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겐 괜찮다는 어리석음
  • 윤진 (연세대교수·심리학) ()
  • 승인 1991.08.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폭력영화’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옛날 같으면 괴기소설이나 읽으며 더위를 식힐 시절에, 컴퓨터와 첨단과학을  ‘악용’한 공상 폭력영화들이 삼복더위를 씻어주려는 듯 전국의 스크린을 누비고 있다.

 <터미네이터 2>를 비롯한 이런 유의 영화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논하거나, 총기난사·칼부림·잔인한 살인장면·톱니바퀴에 팔이 잘려나가는 광경 등에 대해 하나하나 따질 의향은 없다. 다만 끊임없이 펼쳐지는 폭력장면들에 관객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결과에 초점을 맞춰 언급하고자 한다.

 지난 30년간 이와 같은 공격행동 또는 폭력장면의 노출효과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 이론적 흐름은 정화이론과 사회 학습이론으로 크게 나뉜다. 일단 폭력장면을 보고 나면 일시적으로 후련하게 느끼며, 개인의 공격충동이 이전보다 감소한다는 것이 정화이론의 요점이다. 이와 반대로 폭력 장면을 본 후 흥분 수준이 더욱 높아지고, 새로운 공격행동을 모방하며, 그동안 억제해왔던 공격행동에 대한 ‘금지해제’가 일어나 더 쉽게 공격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 사회학습이론이다. 사회학습이론이 오늘날의 통설이며, 특히 총칼과 같은 무기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공격잠재 가능성을 점화시켜 실제행동을 촉진한다. 또 영화의 공격장면에서 얻은 ‘인지적 이해의 틀’은 기억 영역 속에 ‘저장’돼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폭력적 행동으로 ‘분출’된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필자와 곽금주씨의 실험연구에서도 명확히 밝혀진 바 있다. 즉 폭력영화를 본 청소년 집단이 비폭력영화를 본 집단보다(원래 폭력과 관계없는) 애매한 장면을 폭력적인 상황으로 더 많이 해석·판단했다. 또 폭력영화를 본 후 심리적 안정감은 감소되고 불쾌감은 증가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대중매체를 통한 공격행동과 폭력장면뿐만 아니라, 우리가 학교나 가정에서 드는 훈육적인 ‘사랑의 매’와 같은 공격행동도 모두 추방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공격 및 폭력의 완전 제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중매체에서는 폭력 장면과 내용에 대한 적절한 자율적, 또는 제도적 심의기준을 설정해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게 된다. 하지만 공격장면의 지나친 노출이 개인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 명확한 이상, 다음 몇가지 상황에 유의해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첫째 폭력영화와 비디오 등을 논의할 때 문제되는 점을 아동·청소년에게만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아동·청소년에게는 해롭지만 성인들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발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며, 사실상 어른들이 매일 접하는 폭력적 자극은 이사회 전체의 험악한 분위기와 폭력문화를 형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둘째 YMCA가 하고 있는 시민감시운동과 신문·방송사 등에서의 적극적인 논의와 같은 모니터링 활동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이들 시민운동은 한걸음 더 나아가 객관적 자료와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소비자 보호단체’ 이상의 문화운동이 돼야 한다. 이는 시중에서 판치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해로운 외국문물의 무분별한 침투에 대한 적극적 대응책이 될 것이다.

 셋째 작년의 <로보캅2>와 이번 논쟁을 통해 국가 유일의 심의기구인 ‘공륜’의 위상과 역할이 부각된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공륜은 그 체제를 좀더 튼튼히 해 공연물의 예술성과 파급효과를 고려한 객관적 심의기준의 설정, 심의전문요원의 양성과 선발, 주제별 특별자문 소집단 구성, 꾸준한 기초연구 수행 및 지원, 적극적인 해외정보 및 자료교환 등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적·문화적 주체성의 확립, 공연물이 국민의 정신건강 및 ‘생활의 질’에 끼치는 영향 등 좀더 거시적이고 폭넓은 영역에서 독특한 역할과 정체감을 확실히 찾아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