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드의 연습벌레들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2.07.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문음악회’ 계기로 살펴번 名門 · · · “쉬는 시간에도 연습실로”



“무대 경험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떨리고 신경이 쓰이는 무대는 처음이었다.” 미국 줄리어드 대학(The Juilliard School)에서 첼로를 전공하는 허윤정양은 6월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협연한 소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가 브루흐의 ‘콜니드라이’ 연주 후 녹초가 될만큼 긴장한 이유는 협연한 오케스트라 때문이었다. 지휘 임원식(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바이올린 김남윤(서울대 교수) 최한원(이화여대 교수) 최민재(중앙대 교수), 첼로 홍성은(단국대 교수), 비올라 오순화(숙명여대 교수) 등 30여명의 구성원이 모두 줄리어드의 대선배이자 선생님들이다.

 솔리스트로 활약하는 중견 연주가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후배에게 협연 무대를 마련해주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이는 유학생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동문음악회였기에 가능했다. 지난 90년 국내에서 결성된 ‘줄리어드 한국 동문회’(회장 백낙호 서울대 음대 교수)는 ‘장학기금 모금 10년 사업계획’을 세우고 그해  첫 동문음악회를 열었다. 줄리어드 한국 동문은 모두 4백여명에 이르는데, 현재 국내에서 활약하는 동문은 1백여명이다. 이들은 2년 단위로 음악회를 열어 기금을 마련하고, 일시 귀국한 후학들에게 연주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해마다 오디션 · · · 성적 나쁘면 출교당해

 줄리어드 동문음악회는 다른 음악회와는 달리 많은 여운을 남긴다. 줄리어드는 어떻게 교육을 시키기에 한국인 동문들로 하여금 국내에서 수준 높은 음악회를 열게 하고 또 결속력을 다지게 하는가.

 1905년에 개교한 줄리어드는 이츠하크 펄만 · 핑커스 주커만 · 요요마 · 레요틴 프라이스 등 세계적인 연주가들을 끊임없이 키워왔고, 한동일 정경화 정명화 백건우 정명훈 등 한국 출신 세계적 연주가와 국내 교수 및 유명 연주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이다.

 해방 전 김영의(전 이화여대 음대 학장)로부터 시작된 줄리어드 유학은 해방 직후 미군정 문교부 문화담당 참사관이었던 줄리어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엘리 헤이모위츠 대위의 주선으로 이어졌다. 헤이모위츠는 당시 지휘자 임원식, 작곡가 김순남, 피아니스트 윤기선의 유학을 주선했으나 김순남은 월북해 두 사람만 공부를 하게 됐다. 그이후 한국 음악도들의 줄리어드 유학행렬은 계속 이어졌고, 지금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80여명이 공부하고 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몇년 전부터 주목받아온 장영주(11)도 줄리어드 예비학교에서 일본 미도리의 뒤를 이어 딜레이 도로시 교수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줄리어드 졸업생들은 이 학교가 세계 최고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로 다섯가지를 꼽는다. 우선 교수진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우수한 학생들을 꼽는다. 세번째는 학교가 뉴욕의 문화중심지 링컨센터 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링컨센터에는 뉴욕필 ·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등이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회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네번째는 유명한 연주가들이 이 학교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자주 열며 다섯번째는 연주 기회가 늘 주어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신청만 하면 폴홀이라는 학교 무대에서 협연과 독주회를 가질 수 있다.

 이밖에 교내 콩쿠르가 자주 열리는 것도 꼽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 살벌하기조차 한 학생들 사이의 경쟁이 학교 명성을 드높이는데 크게 작용한다고 전한다. 줄리어드 학부와 예일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코리아심포니 첼로 수석으로 부임한 배일환씨는 “연습실 쟁탈전이 자주 일어난다. 규정에 15분을 비우면 연습실을 양보해야 하는데 14분이냐 16분이냐를 놓고 싸운다”고 말했다.

 싸움을 해가며 연습실을 차지하려는 이유중의 하나로 주 1회 한시간씩만 배정된 지도교수의 레슨을 들 수 있다. 지도교수는 연습이라도 완전한 연주를 원한다. 허윤정양은 “줄리어드의 1주일은 레슨시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강의 중간에 시간만 비면 연습실로 달려간다. 경쟁이 워낙 치열해 늘 연습 강박관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줄리어드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는 박희정씨는 “한국에선 한 학기에 4~5곡만 연습하면 됐지만 여기선 1주일에 3곡씩 1년 내내 연습해야 한다. 토요일 일요일없이 하루 5~6시간은 보통이다. 창문도 없는 감옥 같은 방에서 온종일 연습한다. 해도 못보고 사는 날이 많다”고 전했다.

 세계적 연주가를 꿈꾸며 연습벌레가 되어도 학교 안에서나 밖에서나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1년에 한번씩 있는 오디션 때문이다. 이 시험은 입학시험과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지는데, 만일 여기서 나쁜 점수를 받게 되면 출교 처분을 받게 된다.

 연극 · 무용학부를 신설했지만 줄리어드는 음악학부 학생이 5분의 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연극 부문에는 한국 학생이 한명도 없고, 무용에는 2명이 있다. 음악부문에는 전체 학생의 10분의 1 정도를 차지할 만큼 숫자가 많으며, 강효 교수 등 한국인 교수도 2명이 있다. 토요일에만 수업을 하는 국민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과정의 예비학교는 한국인이 30~40% 정도이다.

 이런 저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번 동문음악회 무대에 선 줄리어드 졸업생들의 충고는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듯하다. 이화여대 최한원 교수는 “그곳 생활은 모든 게 연습을 위한 것이다. 모두가 소질을 타고 났다. 연주시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