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에 버림받은 성전환증 환자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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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색체 상으로는 완벽한 여자인 박남우씨(32·가명)는 지난 7월 초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여자라는 현실이, 적어도 박씨에게는 가혹한 신의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사내아이들의 놀이가 더 재미있었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목소리와 체형도 꼭 남자처럼 변했다. 당연히 사귄 친구도 모두 남자였고 여자는 단지 ‘여자친구’였을 따름이다. 혼인 신고는 못했지만 올봄 혼례를 올려 어엿한 부인도 있다.

 “8년 동안 나를 쫓아다녔지만 마음에 걸려 해주지 않았다. 성전환 수술을 해주면 나를 제2의 부모로 모시겠다고 애걸하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정신과에서도 남성성이 강하다는 판정이 나와 수술을 하게 됐다.” 박씨의 성전환 수술을 집도한 김수신 박사(성형외과)의 말이다.

 박씨는 8년간 집요하게 성전환 수술을 요구했다. 우선 자신을 완전한 남자로 알고 있는 친구들 앞에서 덥다고 마음껏 웃통을 벗어제칠 수 없었다. 붕대로 눌러놓기는 했지만, 그 거추장스런 2차성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목욕탕을 같이 가자는 친구들의 요구도 매번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남자’로서 결정적일 때마다 이렇게 빠지다 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성적 주체 찾아주는 수술일 뿐”

 김수신 박사는 “그들의 최종목표를 일반인의 생각처럼 ‘완벽하게 남성의 기능을 갖는 것’이 아니다.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남성의 구조물을 소유하는 것이고, 또한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목욕탕에도 함께 가는 것이다. 나는 신의 장난에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이 될 수 있는가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이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김박사는 엄격히 말하면 성전환 수술이 아니라 ‘성확정 수술’이라고 주장한다. 즉 타고난 해부학적 성과 정신적 성 사이에서 주체를 찾지 못한 한 개인에게 성적 주체(섹슈얼 아이덴티티)를 ‘확정해주는’ 수술이라는 것이다.

 성전환증 환자의 발생 빈도는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대략 인구 1만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데, 60년대 후반부터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크게 남성 성전환증(남성에서 여성으로)과 여성 성전환증(여성에서 남성으로) 두가지로 구별할 수 있고 그 비율은 최고 8대 1 정도이다. 연세대 의대 이무상 교수(피부비뇨기과)는 “남성은 일찍부터 수술을 하든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뜯어고치려 하지만, 여성의 경우 사회가 ‘말관량이’ 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분석한다.

 학자들은 우리나라에 성전환증 환자가 1천명쯤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직으로도 많고 국민 의식상 아무래도 눈에 띄는 쪽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하려는 남성 성전환증 환자이다. 대개 유흥업소 무용수나 접대부로 활동하는 그들의 꿈은 남성의 생식기를 제거하고 진짜로 ‘여성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성전환 수술의 핵심 부분은 질 재건술인데, 현재 의학수준에서 기술적 문제는 별로 없다. 남성의 성기 피부로 질을 만드는 방법, 창자 끝을 잘라 질을 만드는 방법, 허벅지 살로 만드는 방법 등이 있다. 그런데 남성의 골반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에 근육이 안으로 뭉쳐 자칫하면 질이 좁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해야 더 효과가 좋다고 한다. 비용은 유방확대수술까지 포함해 약 1천4백만원이 든다. 이 모든 수술을 마치고 나면 임신을 못한다 뿐이지 외형상으로는 보통 여성과 똑같다.

 김주영씨(당시 25·가명)는 지난 90년 4울19일 법원으로부터 성 변경허가를 받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호적까지 바꿨다. 연세대 의대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김씨는 비로소 법적으로도 완전한 여성이 되었다. 디스코클럽 무용수였던 김씨는 지난 봄 ‘모든 걸 이해하는’ 남성과 결혼해 행복한 신혼생활에 젖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대부분의 환자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하더라고 사회적으로는 유전적 성의 호적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계 허점에 무방비 노출된 성전환 수술 

 지금까지 40여명의 환자들이 의학적 절차를 밟아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전환 수술을 받으려면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성도착증 환자는 수술을 받을 수 없다. 실제로 모 대학병원에서 가족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정신과 의사의 진단도 받지 않은 채 성전환수술을 해줬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나중에 환자의 아내가 찾아와 강력하게 항의하는 통에 환자가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현재 피부비뇨기학회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한 12가지 조건을 마련했다. △정신과의 진단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이 없을 것 △21세 이상 △바꾸고자 하는 성에 어울리는 신체조건 △배우자나 가족의 허락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2가지 조건을 다 갖춘 뒤에도 정신과 전문의의 복수 추천이 있어야 한다. 성전환증 수술 자체가 치료의 끝이 아니다. 수술 뒤에도 인격 전반에 걸친 문제는 물론 직업적·법적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성전환수술에 의료진뿐만 아니라 법학자 사회사업가 등이 팀을 구성해 참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성전환증 환자는 의료계의 허점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연세대 의대 이무상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2백명쯤의 환자들이 무면허 돌팔이들에게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더러 돌팔이 의사에게 몸을 완전히 망가뜨린 채 재수술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환자도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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