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인간적이다
  • 박중환 기획특집부장대우 ()
  • 승인 199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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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 육아·상호부조 정신 뛰어나 … 밍크고래, 포경 금지 후 6천마리로 늘어

 “고래가 해변가로 몰려나와 집단자살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사람과 같은 젖먹이 동물인 고래가 바다에 살게 된 이후에도, 육지에 대한 본능적인 향수를 갖고 있어 이런 떼죽음을 하는지도 모른다.” 朴九秉 《한반도 연근해 포경사》에서.

 고래잡이가 금지된 지 6년째. 가없이 넓은 동해 바다에는 멸종위기에 있던 참고래가 그새 몇 마리나 되살아나 파도 위를 넘실거릴까. 포경선 꼭대기에 매달린 ‘망잡이’의 애간장을 태우던 보리고래와 귀신고래는 얼마나 더 늘어났을까.

 고래를 취재하러 동해쪽으로 나섰으나, 포경선의 지난날 영화가 녹슨 채 남아 있는 경남 울산 장생포항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결의에 따라 상업포경이 금지된 86년 이후 장생포항에 묶인 5척의 포경선은 폐선이 되었다. 한때 고래잡이로 목돈깨나 만졌다는 양원호씨에게 바다 취재에 나갈 만한 배가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포경선 1척을 수리해 나가려면 자그마치 7천만원은 들여야 할 것이라 말했다. 보통 어선으로는 속력이 느려 어렵단다. 한국과학기술원 산하 해양연구소의 해양자원 조사선도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장생포항 포경선 5척 ‘폐선’
 부산 송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국립수산진흥원의 시험조사선에 실낱 같은 기대를 걸었다. 이 조사선이 출항하는 데는 순수한 경비만도 4천3백만원 정도 든다고 했다.

 해양조사부 연근해자원과 金場根 연구원은 취재의 벽에 부딪혀 난감해 하는 기자에게, 한뭉치의 슬라이드 필름을 내놓았다. 그가 지난해 여름 남해에서 촬영한 예쁜 참돌고래 한쌍의 해상쇼, 그리고 지난 88년 9월 일본 수산청의 고래자원 조사선에 동승해 찍은, 북양과 훗카이도 근해의 수면에서 숨구멍을 통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맥질하는 큰 고래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윗 사진). 북양과 훗카이도 근해의 고래는 동해 것과 같은 종류이다. 김연구원은 국제포경위원회 위원인 河星煥 국립수산진흥원장을 수행해 국제회의에 참석하면서 고래의 신비함에 매력을 느껴 나름대로 연구해왔다고 한다.

 고래고기를 최고의 식품으로 꼽는 일본은 남·북극까지 나가 자원조사를 벌이며, 조사용이라는 명분으로 해마다 상당수의 고래를 잡고 있다. 한국은 포경금지 규정을 착실히 지키는 나라로 꼽힌다. 그렇다고 한국이 우수국가로 평가받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세계적인 환경단체인 ‘녹색평화’(Green Peace)감시원이 가끔 한국에 와 포경 여부를 조사해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선 국립수산진흥원이 유일하게 고래자원을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인력과 기구가 없는 데다 예산조차 거의 없어 연근해 어자원조사를 하면서 눈으로 관측조사하는 데 그치고 있다. 밍크고래는 포경금지 이후 1천마리 정도 늘어 현재 6천마리 가량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참고래 보리고래 귀신고래는 추정조차 못하고 있다.

 장생포에서 만난 양원호씨는 “몇몇 고깃배 선원이 울릉도 근해에서 상당히 큰 고래를 간혹 보았다고 말했으나 배가 묶여 있으니 확인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남해안의 양식장에서는 연안의 돌고래류들이 몰려와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과장된 경우가 있다.

 다행히 92년 첨단장비를 갖춘 새로운 시험조사선(국립수산진흥원 소속)이 진수될 예정이어서 기대를 걸어볼 만하나, 전문기구와 인력 그리고 예산이 제대로 확보될지 궁금하다.

 고래는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
 부산수산대 박구병 교수는《한반도 연근해 포경사》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형 두뇌를 갖고 있는 고래는 사람 못지않게 뛰어난 사교성·의사소통력·민감한 감정·장기간의 기억력·높은 육아능력·상호부조정신 등을 구비한 신비스런 동물이기 때문에 보호하는 것이 도덕적이다.” 이런 논리는 물론 고래를 인간처럼 발달된 젖먹이 동물로 보는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설명한 것이다.

 한국 사람은 고래를 본디 외경스럽게 보았으나, 일제시대 고래고기를 즐겨먹는 일본사람의 영향으로 포경어업을 시작했다.

“교태·애무·물보라 속 격렬한 결혼”
 아무튼 고래는 영험스런 동물임에 틀림없다. 고래는 사람처럼 폐로 숨쉬며 산다. 바다 속 3천m까지 내려가는 향고래는 80분마다, 참고래는 40분마다, 돌고래류는 3분마다 최소한 한번씩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다. 숨을 못 쉬면 사람처럼 익사한다. 물속에 사는 동물이 물에 빠져 죽는다니 이상스럽기도 하다. 일본포경협회가 펴낸 《간추린 포경 전망》은 고래의 지능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능은 사람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각력·냄새 맡는 감각·위기대처 능력은 사람보다 뛰어나다. 순진하고 친화력을 갖고 있어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라 판단하면, 자신을 잡으려는 포경선 가까이에서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구잡이 표적이 된 뒤 큰 고래류는 아예 배 가까이에 오지 않는다.

 고래류가 새끼기르기에 쏟는 정성을 보면, 요즈음 인륜을 쉽게 저버리는 몹쓸 인간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많은 듯하다. 어미 고래는 새끼가 혼자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데리고 다니며 젖을 먹여 키운다. 어미 고래의 생식기 양쪽에 나란히 있는 乳腺에서 농축된 젖을 분출시키면 새끼고래가 따라붙어 물과 함께 마신다. 물속에서 젖꼭지가 점차 퇴화하면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더욱 신기한 것은 새끼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교접을 않을 정도로 새끼에 헌신적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고래가 물고기류처럼 번식을 위한 수정 차원의 ‘교접’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섹스는 덩치답게 격렬하다. 종류에 따라 다소 다르긴 하지만 큰 고래의 일반적인 성 형태를 《간추린 포경 전망》에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수놈의 섹스심볼은 어른 두 사람을 길이로 이어놓은 것만큼 크다. 발정이 극에 이르면 여러마리의 수컷이 암컷을 놓고 경합을 벌인 뒤 이긴 수컷이 차지하는데, 이렇게 짝이 지어지면 신혼부부 고래는 물 위로 솟구치면서 몇분간에 걸쳐 절정을 이룬다.”

 지난해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보고된 ‘가을철, 둥근턱수염고래의 사회적 성적 행위’라는 제목의 관찰기록은 흥미롭다. “5~8마리의 암수가 모여 짝짓기 경합을 벌인 뒤, 한쌍이 결정되면 물보라를 치고 서로 머리를 비벼 마치 애무하는 듯하다. 암컷은 눕는 자세를 취하면서 반항하는 듯한 교태도 보인다. 이때 경합에서 떨어진 수컷들은 주변을 맴돌며 물보라를 일으킨다.”

동서 해빙의 공로자 ‘아기고래’
 베를린장벽까지 붕괴시킨 ‘동서 해빙’의 실마리가 3마리의 예쁜 아기고래 때문에 풀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은 듯하다.

 88년 10월7일 알래스카 북극해 연안인 배로?에 물개사냥을 나갔던 에스키모 3명이 우연히 빙해 속에 갖힌 회색 아기고래3마리를 발견하면서 고래는 세계사의 한 장을 넘기는데 기여하게 된다. 이 에스키모들은 얼음판에 숨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러나 영하 40℃의 혹한으로 효험이 없었다. ‘녹색평화’가 미국 텔레비전을 통해 아기고래 구출을 호소하기 시작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미국의 텔레비전은 이 구출작전을 생중계하는 소동을 벌였다. 미 공군 수송기가 대형 쇄빙트랙터를 공수했고, 알래스카 주둔 미군이 대형 헬기 크레인을 출동시켰다.

 미국은 이 아기고래를 구츨하는 데 1백만 달러를 썼다. 영국의 한 언론은 지구의 한쪽에선 수십만명이 굶어 죽어가는데 지나치지 않으냐고 비아냥됐다. 그러다가 인근 베링해협에 있던 소련해군의 쇄빙선 2척이 미군의 작전을 도우면서 세계적인 뉴스로 변했고, 빙산처럼 거대했던 미국과 소련간의 불신덩어리는 이를 계기로 녹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쉽게 볼 수 없게 됐지만 포경선의 작살을 맞은 고래는 바닷물에 뜬 채 포경선에 끌려와 기지 항구의 해체작업장으로 올려진다. 거대한 몸퉁은 이때야 전모를 드러낸다. 고래고기는 어느 한 곳 쓸모없는 것이 없다. 고기는 부위에 따라 20가지 맛을 낸다. 어느 곳은 송이버섯 맛이 나는가 하면 어떤 부위는 참치 맛을 뺨친다. 일본 사람들은 육고기 맛이 나는 부위로 불고기 요리를 하는가 하면, 소금에 절여 베이컨처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한반도 연해에선 귀신고래 등 16종 잡혀
 1차대전 때만 해도 고래는 전략적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고래 기름은 석유가 보편화되기 이전의 에너지이자 윤활유였다. 이밖에도 화장품과 향수의 원료, 테니스 라켓의 거트, 1개에 수백만원짜리 담배파이프 재료 등등 쓰임새를 헤아리기 어렵다. 앞으로 인간이 해양을 개발하게 되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도와 줄 것이다(35쪽 오른쪽 그림참조).

 고래의 종류는 모두 90종에 이른다. 한반도 연해에서 잡힌 적이 있는 고래는 대략 16종. 이를 亞目별로 나누면 수염고래류 이빨고래류 돌고래류로 구분된다. 수염고래류는 이빨 대신 수염 같은 털로 크릴(새우처럼 생긴 갑각류) 플랑크톤 멸치 따위의 작고 부드러운 것들을 들이마셔 잡아먹는다. 둥근턱수염고래(Bowhead-Whale) 대왕고래(Blue-W) 참고래(Fin-W) 보리고래(Sei-W) 밍크고래(Minke-W) 흑등고래(Humpack-W) 귀신고래(Gray-W) 등 8종이 여기에 속한다.

 대왕고래는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동물로, 1926년 사우스 셰틀랜드군도에서 잡힌 것은 몸길이 33m에 무게 1백70톤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무게로 비교하면 코끼리 30마리, 사람 1천6백명과 맞먹는다. 대왕고래는 화물열차 3칸을 이어붙여야 실을 수 있을 만큼 길다. 덩치와는 달리 유영시속 19㎞에 최고시속 48㎞로 수중 동물로는 엄청나게 빠른 편이다. 작살에 맞은 채 포경선을 수시간 동안 끌고 다닐 정도의 괴력을 갖고 있다.

 대형고래 중 흔한 참고래는 몸매가 날렵해 ‘바다의 그레이하운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겨울철에 울산 앞바다에 자주 나타나는 귀신고래는 도망을 잘 다녀 귀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밍크고래를 제외하면 큰 고래류는 일제시대부터 마구 잡아 보기 어려워졌다.

 이빨고래류는 향고래(Spern-W) 솔피고래(Killer-W) 파일럿고래(Pilot-W) 등 3종류. 이빨고래류는 오징어 상어 등 큰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수염고래류와는 달리 유순하지만은 않다. 공격하면 대드는 기질을 갖고 있다. 이빨고래류는 3~5년 사이에 한번씩 새끼를 출산하며, 모든 고래가 그러하듯이 10개월간의 임신기간을 거쳐 한번에 한 마리씩만 낳는다. 사람과 아주 유사하다. 이빨고래류 가운데에는 수천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종류도 있으나 고래의 남획으로 이런 장관을 보기가 어렵게 됐다.

 향고래는 머리 부분에 엄청난 양의 향유를 갖고 있어 포경의 표적이 돼왔다. 흰 양털과 같은 표피를 갖고 있는 순백색 향고래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등장한 백경과 같은 종류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실제 있었던 악명 높은 흰색 향고래 ‘모카 딕’을 소재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솔피고래는 몸길이가 6~7m로 작고 날쌔며 ‘킬러’라는 영문 이름이 뜻하듯이 매우 사나워 ‘바다의 왕’으로 불린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고래나 상어를 잡아먹어 ‘바다의 폭군’ 이라 불리지만, 두뇌가 고래 중에서 가장 뛰어나 돌고래류와 함께 고래쇼에 나서는 인기 종이기도 하다.

 이밖에 돌고래류로 참돌고래(Common Dolphin) 흰배돌고래(Dall's-D) 등 5종이 있다. 이중 우리 바다에 가장 많은 참돌고래는 몸매와 빛깔이 매우 아름답다. 장난기가 많아 지나가는 배를 따라다니며 해상쇼를 연출하기도 한다.

 고래는 왜 바다 동물로 변했을까. 이에 대한 학설은 구구하다. 몸집이 너무 무거워져 땅 위에서 버티기가 힘들어지자 물속에서의 뜨는 힘을 이용해 살게 됐다는 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배적이었다. 환경적응설이다. 어떤 학자들은 지구의 지각변동으로 고래가 살던 한 지역이 바다 속으로 점차 가라앉자 수중동물로 진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다 속에서 빙하기 넘겨
 세계적인 권위자인 오수미 세이지(일본경류연구소 상근이사)씨는 그의 저서《고래는 옛날에 육지를 걸었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약 6천5백만년 전인 백아기의 공룡 번성기에, 테치스라고 불리는 古지중해의 얕은 바다에 메소니쿠스라는 원시적인 육식성 포유류가 살았다. 그 생김새는 쥐처럼 생긴 작은 동물로 생각된다(왼쪽 윗그림). 이 동물은 하구의 물가에서 살았다. 3천5백만년 전의 배시로라우르스라는 화석은, 오늘날 고래처럼 콧구멍이 위에 있고 뒷다리가 퇴화된 대신 꼬리를 가졌다. 요즘 고래의 선조였던 것으로 보인다(왼쪽 가운데 그림). 그러다가 2백만년 전인 신생대 제4기초 세차례의 작은 빙하기를 맞게 됐을 때, 선조 고래는 물속에서 혹한을 견딜 수 있었다. 이렇게 성쇠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고래의 가슴지느러미 뼈를 보면 아직도 사람의 손가락 모양과 비슷한 골격을 갖고 있다(왼쪽 아래 그림). 고래는 수천만년에 걸쳐 진화해왔으나 여전히 뭍동물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들은 물고기이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과 같은 선조의 모습을 지니려고 진화를 거부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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