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동북아경제권 중심항으로 만들자
  • 부산·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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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중·일 연안해운 살려야”/ 해양대 박용섭 교수팀 주장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혔던 동해와 서해 바닷길이 넓게 트이고 있다. 90년 10월 옛 소련과의 수교, 지난 8월 중국과의 수교에 이어, 9월17일 남북 화해·불가침과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발효됨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던 냉전블록이 새로운 경제질서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 방문(9월27~30일)과 오는 11월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방한 등을 계기로 동북아경제권을 선점하기 위한 '경제전쟁'은 한층 가열되고 있다.

 이 경제권은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교역 물동량의 대부분을 해상교통 수단에 의존해야만 한다. 따라서 러시아 중국 그리고 남북한 해운정책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연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국해양대학교 박용섭(해사법학) 이태우(해운경영학) 김재봉(해양무역학) 교수팀이 최근 발표한 논문 <한·중·소 해양정책의 비교연구>는 그래서 눈길을 모은다. 성곡학술문화재단이 발행한 《성곡논총 23집》에 실린 이 공동연구는 한·중·소 세 나라의 경제 및 해운정책 현황과 세 나라간 경제협력 및 해운교류의 현주소를 꼼꼼하게 살핀 뒤 그 대응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보다 러시아 항로가 유리하다“

 이 논문은 러시아 해운정책 분석과 한국의 연안 해운정책에 대한 시급함, 그리고 부산항의 위상에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 부산·블라디보스토크친선협회(회장 국회의원 송두호) 부회장이기도 한 박용섭 교수는 "중국 상황은 비교적 정적인 데 반해 러시아는 하루가 다르게 법·기구·관료들이 바뀌어 큰 혼선이 빚어지기 때문에 러시아에 중점을 두었다"고 말하고 "경제 측면에서도 중국보다는 러시아가 유리하다"고 전망했다.

 한국과 소련의 해운 교류는 1988년 부산과 소련 극동의 보스토치니항(블라디보스토크에 인접) 사이에 직항로가 개설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7월부터 컨테이너 정기선이 운항되고 있다. 한국의 현대상선·천경해운과 소련의 극동해운회사가 50대 50으로 합작한 한·소해운이 설립됐고 양국에서 컨테이너선 1척씩을 투입해 매주 2회 정기 운항하고 있다. 한·소간 컨테이너 총물동량은 90년에 1만9천9백여 TEU(Twenty Foot Equivalent Unit;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를 가리키는 단위)로 전년에 비해 17% 증가했다. 이 가운데 수출 컨테이너는 1만4천9백여 TEU, 수입 컨테이너는5천여 TEU이다.

 소련 해운은 공산주의의 확산이라는 국제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군사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나, 70년대 후반부터 경제 수단으로 선회했다. 고르바초프 시대에 들어 소련 해운은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근거리수송에서, 서방 경제권과의 교역을 담당하는 원양해운으로 탈바꿈했다. 소련 해운은, 해운이 가지는 국제성 때문에 소련의 다른 산업 분야에 견주어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을 수용하고 있다.

 소련 해운은 원양해운 쪽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지만 선박의 평균 연령이 15년 이상된 노후선이고 그나마 소형선박 위주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노후선 대체를 위해 1백60척에 가까운 선박을 주문해놓고 있어 이들 선박이 인수되는 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세계 해운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보인다고 이 논문은 내다본다.

 이번 연구에 참가했던 이태우 교수는 최근 발표한 또 다른 논문 <항구부산의 해운경제사적 접근>에서 옐친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및 독립국연합(CIS)의 경제와 해운구조 변화를 '시차 없이' 추적하고 있다. 소련 해운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해운부 폐지이다. 해운의 전분야를 중앙에서 통제 관리하던 해운부가 경제공동체조약과 새연방조약에 의해 사라진 것이다. 러시아는 해운부의 기능을 해운국 차원으로 축소시켜 교통부 밑에 두고 있다.

"중국의 법과 제도 연구 시급하다"

 70년대말 홍콩 일본 싱가포르 등을 경유하는 간접 교역방식이던 한·중 경제교류는 91년 4월 중국에 한국 기업의 지사가 설립됨으로써 직교역 방식으로 바뀌되었다.

 한·중 해운 교류는 89년 6월 한국의 부산·인천과 중국의 천진·대련 사이에 정기선 항로가 개설되면서 한·중 해운교류의 막이 올랐다. 한·중간 수출입 컨테이너 물동량은 88년에 총 1만7천여 TEU에서 90년에는 5만6천여 TEU로 급증하고 있다.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정치적 수교"라고 지적하는 박용섭 교수는 "앞으로 경제와 해운 분야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말한다.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해 인민보험총공사 등에서 2주간 해상보험법을 강의하고 돌아온 박교수는 "중국최고인민회의로부터 해운관련 입법 자문 요청을 받아 이에 동의했다"고 밝히면서 중국 법제 연구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법 제정과정부터 우리와 다를 뿐만 아니라 어느 법이 상위법인지조차 구별이 어렵다.

 중국 해운도 기왕의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경영체제에서 탈피하여 경쟁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수평적인 경영체제로 옮아가고 있다. 중국 해운관련 업무는 국무원 산하 교통부와 대외경제무역부에서 관장하는데, 교통부는 모든 해운 정책과 항만 정책을 담당하고 대외경제무역부는 해상운송을 제외한 내륙운송과 화물 집화를  관리한다.

 부산항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보스토치니항과 중국의 연운항은 각각 시베리아횡단철도 (TSR), 중국횡단철도(TCR)를 통해 유럽시장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박용섭 교수는 몇가지 장애요소, 즉 화물 운송의 정확성과 서비스 능력 등을 비롯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면 이 복합운송루트는 기존 해상로 못지 않은 매력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부산·함부르크·발틱해·러시아 내륙으로 연결되는 유럽항로는 40~50일이 걸리는 데 비해 부산·보스토치니·TSR·러시아 내륙(유럽)은 21일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반면 부산·연운·TCR 경로는 약 30일이 걸리는데, 소연방 해체 이후 4개국 통관을 거쳐야 하고 철로 규격이 다른 것 등 문제가 더 있다.

 지금까지의 북방외교를 "사대외교에 의한 실패작"이라고 평가하는 박교수는 남진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러시아와 '용틀임을 시작하는' 중국을 경계해야 할 때라며 현시점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박교수는 동·서해의 항로시설, 해양오염 방지, 해난구조 체계 등 물리적 문제와 특히 중국 항만의 배타성(중국은 자국 항만을 제한적·배타적으로 외국에 개방하고 있다)과 소련의 항만 시설 부족 등을 해결하는 경제 차원의 문제들이 남북한·중·러·일이 참여하는 국제회의에서 협의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정보 부족과 무분별한 과당경쟁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비판하는 박교수팀은 동북아 경제 현실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배수진으로 부산항의 위상을 한 차원 높이는 방안을 제안한다. 부산항은 동북아 근대사를 돌아볼 때 항상 중요한 거점이었다. 일본이 러시아,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부산항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박교수는 해석한다. 2차대전은 물론 6 · 25 때에도 부산항의 중요성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부산항은 다시 환동해·환서해 경제권의 인적·물적교류 중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원양해운에만 치중해온 한국 해운정책은 남북 경제교류와 동북아경제권에 대비하는 연안 해운정책으로 하루 빨리 전환되어야한다고 연구팀은 결론짓고 있다.

 또한 이태우 교수는 논문 <항구부산…>에서, 현 부산북항을 동북아경제권의 중심항으로 정착시키는 한편, 낙동강 하구와 가덕도를 연결시키는 지점에 컨테이너 부두를 설립해 21세기 환태평양경제권의 무역 전진기지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구상을 펼치고 있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은 자국 화물을 부산항을 통해 극동·유럽항로와 북태평양 항로에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후쿠오카에 거대한 컨테이너 부두를 건설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항에 들어와야 할 컨테이너가 후쿠오카로 옮겨간다면 그 경제적 손실은 실로 막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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