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통신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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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산’넘어야 백악관이 보인다.

 

 부시는 미시건 대학 교정에 결국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9월22일 밤 이 대학에서 벌어지게 되어 있던 클린턴과의 텔레비전 토론에 대해 토론방식의 비합리성을 이유로 ‘비토’를 행사한 것이다.

 텔레비전 정치가 활성화돼 있는 미국사회에서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 그것도 선거를 불과 한달 앞둔 시점에서 벌이는 텔레비전 토론은 후보 당사자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텔레비전 토론에서의 승부가 곧 11월 초의 승부로 직결된다고 보아 무방할 만큼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텔레비전 토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이 토론만 잘 통과하면 지금까지의 열세가 하루아침에 우세로 바뀌어 11월의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

 더구나 텔레비전 토론의 승패요소가 경제난제의 해결이나 실업 구제, 세제 감면 등 어느 대통령선거 때나 흔히 듣게 되는 그런 구호내용이 아니라 어려운 질문을 받아넘기는 재치나 순발력, 알게 모르게 흘리는 순간적인 미소나 포용력, 친화력 등 비합리적 요소들이라는 점에서 22일의 텔레비전 토론은 부시로서는 인기의 반전을 위한 물실호기의 찬스가 될 수도 있었다.

 

부시의 TV토론 거부는 전략인가 단순기피인가

 지난 7일 노동절 전후의 연휴를 기점으로 포화점에 올랐던 민주·공화 양당의 선거유세는 《뉴스위크》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로 보면 부시 38%, 클린턴 53%의 지지율을 보여 부시가 계속 15%의 열세를 보인 채 종반국면을 맞고 있었다. 그동안 역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인기의 급작스런 반등이 이뤄진 예는 여러차례 있었다.

 미국 대통령선거에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60년 케네디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지명 수락 연설을 하면서 제의한 텔레비전 토론을 닉슨이 수용하면서부터다. 미국 전역에서 1억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후보는 4차례의 텔레비전 토론을 벌였다. 널리 알려진 대로, 케네디는 특유의 세련되고 자신만만한 거동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닉슨은 초라하고 지친 모습을 보여 참패했다. 그러나 새롭게 눈길을 끄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케네디의 승리는 적어도 텔레비전 시청자들에만 국한됐을 뿐이고, 그 토론을 보도한 라디오나 신문은 단연 닉슨이 우세하다고 전했다는 점이다. 사회학자 맥루한이 말하는 텔레비전이라는 ‘제2의 눈’은 이처럼 인간이 지닌 귀나 입과는 다르게 기능하는 것이다. 결과는 ‘제2의 눈’쪽이 옳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케네디가 승리한 것이다.

 68년 케네디의 후계자 존슨의 출마포기로 민주당 후보지명에 오른 험프리는 케네디 때처럼 닉슨 공화당 후보에게 텔레비전 토론을 제의했으나 닉슨은 이를 한사코 사양한다. 72년 선거 때도 닉슨은 민주당 후보 맥거번 지사가 제의한 텔레비전 토론을 또 한차례 거절한다.

 1980년 카터 대 레이건의 토론을 시청한 미국 시청자수는 1억2천만명으로 집계됐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의 무능을 공박하는 카터의 집요한 공격에 레이건은 초반부터 시달렸으나 막판에 가서는 관중을 사로잡는 특유의 연예인 기질을 십분 발휘함으로써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 84년 카터의 바톤을 이어받은 먼데일 후보가 레이건에게 텔레비전을 통한 한판 승부를 제의했을 때. 당시 73세의 레이건은 이를 기꺼이 수락, 재선 대통령이 됐다. 88년 공화당 후보 부시(당시 부통령)와 민주당 후보 듀카키스(매사추세츠 주지사)간의 90분 토론에서 논쟁에 관한 한 타고난 재질을 지닌 듀카키스의 공세에 밀려 부시는 첫번째 토론에서 고전했으나 외교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해석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두번째 토론은 부시의 승리. 사형반대론자인 듀카키스 후보에게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당신 부인 키티 여사가 강간을 당했다거나 살해됐다고 하자. 그 범인을 어쩔 셈인가?” 듀카키스의 대답은 역시 “사형은 노!”였다. 이를 지켜본 많은 시청자들에게 듀카키스의 지나친 냉정은 오히려 감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열세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를 부시는 왜 미리 팽개쳐 버리고 말았을까. 참모장 베이커의 지시에 따른 걸까, 아니면 아들뻘되는 클린턴에 대한 원초적 공포 때문일까. 미시건 대학의 토론은 불발됐다 하더라도 앞으로 있을 10월4일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대학, 그리고 10월15일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대학에서의 논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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