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심판대 오른 6공화국 ‘인권’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2.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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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ILO 들에서 ‘유엔 제소’등 구체 대응

 


 지난 3월 16일 법무부와 대전교도소는 발칵 뒤집혔다. 6.29선언 직후인 87년 7월4일 ‘재야침투 간첩’ 협의로 체포돼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복역중이던 장의균씨에게 미국의 대표적 국제 인권단체인 아시아 워치에서 인권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워치는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고 있다고 판정한 세계 각국의 문인들을 해마다 10명씩 뽑아 ‘표현의 자유를 위한 기금’으로 상을 수여한다. 그런데 올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장의균씨가 선정돼 상금 1만달러를 받았던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 정치범은 한명도 없다”고 늘상 주장해오던 정부로서는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하는 또 한가지 일이 벌어졌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창립 3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고난받는 세계 각국의 정치범 30명을 뽑아 그들의 삶을 비디오에 담아서 각국에 돌렸다. 그런데 30명 중에는 지난 84년 안기부에 의해 ‘재독일 유학생간첩’으로 지목돼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로 감형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김성만씨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5공화국까지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인권침해 국가로 낙인찍혔던 한국은 경제성장과 오림픽 개최, 대통령 직선제의 의한 6공화국 등장으로 그같은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또 북방정책과 남북한 유엔가입 등 6공 들어 거둔 일련의 외교적 성과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위상을 상당히 드높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한국의 인권문제를 국제 무대에 공식적으로 끌어들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유엔 가입으로 대표되는 외교적 성과는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져야 할 짐이 종전보다 무거워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장기수·대량 해직이 쟁점

 6공의 인권상황 중에서 현재 국제여론의 주요한 관심 대상은 국가보안법과 장기수 문제, 그리고 교사 노동자 대량 해직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올해 들어서만도 이들 문제에 대한 국제 인권단체들의 구체적 대응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6월 18일 미국의 로버트 케네디 인원 재단은 ‘한국의 인권상황과 민주주의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한국정부의 민주화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국가보안법과 보호관찰법, 강제전향 등을 포함한 인권유린과 억압이 계속되고 있다. 법령 법집행관행 법집행당국 등이 일부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헌법과 국제인권협약이 보장하는 기본인권 옹호에 충실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대통령 집권 이전보다 더욱 정교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다.”

 4월과 5월에는 세계교원단체연맹과 국제자유교원노조연맹이 결사의 자유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한국정부를 유엔 산하 단체인 국제노동기구(ILO)에 공동으로 제소했다. 제소장에 따르면 “한국정부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1천4백96명의 교사를 해고한 것은 ILO조약 제87조, 98조 위반이다. 해직교사들의 저항은 정부가 전교조를 탄압할 의도 때문에 나왔다. 한국 정부는 조속하게 모든 해직교사를 복직시키고 전교조와 정상적인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4월중에는 국제사면위원회가 유서대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강기훈씨에 대해 공정한 재판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려하면서 한국정부에 이 사건을 재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면위는 “이 사건의 주요한 증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실시한 필적감정이었으며 재판부는 판결에서 국과수 문서분석 실장의 감정 결과를 칭찬한 바 있다. 그런데 두달 후 바로 그 실장은 뇌물을 받고 하위감정을 해준 혐의로 체포되었다. 우리 국제사면위는 이 사건으로 인해 국과수의 김기설씨 유서 필적 감정에 대한 신빙성에 의혹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6공의 인권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국제여론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유럽 쪽이다. 한국의 올림픽 개최 및 노대통령의 대유럽외교 강화, 그리고 유럽통합 기운이 무르익어 가면서 유럽 지역에서 한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지난 2월13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시에 있는 유럽의회 녹색당이 주최하고 유럽의회 내 아시아대표단(Delegation 22)이 협력했던 이 청문회는 현재 한국의 인권상황이 호전됐다는 일반적 인식에 회의를 표시했다. 그 증거로는 6공 들어 구속된 정치범의 수가 계속 증가해 5천명선을 넘고 있다는 점과, 인권침해의 핵심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점이 제시됐다. 3시간 밤에 걸친 이 청문회는 “한국 민주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즉각 폐지와 한반도에 냉전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결의 채택으로 끝맺음했다.

 이밖에도 독일 함부르크시에서 운영하는 인권단체 ‘세계 정치범을 위한 재단’은 수감중인 재야 인사 김근태씨와 민종 미술가 홍성담씨를 고문받은 정치범으로 규정하여 석방되면 함부르크시로 초청해 1년간 치료하고 모든 생활편의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유엔산하기구인 유네스코에서도 방북사건 관련자인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를 양심수로 규정해 한국정부에 사면을 요청하고 나섰다.

 이같은 국제인권단체들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국내의 일부 재야세력 주장을 근거로 한 편견적인 자세‘라며 유감을 표명해왔다. 노대통령 역시 외국의 국가 원수들로부터 인권문제에 대한 지적을 받을 때면 ”한국에 정치범은 없다“고 말하곤 한다. 구속된 사람들은 급속한 민주화 추세에 편승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공공연히 부정하는 실정법 위반자들이기 때문에 양심수 혹은 정치범이라고 볼 수 없다는 논리이다.

 

국제인권이사회에 ‘한국 인권’ 의제 상정

 그런데도 국내의 인권단체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자 정부도 과거처럼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있을 수만은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미 유엔 회원국이 된 만큼 산하 인권단체 등을 통해 외교적 노력으로 국제 여론을 돌려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오는 7월13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인권이사회 회의에 정부대표를 참석시켜 질의 응답 시간을 갖는 것도 그같은 방침에서 나온 조처이다.

 정부는 지난 90년 7월 인권보장을 위한 다자간 국제조약인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에 가입했다. 이어서 B규약 제40조의 규정에 따라 국내 인권상황에 관한 최초 보고서‘를 이미 제출했다. 주로 “6공 들어 민주화 조치로 인권상황이 급신장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이다.

 정부대표로는 법무부 인권과장을 중심으로 한 법무부측 관계자 3명과 스위스 대사를 중심으로 한 외무부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인권이사회 회의에는 그동안 국내 인권신장을 위해 활동해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이하 기협) 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반박보고서를 제출해 이에 대한 이사회의 판단과 평가도 주목된다. 반박보고서는 정부보고서의 문제점 및 한국 인권상황 전반에 걸친 평가에서 “6공 출범 직후 겉으로나마 다소 개선되었던 인권상황이 89년 이후 공안정국과 3당 합당을 거치면서 크게 약화되어 왔다”고 전제하고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인권침해 사례와 법 제도의 인권침해 조항을 조목조목 담았다.

 민변과 기협측은 천정배 조용환 변호사, 김경남 목사 등 5명의 대표를 7월초 제네바에 파견해 한국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적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활동에 들어갔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도 이번 회의에 한국의 인권문제가 단일 의제로 오른다는 점을 중시해 이 사회에 별도로 6공화국의 인권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제네바 인권이사회 회의장은 사실상 ‘6공의 인권 청문회’장이 될 전망이다.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시비가 되어온 6공의 인권이 이번 공개회의 석상에서 어떤 점수를 받을지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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