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전쟁’ 후예들 4백년 구운 솜씨 교류
  • 경남 통도사·송준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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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도예작가 ‘현대 작품’ 비교 마당 열어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른다. 전쟁으로 비롯된 두 나라의 e도자기 인연이 4백년이 지난 지금 후예 도공들에 의해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도예 작가들이 한데 모여 작업을 같이하면서 작품을 비교·감상하는 한편, 서로의 기법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 8월12~16일 부산 慶星大 예술대학 공예학과는 한국 도예작가 12명과 일본 작가 9명을 초청해 경남 양산 ■■■ ■雲■에서 ‘제1회 한·일도예 하계대학’을 열었다. 李■■(경성대) 元慶煥(홍익대) ■■■(조선대) 교수 등 한국측 참석자는 모두 교직을 갖고 활동하는 대표적 현대도예가들이며, 젠지미야시타·오쿠무라 히로미 등 일본측 참석자는 일본 현대도예의 중심지인 교토지방의 중견작가들이다.

 이 하계대학은 양국 작가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는 동시에 참가 학생들에게 작가의 작품 제작 현장을 보여주어 미래 작가로서의 잠재적 역량을 길러주려는 취질로 준비된 것이다. 행사 기간 동안 서운암에는 홍익대 숙명여대 부산대 조선대 대구대 등의 도예 관련학과 학생과 일반인 2백여명이 참가했다.

 5일 동안의 일정은 초청강사들의 이론강의·작가들의 작품 슬라이드와 비디오 상영 및 해설·도자기 제작·장작가마(일명 登■·한국 전통가마) 및 전기가마로 작품 구워내기(■成) 라쿠가마(임시로 만든 원시적 형태의 가마) 제작 및 소성·■天■成(가마가 생기기 이전의 방식)·품평회 등으로 꾸며졌다.

 초청강연은 한국 현대도예의 현주소와 미래를 조명하고 일본 도예의 특성을 이해하는 내용들로서, 미술평론가 ■善學씨의 ‘해체적 시각으로서의 도예’ 큐레이터 張東光씨(갤러리 빙)의 ‘한국 현대도예를 둘러싼 세 개의 호수에 관하여’ 서울여대 임무근 교수의 현대 도자예술의 탄생‘ 가마제작 전문가 요시카와 히로시씨(74)의 ’일본 전기가마의 유래‘ 작가 키타데 후지오씨의 ’오키나와 도예의 통시적 고찰‘ 등이었다.

 

한국 도예 한계 드러낸 ‘본질 논쟁’

 ‘해체적 시각으로서의 도예’는 도자기, 또는 그 기능에 대한 고정관념의 해체를 통해 미술적 표현의 자유와 리얼리즘. 그리고 작품에 담긴 ‘담론’의 확보를 역설한다. 도자기로 주전자를 만든다고 하자. 전통적 의미에서 주전자 도자기는 물을 따르는 도구이며 그 형태·무늬·회화는 장식에 불과하다. 예컨대 田光■씨의 작품 ‘주전자 시리즈’는 이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표현 양식을 시도한 것이다. 강씨에 따르면 전씨는 사각형 주전자 손잡이에 가시를 붙이고 몸통에 신문의 제목 활자를 인쇄하는 시법으로 ‘물 따르는 주전자’ 대신 리얼리즘과 메타포를 보여주는 자신의 작품언어를 건설하고 있다.

 이 논쟁은 현대도예를 인식하는 한국 도예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술로서의 도예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전통도자기의 원형성을 중시하는 경우이다. 고분 등에서 출토되는 도자기의 전통양식을 가능한 한 보존하는 범위 내에서 창작해내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도자기의 본질을 ‘그릇’ 즉 기능성으로 보는 입장으로 임교수의 견해가 여기에 해당한다. 도자기의 실용성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형태와 문양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변형한 작품들을 말한다. 세 번째는 강씨의 주장처럼 ‘흙으로 빚어 구워낸 모든 것’을 도예품으로 보는 경우이다. 작가 원경환씨는 “도자기 기법을 활용한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고 이 전위적 형태의 도자기를 설명한다.

 장동광씨는 이 ‘세개의 호수’를 작가의 세대별로 구분·정리하고 “일본에서는 세 장르가 각기 뿌리를 내리고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는 반면, 한국에서는 세 장르가 혼재하면서 배타적으로 견제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셋 가운데 전위 도자기의 경우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어느 정도 영역이 확보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입지가 매우 좁다. 우선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작품 생활을 마음껏 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한국의 전위 도예작가들은 교직을 겸함으로써 생계를 해결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전업작가의 수가 교수를 겸한 작가의 수보다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같은 진보적인 양식이 쉽사리 수용되는 이유로는 우선 일본인이 외래문물을 일본화하는 데 탁월하다는 점을 들 수 있지만, 이른바 ‘도자기전쟁’ 이후로 일본에서 도자기가 어떻게 인식돼갔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이해를 돕는 유용한 방법일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왜장 시마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에 따라 철군하면서 조선 도공 80여명을 이론으로 데려갔다. 당시 일본에는 BC 3000년경 ■■토기에서 출발한 나름의 도기문화가 형성돼 있었는데 아직 유약을 바른 고화도 도자기를 만드는 데까지는 발달하지 못했다. 막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당시 일본은 그에 걸맞는 도자기의 수요가 한창 팽배해 있을 때였다.

 

뿌리내리는 현대도예

 일본의 영주들은 종전 이후 힘의 공백을, 도자기 공급 독점을 통한 경제력 장악으로 해결하려 했다. 영주가 바뀜에 따라 조선의 도공들은 핍박과 우대를 번갈아 받게 되었지만, 어쨌든 이들이 지닌 도자기술은 일본인에게 절실한 것이었다. 일부 영주들은 딸을 조선 도공과 혼인시킴으로써 결속을 꾀하기도 했고, 무사의 전공에 대한 하사품으로 도자기를 증여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일본 사회에서는 도자기와 도공의 지위가 올라갔고, 그 전통은 현대에까지 이어졌다. 젠지 미야시타씨는 “일부 작가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고 말한다.

 ‘도자기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운 반면, 조선의 도예는 장인을 천시하는 유교적 사회 풍조로 말미암아 영락의 길을 걸어야 했고, 이제 식민기에는 서구 산업도자 제품의 쇄도로 그나마 남아 있던 전통도자기의 명맥마저 끊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전통도예와 산업도예가 조금씩 활성화되고, 대학에 도예과가 개설되면서 현대도예가 출발하였다.

 한국 현대도예는 이제 막 잔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계대학의 진행을 맡은 ■相仁 교수(38·경성대)는 “이번 행사는 작가는 물론, 미래의 작가인 학생들을 위한 기획이며 도시에 그들에게 거는 기대의 다른 얼굴이다”라고 말했다. 미래의 이 작가들은 일본과 ‘선의의 도자기전쟁’을 펼쳐갈 잠재적 전사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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