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화장실’이 턱에 찼다
  • 김당 기자 ()
  • 승인 199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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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뒤면 저장 시설 포화…내년까지 새 처분장 터 잡아야

 흔히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맨션’으로 비유한다. 석탄 · 석유 화력발전에 견주어 원전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한 곳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쓰는 거의 모든 상업용 전기 에너지(수력 · 화력 · 원자력)를 독점 생산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의 직원들이 근무지로서 가장 선호하는 발전소는 원전이다. 그러나 ‘전력입국’이라는 사명 의식으로 무장한 이른바 한전맨들과, 그중에서도 더더욱 자부심이 강한 원자력맨들도 ‘화장실 없는 맨션’이라는 가시 돋친 지적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전은 78년에 최초로 고리에서 ‘제3의 불’을 켠 이래 16년 동안 원자로 아홉 기를 상업용으로 운전해 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거기서 발생하는 핵쓰레기(고 · 중 · 저준위 방사성폐기물)를 처리할 처분장터도 선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핵쓰레기 처분장 터 선정 문제는 한전의 차원을 넘어선 정부의 정책적 결정 사항이다. 한전은 원자력법에 따라 원전 부지내 한켠에 임시로 저장해 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임시 저장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한전은 그동안 늘어나는 핵쓰레기를 처리(임시저장)하기 위해 고리와 울진 두곳에서 임시 변통으로 중 · 저준위 페기물 임시 저장 시설을 확장해 왔으나 그 또한 이미 ‘목까지 차 있는’상태이다.

 한전 방사성물질 관리부에 따르면 94년 4월말 현재 고리 · 월성 · 영광 · 울진 원전의 총 아홉 개 원자로에서 발생한 핵쓰레기 가운데 △중 · 저준위 폐기물은 4만3천7백여 드럼(200l 기준)으로 원전 부지내 저장 용량(7만9천9백 드럼)의 55% △고준위 폐기물(사용후핵연료)의 양은 2천2백17t으로 저장 용량(3천8백83t)의 57%에 이르고 있다(위 그림 참조).

현재 원자로 일곱 기 증설중
 현재의 핵쓰레기 예상 포화 연도는 당장 내년으로 임박했다. 고준위 폐기물의 경우 96년에 월성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 것을 시작으로 2000년이면 모든 원전의 저장 용량이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중 · 저준위 폐기물 저장 시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역 주민의 반발이 가장 심한 울진은 당장 내년이면 저장 용량을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 원자로 네 기가 들어서 있는 고리는 본디 92년이 포화 예상 연도였다. 한전은 30여억원을 들여 기존의 폐기물 저장고 옆에 추가로 임시 저장고(2만3천 드럼 규모)를 증설했으나 2001년이면 다시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이미 원자로 네기가 들어서 있는 고리를 제외한 모든 원전 부지에 원자로 일곱 기를 증설하고 있다. 현재 건설중인 원전의 호기별 공정률을 보면 △영광(3 · 4호기) 93% △월성(2호기는 45%, 3 · 4호기는 13%) △울진(3 · 4호기) 34% 등이다. 거기다 계획중인 원자로까지 포함하면 이론상 부지내 ‘간이 화장실’은 이미 넘쳐 있는 상태인 셈이다.

 지난 81년에 저준위 폐기물 영구 처분장터를 선정해 88년에 준공한 스웨덴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리고 우리나라 건설업체의 날랜 공기단축 실력을 고려하더라도 늦어도 95년까지는 터를 선정해야 할 형편이다

 핵쓰레기는 엄격한 구분이 필요하다. 방사성폐기물 중에서 중 · 저준위 폐기물은 원전이나 방사성동위원소를 취급하는 기관에서 근무하는 종사자들이 방사선 관리구역 내에서 작업할 때 입은 방호용 작업복 · 장갑 · 덧신 같은 잡고체와 샤워 또는 작업복을 세탁할 때 나온 물(세탁수), 발전소 운전중 누수된 냉각수, 농축찌꺼기 등 액체폐기물 그리고 방사선 관리구역 내에서 사용한 작업공구 등 방사능 세기(오염의 정도)가 비교적 낮은 폐기물이다. 연간 5천 드럼쯤 발생하는 이들 중 · 저준위 폐기물은 시멘트 · 아스팔트 등과 혼합하여 200l들이 콘크리트나 철제 드럼에 넣어 발전소 부지내 한켠에 지어 놓은 임시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한편 고준위 폐기물(사용후핵연료)은 보통 원자로 내에서 3년 정도 태우고(핵분열을 하고) 남은 핵연료 물질로, 이 속에는 핵연료로 사용된 우라늄 외에도 우라늄이 분열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여러 방사성물질이 들어있다. 이를 재처리할 경우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임시 보관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는 24시간 국제원자력기구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돼 있다. 이 수조를 벗어나려 할 때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원전에서 태운 사용후핵연료가 수조를 벗어나 적이 없지는 않은데, 이미 사용후핵연료로 가득찬 고리 1호기 수조에서 3호기 수조로 옮길때와 연구 목적으로 나갔을 때이다. 이 외출에는 현대중공업에서 제작한 특수 이동 차량이 이용되었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한 후에 남은 물질(핵분열 생성물)도 물론 고준위 폐기물이다. 원전 관계자들이 폐기물이라는 표현 대신에 ‘사용후핵연료’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프랑스 · 영국 · 일본과는 달리 재처리를 안하고 한번 쓰고 버리는 핵주기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고준위 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인 셈이다.

고준위 폐기물 처분 기술 아직 없어
 그것이 사용후핵연료건, 핵쓰레기이건 간에 이것을 영구 처분장 또는 중간 저장 시설로 보내어 인간과 생태계로부터 완전히 격리하기 위한 작업은 전세계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중 · 저준위 폐기물의 영구 처분 방법은 각국의 국토 여건 및 사회 관습에 따라 다양하나 크게 천층 처분과 동굴 처분으로 나뉜다. 천층 처분을 택하고 있는 대표적 나라는 프랑스(라망시 처분장)와 일본(아오모리 처분장)이다. 이는 점토층에 콘크리트 바닥 슬라브를 만들고 그 위에 철근 콘크리트벽을 만들어, 여기에 폐기물 드럼을 넣고 드럼 사이에 다시 콘크리트를 주입하여 전체를 콘크리트덩어리로 만드는 것이다. 국토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미국은 이보다 더 단순한 천층 처분을 택하고 있다.

 한편 동굴 처분을 택하고 있는 대표적 나라는 스웨덴이다. 발틱 해의 바다밑 50m 화강암 암반에 설치된 스웨덴의 영구 처분장(SFR-1)은 육지로부터 대형 터널로 연결돼 있어 폐기물을 실은 트럭이 직접 이곳을 드나든다.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소금 광산과 폐광산을 이용한 처분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암염층에는 지하수가 없고 암염층 자체가 건조한 상태여서 핵쓰레기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물과의 차단’이 쉽다는 장점이 있으나 주정부는 처분장 운영을 반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 · 저준위 폐기물은 동굴 처분 방식으로 영구 처분하고 △고준위 폐기물은 습식 저장 방식(수중 풀 저장)으로 중간 저장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방사능이 소멸될 때까지 수만년 동안 ‘관리’해야 하는 고준위 폐기물을 영구 처분할 기술은 아직 지구상에 없다. 따라서 처분 기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처치 곤란한 핵쓰레기는 여전히 전세계 원자력산업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 문명이 낳은 이 처치곤란한 부산물 또한 과학기술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는 과학기술주의와, 과학기술로는 인류가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를 풀 수 없다는 생태주의의 첨예한 대결,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불필요한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이제는 국민적 합의에 따라 선택할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원전을 포기하는 것이건 지속하는 건이건, 주어진 선택의 시간은 얼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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