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익살과 요설로'미친세상' 풍자
  • 금강도 (연극평론가) ()
  • 승인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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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산울림소극장이 개관 5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다리오 포 원작, 채윤일 연출, 5월6일까지)는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이면서도 전혀 이질감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이 연극의 주요 모티브가 우리의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과 아주 흡사할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내재된 권력구조의 모습까지도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발단은 폭파 테러범으로 기소된 한 무정부주의자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후, 투신자살한 것으로 조작된 사건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건이 무대상에 직접 전개되는 것은아니다. 한 미치광이(이호재 역)가 등장하여 기막힌 화술과 감쪽같은 변장술, 해박한 법률상식과 정신의학적 지식으로 고위 경찰관들을 제멋대로 우롱하고 농락하는 가운데 은폐된 진실과 권력의 횡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시종 미치광이의 익살과 능청과 요설을 통해 풍자됨으로써 희극적 재미가 만발하게 된다.
  미치광이는 고등법원 수석판사에서 과학수사연구소 소장으로, 다시 사제로의 변신을 거듭하면서 경찰들을 윽박지르고 협박하며 때로 회유하면서 그들을 점점 막다른 궁지로 몰아간다. 특히 방백의 적절한 활용은 미치광이와 관객들을 한편으로 만들어 권력층을 희화화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미치광이는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만 지껄여대면서도 공인되었다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는다. 이는 온통 미쳐돌아가는 세상속에서 미친 척하지 않고는 도저히 현실을 지탱할 수 없다는 강한 아이러니를 내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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