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파병 압력에 휘청거리는 부시
  • 워싱턴·이석열 특파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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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초반부터 열세에 몰린 부시 미국대통령은 공화당 지명대회를 계기로 새 정강정책을 앞세워 대세 만회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유고 내전이 악화됨에 따라 외교안보 문제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또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외교문제 도사’로 자부하는 부시가 유고 내전에 대해 구호물자나 보내고 먼산 바라보듯 하고 있자 민주당 대통령후보 빌 클린턴은 “유엔 결의를 얻어 양민을 학살하는 세르비아 군대를 폭격해야 한다”고 선수를 치고 나왔다. 유엔 평화군에게도 포격을 가하는 세르비아 게릴라들이 보스니아 점령지역에 강제수용소를 설치하여 나치독일의 유태인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참상이 날마다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전해지자 여론의 화살이 백악관에 집중되고 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세르비아 게릴라들의 잔혹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소리는 영국 총리를 지냈던 대처에게서도 나왔다. “가만히 있는 것은 부도덕한 짓”이라고 나무란 대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가 단호히 무력응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력개입을 촉구하는 소리는 미국 의회와 언론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백만명이 넘는 피난민이 생기고 수만명이 목숨을 잃은 유고 내전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기를 꺼리고 있는 것은, 이곳에는 석유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무력 사용” 클린턴 역공에 대처도 동조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구호품 수송을 방해하는 세르비아 게릴라에 무력을 사용하자는 데 찬성하는 미국사람이 53%나 된다. 그러나 펜타곤 관계자들은 공중폭격 같은 한정된 무력을 사용해도 미군 희생자가 나오게 마련이고 자칫하다 싸움에 말려드는 경우도 생긴다면서 어떤 형태의 군사개입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는 고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구호품을 수송하는 데 필요하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결의를 하도록 미국이 앞장을 서는 정도의 행보를 취했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연합군을 형성할 것이며 말썽 많은 집단수용소를 개방시키기 위해 군사력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 대책이 없다.

 작년에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자 미국은 유고에 무기수출을 하지 말 것과 교전 당사자 간에 휴전을 하고 즉각 협상을 벌이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유엔에 낸 일이 있다. 군사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유고 정권의 지원을 받는 보스니아 지역의 세르비아 게릴라들이 이른바 ‘이민족 청소’를 외치면서 보스니아의 이슬람교인을 학살하는 만행은 사실상 묵인된 셈이다.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미지근한 내용으로 체면치레를 위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클린턴이 군사력 사용을 들고 나왔을 때 백악관의 말린 피츠워터 대변인은 “분별없는 소리”라고 받아넘겼다가 나중에 이러한 구상이 공화당 정책입안자 사이에 이미 거론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멀쑥해졌다. 이 것만 보더라도 부시 행정부가 이 문제로 갈팡질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군사력 동원은 미국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공화당이 이를 수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유주의 노선의 클린턴이 먼저 군사력 사용론을 들고나와 부시 진영을 역공하고 있다. 다른 이유보다 기회주의적인 입장 때문에, 다시 말해서 클린턴의 병역기피나 그동안 민주당이 당론으로 걸프전쟁까지 반대한 약점을 호도할 양으로 갑자기 매파가 됐다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유고문제는 가파른 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는 부시에게 새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르는 악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보수주의 정책기관인 헤리티지재단의 더글러스씨에이는 “총에 맞아 죽은 어린애 사진을 부시 사진 옆에 놓고 이 사람 때문에 애가 죽었다고 하면 표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해질 것”이라고 비유했다. 보수이면서도 중도를 표방하는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 패트릭 글린은 “만일 미국이 군사개입을 안하면 클린턴은 희생자들이 불쌍하지 않느냐고 대들 것이고 개입하면 ‘그것 봐라 내가 등을 쳐서 된 일 아니냐’라고 자랑할 테니 손해는 부시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회복도 더딘 데다가 유고문제까지 겹쳐 백악관을 향한 부시의 발걸음은 더욱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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