은 땅굴의 존재 여부에 대해 그들 민간 탐사자들뿐만 아니라 전국민을 설득할만한 확실한 물증을 하루 속히 제시해야만 할 것 같다.

 민간 탐사자들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지적하는 곳을 30m만 한번 속시원히 파보자고 주장한다. 지하 30m속의 진실을 몰라 온 나라가 떠들썩한 모습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