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게릴라의 ‘끝나지 않은 패배’
  • 한종호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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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구즈만 체포 불구 지지세력 온전… 조기 ‘재무장’ 가능성 커


 페루의 무장게릴라 조직 ‘센데로 루미노소’(‘찬란한 행로’라는 뜻)가 다음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백주년을 기념하여 계획한 대규모 무장봉기는 수포로 돌아갈 것 같다. 최고지도자 아비마엘 구즈만(57)을 비롯한 고위급 지도자들이 9월13일 수도 리마 교외의 고급주택가에서 35명의 정부측 테러대책본부 요원에 의해 체포됐기 때문이다.

 페루를 지배하는 사람은 약 5백년 전 스페인에서 온 백인 정복자의 후손들이다. 전체인구의 12%를 차지하는 백인 엘리트들은 국부를 독점하고 87%에 달하는 혼혈·원주민을 무자비하게 착취해왔다. 원주민들은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농업에 종사하거나 '촐라'라는 도시  하층노동자층을 형성하고 있지만 이들의 생활은 수십년 동안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남미대륙에서 스페인 사람을 축출하고 원주민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중남미 다른 나라들에서는 중산층의 성장과 백인-원주민 간의 交婚으로 사회적 적대가 많이 줄었지만 페루에서는 오히려 그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안데스의 페루'와 '리마의 페루'라는 두 개의 페루가 있다고 말한다. 중남미 대부분의 좌파들이 혁명보다 개혁의 길을 택하고 있는 지금 페루에서 무장투쟁이 격화되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센데로 루미노소는 '리마의 페루'에 대한 '안데스의 페루'의 민족해방·혁명투쟁을 이끄는 사령부이다.

 페루의 농민 도시노동자 학생에게 구즈만은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최대의 정적이며 페루 지배세력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금년 4월 모든 헌법기능을 정지시키고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한 이른바 '후지모리 쿠데타'의 명분도 구즈만 체포에 있었다. 구즈만이 체포되자 수도 리마의 일간지 <엑스프레소>는 "공적 1호 검거"라는 제목의 호외를 발간했다.

게릴라세력 국토의 30% 장악

 1935년 페루 남부 아레키파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구즈만은 어린 시절을 책과 함께 보냈다. 10대 소년이 되자 어머니 곁을 떠나 아버지쪽 집으로 들어가 가톨릭계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후 아레키파에 있는 산 아구스틴 대학에 진학했고 여기서 만난 한 철학교수와 마르크스주의자 화가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남부 고원지대 아야쿠초에 있는 우아망가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면서 구즈만은 페루 공산당의 한분파로 센데로 루미노소를 조직했다. 이를 기반으로 1963년 중·소분쟁 이후 親蘇경향을 띤 페루 공산당과의 노선투쟁을 통해 모택동주의를 지도사상으로 확립했다. 또 두차례에 걸쳐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하여 문화혁명을 견학하고 모택동주의와 비정규전술을 학습했다. 당시의 동료교수들은 "구즈만은 독창적 사상가라기보다는 모택동주의의 충실한 신봉자였다"고 술회했다.

 그는 모택동주의와 페루 마르크스주의의 대부인 마리아떼기의 이론을 배합하여 독특한 인민전쟁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센데로 루미노소 전문가인 이남섭씨(사회학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구즈만은 "폐루는 半식민 半봉건 관료자본주의사회이며 인민전쟁을 통한 민주혁명으로 이를 척결하고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간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특히 그의 인민전쟁은 게릴라조직에 의한 암살과 폭탄테러로 시작되는데 정부측의 탄압을 유도하여 더 큰 민중봉기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무장투쟁을 개시한 1980년 5월 이래 정부군 반군 민간인 합쳐 2만5천명이 사망하고 2백20억달러 상당의 시설이 파괴됐다. 그 때문에 구즈만 노선의 배타성과 폭력성은 국제적 우려를 자아냈다. 금년 2월 버나드 아론슨 미 국무부차관은 의회청문회에서 "구즈만이 집권할 경우 우리는 나치와 폴 포트에 이은 세번째의 '대학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1974년 구즈만은 수도 리마로 돌아와 본격적인 지하활동을 개시했다. 합법좌파와 우파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페루 경제를 인플레 2천6백%의 파산지경으로 몰아가는 동안 구즈만은 안데스 지역을 거점으로 수도 리마 쪽으로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여 국토의 30% 정도를 장악했다. 조직원 수도 꾸준히 늘어 그동안 8천여명이 사살됐음에도 불구하고 3천~5천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구즈만의 체포는 누구보다도 초헌법적 전횡을 일삼고 있는 후지모리 정부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러나 센데로 루미노소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타임>지는 "어떤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구즈만의 우회적 승리일 수도 있다"며 잘 훈련된 조직원, 강고한 사상무장, 튼튼한 국내외 지원에 힘입어 곧 조직을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도 페루의 농민을 무장투쟁으로 내모는 인종적 계급적 차별과 후지모리 정권의 인권침해가 사라지지 않는 한 페루 내전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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