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日’만큼 높아진 일본의 ‘嫌韓’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끝없는 사죄요구 지나치다” 지한파가 앞장



 “한국의 대일감정은 한마디로 男根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 감정은 만지면 만질수록 커져 마지막에는 폭발하지 않으면 수습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의 대중 주간지 《주간 문춘》 최신호의 서평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지지 통신>의 미야자키 지국장 무로타니 가쓰미가 이 서평에서 화제로 끄집어낸 책은《일한 오해의 심연》. 최근의 종군위안부 문제를 "한국의 '직업적 반일집단'과 일본의 '反日 일본인'들이 연출하고 있는 합작극"이라고 단정한 책이다.

 무로타니는 이 책의 결론보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의 직업적 반일집단은 지난 10년간 "일본을 향한 '사정'으로 쾌감을 만끽해 온 집단"이라고 매도하고, 그들이 일본 국내의 '반일 일본인'과 손잡고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嫌韓 감정'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로타니는 또 이 책의 저자 나시오카 스토무(월간 《현대 코리아》 편집장)가 이러한 '혐한 감정'을 불식하기 위해 "진정한 일·한우호를 구축하자"고 주장한 대목을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하고 빈정댔다. 소련이 붕괴하기 전이라면 부산에 붉은 깃발이 들어설 염려가 있어 한국 눈치를 봐야겠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어디 있냐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반일 쾌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과 더이상 사귈 필요가 없으며, 손해보는 쪽은 한국이지 일본은 콩 한쪽 잃을 게 없다는 말이다.

 무로타니는 80년대에 5년간 <지지통신> 서울 특파원을 지낸 이른바 '지한파 일본인'이다. 그와 같이 한국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지한파와 우파 지식인들이 연초부터 벌이고 있는 반한 캠페인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요즘 일본의 분위기이다. 그것은 정신대 문제가 제기된 이후 '혐한 감정'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이제는 동네 술집에서 흔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일본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 1월의 일이다. 미야자와 방한을 맞아 한국의 시위대는 주한 일본대사관의 담벼락에 달걀세례를 퍼부었다. 그것도 성이 안차 일왕 허수아비의 화형식까지 치렀다. 일본의 주요 텔레비전은 이런 데모 현장만을 뉴스시간마다 반복해서 방영했다. 마치 한국이 온통 반일데모에 휩싸여 있다는 착각을 줄 정도였다. 일본 언론의 이런 의도적인 보도가 대다수 일본인을 크게 자극했음은 물론이다. 손님을 초청해 날계란 세례나 퍼붓고, 미야자와 수상이 열댓번이나 허리를 굽혔음에도 천황화형식이 웬말이냐 하는 것이다.

‘혐한' 뿌리는 1백년 전 '征韓論'

 일본의 언론은 이 사태 이후 일제히 한국비난을 개시하는 포문을 열었다. 특히 일본의 중앙 일간지로서는 가장 보수우익 성향을 지닌 <산케이신문> 그리고 자매 월간지 《정론》, 문예춘추사의 월간 《문예춘추》《제군》, 마쓰시타 고노쓰케가 세운 PHP 연구소가 발행하는 《보이스》 등이 우파 지식인을 대거 동원해 한국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월간 《현대 코리아》 주간 사토 가쓰미와 다쿠쇼쿠 대학 교수 다나카 아키라는 "사죄하면 할수록 악화되는 일·한관계"라는 대담에서 한국의 '원죄 외교'와 일본의 '사죄외교'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사토는 "일제 36년을 방패로 협상 테이블을 두드리고 큰소리를 치기만 하면 일본은 금방 사죄하고 양보한다"는 착각이 한국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사죄외교'가 바로 한국의 그러한 '원죄외교'를 조장해왔다고 비난했다.

 사토는 한국이 과거 역사를 담보 삼아 일본의 경제협력이나 양보를 요구하는 '원죄외교'를  벌이기 시작한 것은 全斗煥 정권이 들어선 이후라고 주장한다. 즉 박정권 때만 해도 한국은 자조노력에 의해 국가를 건설한다는 의욕에 차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구차한 손을 벌린 적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전두환 정권은 81년 일본에 대해 60억달러에 달하는 경제협력을 요청했다.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원인이며, 한국이 막대한 국방비를 들여 일본의 방파제 노릇을 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게 이유였다.

 결국 40억달러로 이 경제협력 공방은 결판이 났지만 사토는 이때부터 '친한파 일본인'들의 한국 이탈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요즘의 혐한 현상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또한 84년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 때 한번결판이 난 천황사죄 문제를 90년 盧泰愚 대통령 방일 때 다시 거론함으로써 친한파 일본인의 대부분이 한국에 등을 돌리게 되었고, 경제원칙을 무시한 무역역조 시정·기술이전 요구로 그러한 이한현상은 경제계로까지 확산되었다는 것이 사토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혐한 감정은 어떤 현상인가. 사토는 한국의 거듭되는 사죄·보상 요구에 "친한파 일본인은 물론 한국문제에 무관심했던 일반 대중에까지 嫌韓 감정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풀이하고, 이러한 집단 이한현상을 야기시킨 기폭제가 바로 종군위안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혐한 현상은 단순히 "한국이 싫다, 지긋지긋하다"는 차원을 넘어 "한국과는 더이상 가깝게 사귈 필요가 없다"는 절교차원이라고 단정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회는 상대방과 욕설을 하면서 싸우다가 다시 화해하는 사회이나, 일본사회는 상대방에게 한번 욕설을 끄집어 내면 절교를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미야자와 방한 이후의 한·일관계가 정신대문제, 무역역조·기술이전 문제 등의 현안 처리에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마찰음을 더해 가고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과연 위기적 상황일까.

 재일교포 역사학자 이진희씨는 이 혐한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일본의 일부 우파가 주장하는 혐한론은 한마디로 그들의 우월의식, 대국의식의 발로이다. 우파의 혐한론은 어제 오늘 형성된 것이 아니라 1백여년 전의 '征韓論'에 뿌리를 두고 있는 논리다. 따라서 혐한현상이라는 것은 일부 우파가 작위적으로 조작한 현상이지 일본 전체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최근 일본사회 내부에서도 전후청산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 않느냐."

 이진희씨의 주장처럼 1백여년 전으로 역사를 되돌려 보자. 현재 일본의 1만엔권 지폐에 인쇄되어 있는 후쿠자와 유기치는 당시 일본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사상가였다. 그가 아시아 침략전의 발판이 되는 '脫亞論'을 발표한 것은 1885년. 갑신정변에 실패한 김옥균 등이 일본에 망명한 이듬해였다.

 그러나 후쿠자와의 탈아론은 아시아를 서구 열강과 함께 분할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해 조선의 식민지화를 부추기는 논리였다. 그의 탈아론은 조선이 말을 듣지 않기 때에 힘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일본의 정한론자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이렇게 보면 요즘의 혐한론과 탈아론·정한론은 그 논리 전개에 있어 너무 닮은 꼴이다. 즉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이 정신대 문제를 제기하여 전세계에 일본의 치부를 폭로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대외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다. 한국에 본때를 보여주기 위서 그들과 관계를 멀리해야 한다. 한국에게 일본이 '사활적 존재'이지 우리는 손해볼 게 하나 없다. 이것이 혐한론자들의 결론인데 1백여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를 뒤집어 보면 그와 유사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번 기회에 한국을 길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경여자대학의 지명관 교수는 이렇게 본다. "혐한론자의 대부분이 과거 한국의 군사정권을 옹호하던 친한 인사다. 민주화시대를 맞이하여 한·일유착 관계가 해소되자 그들의 역할은 없어졌다. 이에 대한 반발로 한국을 비난하는 데 불과하다. 또 과거사 문제가 대두할 때마다 반한 공격에 앞장선 사람들이 바로 친한 인사가 아닌가. 정신대 문제가 제기되자 또다시 그들이 들고 일어나는 현상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6공의 대일정책 부재도 원인

 그러나 문제는 최근의 한국 공격이 옛 친한파 일본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 6월의 일이다. 자민당 3역 중의 한사람인 모리 요시로 정조회장이 모교 와세다대학 강연에서 한국인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충격적인 발언을 던졌다. "요코하마의 어떤 구에만 한국인 노동자가 1천5백명이나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베트남전쟁에 참전한사람들이다. 일류 사격수인 그들이 1천명만 모이면 엄청난 군사행동이 가능하다."

 모리의 발언은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독약을 풀었다는 소문을 퍼뜨려 대량학살했던 발상과 너무나 닮았다.

 일본의 경제계도 요즘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판연히 달라지고 있다. 한 예로 한국에도 번역판이 출판된 《신동양사정》의 저자 후카다 유스케가 월간 《보이스》 10월호에서 한국경계를 평가한 얘기를 들어보자. "중국이 한국과 국교를 맺은들 경제적으로 배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차라리 대만이 참고가 됐으면 됐지.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이 제창한 '동쪽을 보자 (Look East)' 정책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일본과 한국에서 배우자는 운동이었다. 작년 마하티르 수상을 직접 만났더니 '동쪽을 보자'가 아니라 '일본을 보자'로 정정하더라."


 한국 경제계와 친교가 깊은 장기신용은행 종합연구소 다케우치 히로시 이사장의 주장도 비슷한 얘기다. "양국의 경제계가 힘을 모아 무언가 해보려면 꼭 과거사 문제가 터진다. 일한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예정된 힘'이 작용해 훼방을 놓는 것 같다."

 한국을 대하는 눈빛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1월초 미야자와 수상이 방한하여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행한 연설을 다시 들어보자 "일·한관계를 단순히 2국 관계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사회에 있어서 일·한관계, 세계속의 일·한관계로 재구축해가자."

 일본 언론은 이 새로운 한·일관계를 '일·한 신시대'라고 표현했다. 양국 관계를 피곤한 2자관계에서 단순한 다자관계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지난 6월 산업기술협력재단설립에 일본측이 한국측 요청액 1억5천만달러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을 제시한 것은 이제 한국을 더이상 특별취급 않겠다는 일본의 의사표시인 것이다. 최근의 혐한 현상도 따지고 보면 정치 경제적 프리미엄이 없어진 한국에 대해 "더이상 눈치볼 필요가 없다"는 일본인들의 의사표시나 다름없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한 고참 외교관은 "본국 정부가 일본의 이러한 변화를 전혀 감지하고 있지 못하다"고 전제하고 "6공의 대일정책 부재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즉 일본 하면 실리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구태의연한 대일관이 상황인식을 오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