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보다 광고가 더 미더운가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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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건강 시리즈 ■ 의약품 오·남용

바쁜 일과에 쫓기는 직장인. 몸이 아프면 으레 약국을 찾기 마련이지만 무심코 사먹는 약이 뜻밖의 ‘약화사고’를 부를 수도 있다. 의약품 복용실태와 대책을 알아본다.

  감기에 걸렸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피곤함을 느낄 경우, 우리는 주택가나 사무실 근처 어디서고 흔히 볼수 있는 약국을 찾는다. 그리고 약사의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텔레비전을 통해서 익히 알게 된 약품 이름을 대며 감기약 두통약 피로회복제를 달라고 요구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같은 광경이 다름아닌 의약품 오·남용의 현장이다.

  자난 5월 소비자보호원이 발표한 의약품 오·남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국을 이용한 소비자들 10명 가운데 4명은 임의로 약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조사대상자의 25% 정도가 ‘전문가와 상담없이 스스로의 판단 또는 약품광고 등 비합리적인 기준에 의해’ 복용 또는 사용 중인 약품을 변경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직장인들 사이에서의 의약품 오·남용 문제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ㅅ약국의 예를 들어보자. 이 약국은 도심 한복판의 사무실 밀집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하루 평균 고객수가 2백여명에 이른다. 손님들은 대부분 인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회사원들이다. 약국주인 ㄱ씨는 “손님들이 증상도 설명하지 않은 채 무조건 ‘아무아무 약을 달라’고 요구하기 일쑤”라고 말한다. 그는 “장이 나쁜데도 엉뚱하게 ‘설사멎는 약(지사제)’을 달라는 손님이 많다”고 설명하면서 “직장인들의 의약품 오·남용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고 걱정한다.

면역 담당 세포 파괴되는 병 얻을 수도
  오·남용 의약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게보린 펜잘 암시롱 사리돈 같은 해열소염진통제이다. 소비자보호원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임의선택한 의약품 중 43%가 해열소염진통제였으며 건위소화제 항히스타민제 비타민제 자양강장제의 오·남용도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약사들은 소비자들이 임의선택한 약품으로 해열소염진통제 제산제 항생·설파제 항히스타민제를 들었다.

  이 가운데 해렬소염진통제는 두통 치통은 물론 감기몸살로 인한 발열, 류마티스염 등의 치료제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의학전문가들은 “이렇게 널리 쓰이고 있는 의약품들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나 그로 인한 치명적인 약화사고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특히 최근 시판되고 있는 각종 해열소염진통제는 무과립세포증을 유발할 우려가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무과립세포증이란 인체의 면역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과립세포가 파괴되는 병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의 金英淑 약사(30·학술분과장)는 “무과립세포증은 진통제의 주요성분인 설피린(메타미졸), 이소프로필안티피린 등 주로 피린계 성분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하면서 “약은 절대 남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한해 동안 무려 22개 업체가 2천억원어치 이상을 생산한 드링크제는 어떤가. 의학전문가들은 약국 뿐만 아니라 구멍가게에서조차 음료수 대용으로 불티나게 팔리는 드링크제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별 필요 없는 약’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한 드링크제를 장기복용할 경우 “카페인 독성으로 인해 심하면 심장운동을 자극해 일시적인 혈압상승을 초래할 수 있으며 위궤양과 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직장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제산제와 위궤양치료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치료할 때 쓰이는 정장제도 부작용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건약’에서 펴낸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일부 위궤양치료제에 쓰이는 클로람페니콜이란 물질은 빈혈 등 혈액장애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어 선진국에서는 사용금지 또는 제한되고 있으며, 그밖에도 여성 피임제로 널리 사용되는 내분비계통의 약물이 혈전전색증 자궁암 등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품 오·남용의 1차적인 책임은 물론 약을 구입하는 사람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순한 부작용에서 좀더 심각한 약화사고를 초래하기도 한다. 서울 명동의 어느 보험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林相哲씨(29·서울 동작구 흑석동)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회사일로 술을 자주 마셔온 임씨가 속쓰림 등 위장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올해 4월 무렵이었다. 병원을 찾기에는 증세가 그다지 심한 것 같지 않고, 위내시경 검사 등 번거로운 일이 귀찮아 임씨는 약국에서 위장약을 사다먹는 것으로 치료하려 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결국 병원을 찾게 되었다. 진찰 결과 임씨의 병명은 악성 위궤양이었다. 의사는 그에게 “위궤양의 경우도 단순한 속쓰림 외에는 별다른 증세가 없을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근본적인 치료에는 별 효과가 없는 제산제로 속쓰림을 달래오는 사이 그의 위장은 더욱 망가진 꼴이다.

내성 잔뜩 키운 뒤 병원 찾아
  이밖에도 의약품 오·남용이 부른 부작용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요도염에 걸린 사람이 약국을 찾아다니며 항생제 치료를 하다가 내성만 더욱 키워가지고 병원을 찾은 예도 있다. 서울 풍납동 중앙병원 레지던트 朴仙美씨(30)는 “항생제를 잘못 사용한 경우 말고도 암치료제로 잘못 알려진 영양제를 하루에 50알까지 먹었다가 심한 설사를 일으킨 사람, 알부민 부사를 잘못 맞아 부작용을 일으킨 사람 등 의약품 오·남용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전한다.

  의학전문가들은 소비자가 개선할 점으로 “약품을 선택할 때 임의로 하지 말고 전문가의 말을 존중할 것”을 권고한다. 서울의대의 崔康元 교수(내과)는 “의약품 오·남용을 막는 최선의 길은 물론 약을 쓰지 않는 것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정확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따라 알맞는 약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또한 “약국에서 부신피질호르몬제나 항생제가 버젓이 팔리는 현행 제도에도 오·남용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의약분업 등 제도적인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약의 김영숙시는 “대개의 소비자들이 제약업자들의 허위·과장 광고를 그대로 믿고 의약품을 오·남용하게 된다”며 “이윤을 우선시하는 업계의 풍토도 고쳐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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