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 盧心’ 읽은 고원정의 상상력
  • 김훈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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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계엄령》 정치현실 정확히 예측




 소설가 고원정의 정치소설 《최후의 계엄령》은 盧대통령의 탈당과 민정계의 동요 등 정치현실을 어느 정도 적중시켰고, 정치판의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5개월 동안 톱셀러 지위를 누려온 이 소설은 탈당 정국을 맞아 더욱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 작가 고원정의 정치적 상상력이 가동되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소설 속에서 6공 말기에 盧대통령의 탈당과 그에 따른 민정계의 동요를 설정하게 된 상상력의 논리적 구조를 설명해 달라.

내가 이 소설을 구상하던 90년 9월 무렵에 김영삼과 박철언의 싸움은 볼 만한 양상으로 터져나왔다. 김영삼은 판을 엎을 듯이 위세를 과시하며 마산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김영삼과 그의 계보가 민자당을 탈당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의 정황, 즉 노대통령이 당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야당 체질로 굳어진  김영삼의 뚝심과 밀어붙이기의 힘을 민자당내 反YS가 당해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왜 김영삼이 계보를 이끌고 탈당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했나.

김영삼은 3당통합으로 인해 얻은 이득도 있고 상처도 있다. 그가 탈당하면 그 상처는 극대화될 것이다. 김영삼은 어쨌든 3당통합의 구도 안에서 가장 큰 것을 얻어내야 하는데 그것은 대권후보이다. 그러므로 그는 탈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상상 속에서 읽어낸 김영삼의 내면이다.

정치권으로부터 정보를 공급받고 있으리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정치권과는 아무런 인연도 흥미도 없다. 만일 정치권으로부터 정보나 자료가 제공되었더라고 나는 그것을 사절했을 것이다. 그것은 오염되고 왜곡되거나 과장된 정보일 뿐일 테니까. 나는 날마다 열한가지 신문을 구석구석 읽으면서 분석하고 상상했다. 시민다운 상상력을 정확하게 조직했을 뿐이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일반 시민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심지어 작가의 배후에 역술인이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웃음) 거듭 말하지만 신문을 분석하고 상상력에 따라 재구성했을 뿐이다.

소설이 일간지에 연재되는 동안, 그리고 장기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누리는 동안 정치권으로부터 말을 걸어온 경우는 없었나?

몇번 있었다. 제안도 가지가지였다. 정보를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네쪽을 잘 써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다 거절하고 만나지 않았다.

노대통령이 탈당한 후 이 소설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파악해본 적이 있는가.

직접은 없다. 그러나 간접으로 들으니 정치권의 사석이나 술자리에서 ‘이 소설대로 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수근거림도 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는 국회의원 ‘오일무’라는 주인공이 이상적 정치가로 설정되어 있다. 오일무의 현실적 모델이 있는가.

내 상상력 속에서 노무현과 이해찬의 이미지를 합성해서 오일무라는 소설 속 인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이미지에 국한된 것이고, 소설 속의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다.

그 오일무의 내면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내 주인공 오일무는 타락한 정치현실 속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비비지만 이상주의의 꿈을 버리지 않는 인간이다. 꿈의 빛남과 현실의 더러움을 모두 체득한 인간이다.

소설 속에서 우익 테러리스트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우익 테러리스트를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릇된 신념을 가진 자들의 무서움과 그 어리석음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신념은 그릇된 신념일수록 더욱 확고하다. 그 무서움.

소설이 아니라 현실 얘기를 해보자. 지금 노대통령의 탈당을 받아들이는 金大中의 내면을 작가로서 상상해달라.

이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으로 말하겠다. 김대중은 노대통령의 탈당이 정치적 위장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고, 또 거기에 대비하고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노대통령의 탈당이 자신에게 가져오는 정치적 이득을 기정사실화해 나가는 것이 유리하리라는 전략 위에서 행동할 것이다. 지자제를 양보할 수 있는 빌미와 국회에 들어갈 수 있는 명분을 얻은 것도 김대중의 이익일 것이다.

그런 상상이 가능한 배경은 무엇인가.

노대통령의 탈당은 시기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대통령의 탈당이 진실로 공명선거를 위한 것이라면 훨씬 더 앞서서 이루어졌어야 한다. 또 그의 탈당이 김영삼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면 훨씬 더 늦게, 선거 직전에 이루어졌어야 한다. 선거를 3개월 남겨놓은 탈당이란 난해하다. 또 노대통령과 김영삼이 재결합하기 위해서라면 그 3개월이란 시간은 충분히 유익할 것이다. 김대중이 이것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신문을 구석구석 읽으면 그런 판단에 도달할 수가 있는가.

그렇다. 상상력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한 줄의 가십이 벼락처럼 내 뒤통수를 때릴 때도 많다.

최근에도 그 벼락이 뒤통수를 때렸나.

그렇다. 미국에 간 노대통령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주요 국책사업은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말했다는 보도는 내 뒤통수를 때렸다. 이 진술과 탈당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결국 탈당의 한 중요한 이유는 중립 내각이 아니라 바로 이것일 수도 있구나, 그런 상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설정을 가지고 글을 쓸 계획은 없다.

이런 소설은 정치의 현실을 마치 노리개처럼 만들어서 국민의 현실감각을 마비시키지 않겠는가.

그렇다. 인정한다. 이 책이 이처럼 팔리고 있는 배후에는 정치에 대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정치불안을 가속화하고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무력감을 조장한다는 점을 나는 수긍한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에게 정치현실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제시하면서 거기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는 나름의 자긍심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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