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만들기 ‘공식’은…
  • 송준 기자 ()
  • 승인 199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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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T로 시작, 광고 · 홍보 물량공세… ’사들이기‘까지 동원

 ‘책의 해’가 저물고 있다. 책의 해가 무엇을 남겼는가라는 물음에 출판계는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책의 해를 통해 베스트셀러 만들기가 본격화했다고 보고 있다.
 흔히 베스트셀러는 ‘출판의 광맥’에 비견된다. 지난 80년대까지 이 광맥은 우연하게 발견됐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오면서 베스트셀러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치밀한 전략의 대상으로 바뀌어 된다. 여러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만들기’를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3~4년에 걸친 숱한 시행착오 끝에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하나의 공식으로 추출된다.

 그 공식은 ‘이너 서클(내부자 집단)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출판계에 ‘마음먹은 대로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는 내부자’들이 형성돼 가고 있다는 가설이다. 이들은 책의 기획 · 편집 · 제작 · 영업 · 홍보 · 광고에 이르는 출판 전과정을 ‘공식’에 의거하여 집행한다. 내부자들이 신봉하는 베스트셀러 공식이란 고도로 숙련된 작전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부자들이 어떤 조직이나 모임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내부자와 외부자가 명백하게 구분되지도 않는다. 공식에 눈 뜬 일부 출판인이 각기 다른 마당에서 활동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안별로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참여한다. 베스트셀러 만들기의 주역은 출판사이며, 서점 · 언론 · 광고 등이 조역을 맡는다. 이들 사이에는 끈끈한 인간관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인력으로 작용한다.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책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치밀한 계산에 따라 시작된다. 공식 신봉자들은 늘 독자의 말초적 정서와 재미, 그리고 화제거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것이 독자의 입맛을 돋우는 1차 요인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광고 · 홍보 내지는 언론을 통해 일반 대중의 관심사로 폭발할 수 있어야 물건이 된다.
 탁구선수 현정화의 《여왕이기보다는 여자이고 싶다》, 여성앵커 이야기 《MBC뉴스, 백지연입니다》, 이숙영 아나운서가 쓴 《어쨋든 튀는 여자》, 가수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인기모델 이희재의 《아름다운 여자》 같은 책들이 독자의 관심사와 언론의 촉수에 염두에 둔 기획물에 해당한다. 이 책들은 출간 1주일 이내에 언론 매체를 통해 기사화했고 곧바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진입핶다.

 기사의 효과는 공식이 되어 확대 적용된다. 전직 검사가 쓴 법조계 뒷 이야기 《브레이크 없는 벤츠》, 귀순 북한 가수 김 용의 《머리를 빠는 남자》, 하버드 대학 졸업과 함께 구설수에 올랐던 홍정욱의 《7막7장》 등은, 기사화에 적합한 소재들을 책으로 꾸몄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따위 재벌 총수의 자선전 대여섯 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타이밍 · 타깃 · 타이틀로 독자 잡아라
 그러나 이런 호재는 그리 많지 않다. 여기서부터 베스트셀러 공식이 본격 적용된다. 이때 명심할 것이 ‘기획의 3T’이다. 타이밍(시의성) 타깃(주 독자층) 타이틀(제목 · 표지)이다. 이같은 원칙 아래 출판 기획자는 정치 · 사회 · 문화적 사안을 민감하게 반영하며, 독자의 대중심리와 지적 허영을 교묘하게 수용한다. 동서양 잠언류와 철학 에세이류, 유행성 소설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소설의 경우, 베스트셀러를 보장하는 인기 작가가한정돼 있어, 그 대안으로써 기획에 의한 소설이 일반화하는 추세에 있다. 기획자가 소설의 소재와 얼개를 짠 다음 신예 작가나 집단 창작팀에게 원고를 의뢰하는 것이다. 비소설류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획자가 “이제 원고의 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든지 손질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최근 저자 · 작가 · 역자 소개를 흐지부지 처리한 책들이 부쩍 많아진 것은 이같은 전략의 결과이다.
 기획 부문이 강조되면서 출판사의 기능이 세분되는 경향도 생겨났다. 기획 전담, 공동 집필, 인쇄 · 제본 대행, 홍보 전문회사 등 별도의 업체들이 서로의 업무를 대행해 주는 분업 체계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면, 서점 영업 · 광고 · 홍보 · 언론 이용하기가 기민하게 진행되는데, 그동안 출판사가 닦아놓은 ‘안면 장사’가 여기서 힘을 발휘한다. 거래자와 안면을 익혀두는 과정과, 그 효과는 다음과 같다.
 서점 영업에서 거래자들의 친밀도가 강조되는 까닭은, 7천3백여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 전국 5천여 서점에서 진열 · 판매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유통되는 도서는 10만종을 훨씬 웃도는데, 서점당 평균 도서 진열 능력은 1만권에 훨씬 못미친다.

 한뼘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결사적인 경쟁은 ‘안면 트기’로 이어진다. ㅅ출판사 ㅇ영업부장은 거래 서점(규모에 따라 다르지만)마다 “대표 · 매장관리자 · 과장 · 계장 · 코너 담당 여직원에게 각기 다른 루트로 인사치레를 했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대형 서점 ㄱ기획실장은 ‘일부 서점에서 해마다 직원을 순환근무시키는 관행은 출판사의 인사 치레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관계가 해를 묵으면서 탄탄해졌을 때 비로소 베스트셀러 공식의 고정 변수가 되는 것이다.
 광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소 닦아놓은 인맥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친교가 있으면 알아서 좋은 위치에 광고를 넣어주고 결제여건도 유리하게 잡아준다. 특히 지난해 초부터 책광고가 무제한 물량공세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 광고 지면 잡기가 어려워 안면의 효과는 더욱 커졌다.

 책광고가 바로 판매 실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광고는 독자보다 서점을 겨냥한 것이다. ‘이만큼 광고를 때린 책이다. 좋은 코너에 자리를 만들어다오’라는 뜻이다”라고 ㅁ사 ㅇ영업주장은 말한다. 이 광고들이 베스트셀러 공식을 더욱 강화해줄 것이라는 무언의 합의가 이 메커니즘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만들기의 피날레는 이른바 언론 이용하기에 의해 장식된다. 안면의 효과가 극대치로 나타나는 것도 이 기사화 단계이다. 주로 ‘신간안내’‘서평’‘화제의 책’그리고 책내용이나 저자를 다룬 가사들인데 후자로 갈수록 파급 효과가 더 크다.

 한 중견 출판인은 “기사, 특히 방송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폭발적이다. 만약 신간 · 서평 등 기사로 소개된 책이 함량미달일 경우, 십중팔구 그 책 뒤에 모종의 변수가 숨어 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심한 경우 커미션이 몇백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같은 메커니즘을 거친 물건들은 거개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공식이 검증된 것이다. 내부자임을 자처하는 한 출판인에 따르면, 올해 베스트셀러의 70%가량이 이 공식을 거쳐 만들어졌다.

공식 아는 내부자는 50명 미만
 이렇게 만들어지는 베스트셀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출판계 · 학계에는 옹호론과 비판론이 맞서 있다. 옹호론은, 출판도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바탕을 둔 상품일 뿐이며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98쪽 기사 참조). 현대적 감각에 맞는 포장술과 책에 재미를 부여한 성과도 지적된다. 독자의 범위를 넓혀, 결국에는 독서시장을 개척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논리도 있다.

 이에 대해 비판론은 구체적이고 논리적이며 공격적이다. 독서 애호가인 이세룡씨(영화 평론가)는 “책도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성토한다. “때로는 한권으ㅐ 책이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을수수도 있다. 냉장고, 또는 오리털 파카가 사람에게 그같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책은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중소 서점이나 지방 서점들이 베스트셀러를 집중적으로 비치 · 진열함으로써 독자가 양서를 만날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는 지적도 있다. 《출판저널》 강철주 편집부장은 “베스???셀러가 책읽기의 인스턴트화를 조장하는 바람에, 책 자세가 통속인지 지적 오락 도구로 전략해버렸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같은 형이상학적 비판 이전에,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원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베스트셀러 만들기 전문가로 통하는 ㄱ씨는 “베스트셀러 공식을 아는 내부자는 통들어 50명이 못된다”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4천여개 사는 무실적 출판사다이다. 집 판 돈 등으로 베스트셀러를 꿈꾸며 뛰어든 이들이 까먹고 간 돈으로 인쇄 · 제본 · 고아고사들이 먹고 산다. 출판계 전체로 보면 나아진 것이 없다.“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 가운데 하나인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도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 일례로 ‘사들이기’를 살펴보자. 사들이기란 출판사가 예컨대 정가 5천원짜리 책을 대형서점에다 3천5백원에 팔아놓고 곧바로 5천원에 되사들이는 ㅎㅇ위를 말한다. 출판사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판매 부수를 높여 그 책의 명단을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려고 애를 쓴다.

 일단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면 그 서점에서 책이 잘 팔릴 뿐더러, 언론이 그 목록을 기사화하면 중소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ㅎ사, ㅅ사등 여러 출판사가 “사들이기를 한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최근에는 아르바이트생을 여러 명 고용해 1~2권씩 빈번하게 사들이는 수법을 쓴다. 이렇게 사들인 책을 새 책처럼 다시 제본해 주는 곳도 있다. 교보문고 고승재 과장은 “그같은 수법에 대비해 최근에는, 특정한 기간에 갑자기 많이 팔리는 책은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제외한다”라고 말했다.

“감각적 확대재생산에 활용될 뿐”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결국 독자의 호주머니를 담보로 한 소모전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독자는 소외돼 있다. 독자의 말초적 정서와 구매력이 분석 대상이 될 뿐, 독자의 취향과 의지는 반영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의 역기능을 지적하는 한 출판인은 이를 두고 “밥을 먹고 싶은데 온통 국수와 수제비뿐이라고 비유했다.

 더욱이 베스트셀러 공식은, 감각적인 책의 확대재생산에 활용될 뿐 본격적인 교양 · 학술 서적의 보급에 원용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인가. 대략 세 가지 차원에서 해답을 구해볼 수 있다.
 하나는 공공 도서관에서 안정적으로 양서를 구입하는 것이다. 출판 평론가 이중한씨<서울신문> 논설위원)는 “도서관 도서 구입이 정례화하면, 비로소 ‘안팔리더라도 꼭 필요한 책’들이 안정적으로 태어날 수 있게 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심각한 예산부족증에 걸려 있는 공공 도서관측은 공공연히 출판사측에 무료 기증을 요구한다.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의 국민 1인당 장서 수가 0.19권(03년 통계)인 데 견주어 덴마크는 6.79권(89년)이고 영국은 2.73권(89년)이다.

 다음은 독서교육 및 출판정보 프로그램을 시급히 마련하는 일이다. 《출판저널》 정혜옥기자는 “출판정보 매체의 역할이 절실하다. 영국 · 프랑스에서는 책 · 저자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물론 시청률도 높다. 책 광고는 설 자리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판사의 기획 능력이다. 박종만씨(까치 대표)는 “탄탄한 기획만이 베스트셀러 만들기의 역기능을 극복하는 본질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대개 2~3년 걸려 책을 기획하고, 출판되기 1년 전부터 ‘북클럽’같은 권위 있는 기관을 통해 광고하기 시작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YS는 못말려》는 둘 다 베스트셀러이다. 그러나 하나는 생명이 길고, 다른 하나는 독자가 끊겼다. 베스트셀러가 목적론이 아니라 결과론의 대상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宋 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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