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영어교육
  • 김당 기자 ()
  • 승인 1991.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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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개편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95학년도부터 영어를 초등학교 상급학년의 정규교과(선택과목)로 채택할 계획이다. 외국어 조기교육은 ‘기적의 약’일까 아니면 ‘환상의 병’일까.

찬  최진황한국교육개발원 외국어교육연구부장. 저서《영어교수법 이론과 적용》등. 고려대 대학원(영어교육 전공) 졸업.

●영어교육 체계가 근복적으로 바뀌어야 하다는 주장은 어제 오늘 사아에 나온 것이 아니다. 급작스레 영어 조기교육 도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나?
 미래학자들은 2000년대의 1년 동안에 쏟아져 나올 지식 · 정보량이 1900년대 30년 동안의 그것과 맞먹을 거라고 예측한다. 그런데 이들 정보에 85%쯤이 영어로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 정보와 지식을 빨리 받아들여 우리 문화 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곧 淸報戰시대에서 영어라는 무기를 갖추는 것, 그 필요성이 배경이다.

●그릇된 외국어 조기교육의 신화는 깨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선 교사들로부터 나오고 있는데…
 조기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아이들에게 학습부담이 크고, 과열 과외공부로 위화감이 조성되며, 언어 · 심리 발달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습부담의 경우, 영어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 시기가 문제이지 언젠가는 부담을 가져햐 하는 숙제이다. 전공부야에서 일할 어른들이 영어를 익히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과외부담은 학교에서 정상적인 학습과 편가가 제대로 이뤄져 과외가 별 이득이 없다고 느껴지게 되면 해결될 것이다. 언어 · 심리적 혼란문제는 실험 결과 외국어를 모국어와 섞어서 가르치지만 않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이들이 외국어를 배우는데 들이는 시간보다 어른들이 그것이 훨씬 짧은 것이 사실 아닌가?
 창의 · 추리력이 더 높은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빨리 배운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언어를 배우는 방법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면서 배우는 ‘학습’의 두 방법이 있다. 습득으로 배울 때는 아이들이 더 유리하지만 학습으로 배울 때는 어른이 더 유희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학습과 습득 모두 아이에서 아이들이 더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10년 영어공부 도로아미타불’인 모순은 근본적으로 대합입시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인 현 교육체제에서 생기는 것 아닌가. 좋은 여건에서 조기교육을 한다 해도 중학교까지는 그럭저럭 듣기 말하기 교육이 지속되겠지만 입시지옥에 떨어지면 대입 귀신이귀와 입을 틀어막을 텐데 그리 되면 모두 헛수고 아닌가?
 초 · 중 과정에서 생활영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목표를 설정해 잘 지도하면 고교에서 독해 · 작문에 좀더 비중을 두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독해력을 길러 책을 많이 읽을 경우도, 우리나나에서처럼 영어로 말할 기회가 적은 환경에서는 쓰는 능력을 길러 그것을 말하기 능력으로 전이시키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고교에서 일고 쓰기 기능이 강화 되더라도 그것이 바로 말하기 능력과 관련성이 높다는 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화적 사대주의라는 발상에서, 그리고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에도 지금은 조기 영어 교육보다는 국어교육에 힘을 쏟을 때라는 지적이 많은데….
 극단적으로 말해 외국어를 배우면 그 나라 문화에 예속돼 사대화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떤 외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에 의식주를 기대고 있을 때는, 그 나라 문화에 예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우리의 경우는 무관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전무하다. 고로 대범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인도 싱가포르 필리핀 국민들의 주체성을 보더라도 그렇다.

●교육부는 시행방안을 올 하반기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부터 교과서 집필 등 준비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반대여론이 우세하더라도 결국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가?
 조기교육은 잘만 하면 틀림없이 성공한다. 반대하는 사람도 완전반대가 아닌 조건부반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잘하려면 나이도 중요하지만 교사 교재 시설 교수법 당국의지원 및 관심 등이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고, 그런 조건에서라면 반대할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제반 요건들을 구비해 실용영어 중심의 수업과 의사소통 능력 평가라는 교수 · 학습활동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만 영어를 배우면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고 대학에서 전공서적을 읽고 간단한 편지도 쓸 수 있게 될 텐데, 하는 것이 백번 낫지 않은가.                         

반  김지탁 전국영어교사모임 연구국장. 전 서울 오남중 교사. 저서《영어교육》(공저)등. 서울대 사대 영어교육과 졸업.

●조기영어 도입을 왜 반대하는가?
 첫째, 초등교육에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말도 정확하게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 또 한 외국어를 배움으로써 모국어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것은 모국어를 완전히 습득하고 언어의 개념을 이해하고 언어에 대한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만큼 지적 능력이 성숙한 이후에 가능하다. 둘째, 사대주의 국민정신에 깊이 스며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애국심이 고조된다고 하는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현재도 영어로 된 옷과 학용품 미국가요 미국음식을 선호하여 우리것이 나날이 밀려나고 있는데, 초등하교에서부터 영어를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구분하기 시작한다면 그러한 경향은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셋째, 나이가 어릴수록 외국어 학습이 용이하다는 것은 극히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영어가 제2국어(E니 :English Second Language)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고 영어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에서는 조기교육이 효과가 있다. 그러나 영어가 외국어(EFL :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이지만 언어구조와 문화가 비슷한 유럽에서 는 6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처럼 영어가 외국어이면서 언어구조도 전혀 다른 상황에 대해서는 실험이나 연구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겋다면 그 대안으로 어떤 방법이 있나?
 열악한 조건에서 진행되는 문제투성이의 영어교육을 초등학교에까지 연장시킬 것이 아니라 중등학교 영어교육을 정상궤도에ㅔ 올려놓은 것이 근본적이고 올바른 해결방법이다. 지금 당장 ‘듣고 말하기 능력향상’을 중등학교 영어교육의 목표로 삼아, 교육과정 교과서 평가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모든 교사를 재교육시켜야 한다. 또 학급 규모를 적어도 30명 이내로 축소하여 말하기 수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기교육 시행으로 예상되는 결과는?
 교육부에서는 지금 같은 특별활동으로서의 영어교육으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정규과목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학교에서는 전담교사까지 두고 1,2학년부터 거의 날마다 영어를 가르쳐왔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은, 정규과목으로 실시도었을 때의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대학입시가 초등학교 교육까지 좌지우지하게 돌 것이다. 또 이로 인해 과열된 과외열풍이, 미국학교에 대한 무분별한 선호로 이러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가 입장세서 보면 1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쳐도 쓸모가 없으니 국가적 낭비를 줄이는 한 방편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미국 현대언어협회는 약10년에 걸쳐 초등학교 외국어교육(FLES)을 실시한 뒤 초등학교에서의 외국어교육은 중등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 그 외국어가 학교일과의 완전한 한 부분이 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조기 영어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밖에 학급규모 축소가 전담교사 확보가 선행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은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지 못한 형편에서 어설픈 시행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학부모들 중에는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법한데….
 물론 자식의 출세를 먼저 생각하는 학부모들은 ‘안 하는 것보다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있게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교육재정의 효율적 집행을 생각해야 할 교육 관계자들의 ‘나이’ 말고도 ‘지적 능력’이 있다. 앞서 말한 ‘영어가 제2국어’인 상황에서는 나이가 더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영어가 외국어’인 상황에서는 지적 능력이 우선한다. 아이들은 언어의 구조와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지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한다. 중등학교와 초등하교에 똑같은 시설과 조건을 구비한다면 중등학교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빠른 시간에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엄청난 부작용이 따르는 초등학교 영어교육과, 더 나은 시설과 충분한 교사가 확보되어 있고 더 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쳐온 중등학교 영어교육 중에서 어느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교육적인 정책결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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