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직 모집” 가보면 영업사원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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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과장 求人광고 범람…회사名 없는 경우 등은 일단 주의를

“21세기를 선도하는 기업체로서 기업공개를 앞두고 제2의 도약을 위해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널리 공개 채용합니다.” “인재육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온 30년 전통의 대기업 계열사에서 기획력과 창의력을 겸비한 인재를 아래와 같이 공개 채용합니다.”

일간지에서 거의 매일 접할 수 있는 2~3단짜리 구인광고 첫머리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된다. 응시자격에 남녀차별도 없고 연령제한에도 관대하다. 모집업종은 기획, 관리, 마케팅 등으로 다양하고 전공을 불문. 게다가 까다로운 필기시험도 없이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직원을 뽑는 회사. 이 정도라면 부쩍 높아진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풀이 죽어 있는 구직자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같은 유형의 구인광고들이 거의 허위·과장광고라는 데 문제가 있다. 가장 상투적으로 쓰이는 수법은 모집직종을 속이는 것. 한국취업문제연구원에서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 사이에, 3대 중앙일간지에 실린 2단 5cm 이상의 구인광고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총 3천3백21건의 광고가 허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리쿠르트 취업정보센터 鄭昌燮계장은 “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 물정에 어두운 구직자들이 이같은 구인 광고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면서 “이들 업체에서는 관리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영업을 알아야만 한다는 명목으로 찾아온 사람들을 설득한 뒤, 일단 3~6개월간 영업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실적이 좋은 사람은 원하는 부서에 정규사원으로 발령을 내주겠다는 식의 미끼로 발목을 잡아놓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국취업문제연구원의 金一勉원장도 “면접과 오리엔테이션을 빙자한 정신교육과정에서, 죽어도 영업은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 인원은 그런 식으로라도 취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에 친·인척 등 연고판매에 매달리지만, 결국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마는 게 상례”라면서 “단기수익을 노리고 이같은 허위·과장광고의 피해사례는 同연구원에서 구직자 1천4백50명을 대상으로, 신문지상에 실린 구인광고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밝혀졌다. 고졸 및 대졸 응답자 중 과반수 이상이 ”믿지 않는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 대다수가 ”광고와 실제가 달랐다“, ”결국 영업사원을 모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를 지적했다는 것. 취업전문가들은 대표적인 허위·과장 구인광고의 유형으로 ‘빈도가 잦은 광고’, ‘대표전화는 1~2대에 불과한데 모집부서는 많은 광고’, ‘학력·전공 제한이 없는 광고’, ‘회사명 없이 사서함번호만 있는 광고’,‘회사명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영문약자로 표기되어 있는 광고’등을 꼽고, 미심쩍을 경우 광고를 낸 회사가 상장·등록법인인지를 반드시 확인하라고 충고한다.

이와는 다른 경우이지만 요즘 부쩍 말썽이 되고 있는 사이비언로사의 기자모집광고도 허위·과장인 경우가 많다. 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월간지와 2개 주간지를 전전한 바 있는 朴모(26)씨도 피해자 중의 한명이다. 朴씨는 이중 두 번째 직장이었던 모주간신문사에 입사했으니, 광고에는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았던 지역연감 제작과 판매를 위해 ‘시골구석’에서 고생만 하다 월급도 못받고 사직하고 말았다.

이처럼 허위 구인광고로 인한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외판사원모집용 위장광고의 경우 업자들을 처벌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노동부 고용관리과의 한 관계자는 “양자가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세일즈의 경우 근로계약에 앞서 대부분 업무계약을 맺기 때문에 법적용이 곤란하다”고 밝히면서 “정신·물질·시간적 손해를 배상받으려면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업자에게 ‘뜯긴 돈’이 없거나 액수가 적을 경우 ‘그나마 대행’이라는 심정으로 일을 마무리짓기 예사여서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구인광고가 불순한 목적으로 이용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구인광고 게재시 ‘광고주 명칭·모집업종·근무조건 등 구체적인 사항 표시 의무화’를 제의한 洪英基·崔善--연구원(한국소비자보호원)의 논문 <광고규제기준에 관한 연구>가 그 대표적인 예.

현재 직업안정법에 구인광고와 관련된 항목이 있긴 하지만 광고시 표시해야 할 의무사항은 빠져 있다. 또 신문광고윤리강령을 비롯, 일부 일간지에서 자체적으로 광고기준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더 이상의 피해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허위·과장 구인광고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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