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학술교류 “학문적 성과 적다”
  • 한종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1.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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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측 무성의, 졸속 잇따라…‘북한학자 신드롬’도 문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씨는 언젠가 ‘서울의 김일성 신드롬’이라는 글에서 한국사회의 평양지향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지식인 학자 정치인 사이에는 김일성 혐오와 함께 의외로 김일성 콤플렉스가 있다. 젊은 대학생 사이에는 강렬한 북한바람이 일고 있다. 김일성은 89년 신년사에서 4당총재와 김수환 추기경, 문익환 목사, 백기완씨 등 7명을 초대했다. 이 7명 가운데 김일성씨와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은 김수환 추기경과 김종필씨뿐이다.” 그는 요즘 우리 학계에 일고 있는 남북학술교류 바람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 올 여름 중국 연변에서 열린 몇차례 학술회의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인상을 준다.

 7월말부터 연변에서는 KOREA학소장학자국제학술토론회(KOREA학은 한국한 · 조선학을 남북단일팀의 명칭을 따서 절충한 용어) 조선어학술대회 의학자대회 지리학대회 과학기술자학술대회 전자공학학술대회들이 잇따라 열렸다. 많은 학자들이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둘러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한학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앞다퉈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학술대회 참가자뿐만 아니라 관광객 기업인 등이 몰려 객실 1백60개의 연길 백산호텔은 한국사람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학술진흥 재단의 한 직원은 “북한학자가 참여하는 학술대회가 있다 하면 문의전화가 쇄도한다. 특히 백두산 관광코스가 끼여 있으면 호흥이 높다”고 전했다.

 KOREA학소장학자국제학술토론회에는 거의 모든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고 불편한 교통 · 숙식을 기꺼이 감수하면 서 70여명의 남한학자들이 참석했다. 연이어 열린 조선어학술대회나 과학기술자대회도 마찬가지. 이들은 하나같이 주최측의 무성의한 준비와 여러 가지 악조건에 시달려야 했지만 이를 문제삼는 학자는 거의 볼 수 없다.

 이렇게 큰 기대를 갖고 참가를 하지만 허탕을 치고 돌아오기 일쑤다. 주최측은 참가자 명단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돌아오는 날까지 도대체 누가 참가했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껏 마련된 대회에 아예 북한학자가 불참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7월15일 열린 황해권국제경제합작구상학술대회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공동주최자인 중앙대 지역경제연구소가 길림대학측의 철석같은 약속을 믿고 참가 여비까지 보내줬지만 북한학자의 모습은 끝까지 보이지 않아 참가자들을 낙심케 했다.

 남북한 학술교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학술교류의 가능성은 몇 년 전부터 간간이 거론되어온 것이지만 89년 文益  목사 방북 이래 비정치적 경제교류를 포함, 모든 논의가 완전히 정지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89년 6월 정부는 북한측과의 접촉을 원할 경우 적법절차에 따라 승인을 받도록 남북교류협력지침을 발표했다. 그 첫 케이스로 89년 10월 파리육학생    씨가 파리 주재 북한대표부와의 접촉 승인을 받음에 따라 남북한 학술교류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37쪽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89년 6월 이래 정부에 정식 승인을 요청한 건수는 1백35건에 달하지만 실제 성사된 경우는 26건에 그쳤다.

 이렇게 성사 비율이 낮은 원인은 대개 북한측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아무런 해명도 없이 참가를 거부하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바람을 많이 타기 때문에 성사 직전 단계에서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이다. 금년 4월로 예정됐던 한국미래연구학회 주최 남북 학술대회는 IPU대회 때문에 무산됐다. 가깝게는 8월21일부터 열린 한민족철학자대회도 최초의 본격 학술교류로 관심을 보았지만 북한측의 불참으로 끝났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탓하는 견해도 있다. 정부가 사사건건 끼어들어 감놔라 배놔라 하기 때문에 민간교류를 내세우는 북한측을 자극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내년까지는 직교류 시대 올 것”
 그래도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남북학술교류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남북학술 직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한 학자는 “아직은 제3국이 주관하는 간접교류에 머물고 있지만 상호방문을 통한 직교류도 멀지 않았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직교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학자들의 태도에 대한 지적도 많다. 그렇잖아도 보수와 진보, 학연과 지연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대립으로 잡음이 없지 않은 하계의 경쟁의식이 밖에 나가서도 고스란히 표출되곤 하기 때문이다. 인하대     교수는 “학술교류를 ‘선점’하기 위해 남한학자들이 경쟁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 7월의 KOREA학소장학자국제학술토론회가 바로 그런 경우다. 세 그룹으로 나뉘어 참가한 학자들 가운데 몇몇은 서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다가 정작 북한학자 앞에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사진찍기 경쟁을 벌여 북한학자들조차 눈살을 찌푸렸다고 한다. 한 북한학자는 “남한학자들이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주체성이 좀 부족한 것 같다”는 낯뜨거운 지적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남한학자들이 북한학자를 두고 먼저 만나기, 먼저 데려오기, 먼저 평양방문하기의 세가지 경쟁을 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극히 예외이긴하지만 학술교류는 뒷전이고 백두산 관광이나 북한학자들과의 사진찍기에만 전념에서 염불은 뒷전이고 잿밥만 찾는다는 비난을 사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같은 학술 교류 열기를 냉소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많다. 오랫동안 아무런 교류없이 정보로부터 차단되어왔기 때문에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상대방 바로알기에 적극적인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학술대회 자체의 성과가 미흡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같은 생각인 듯하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한 교수는 “학술적 성과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방법론과 이론 체계가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주석 하나도 없이 ‘신문사설 같은’ 논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학술적’ 이유 말고도 자유로운 만남이 어렵다는 ‘정치적’ 원인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교수는 “아직은 북한을 바로 아는 데 필요한 자료교환 단계에도 못미친다. 같이 찍은 사진 교환도 어렵다”고 한다.

 남한학자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남한학자들이 각자의 사회적 · 이론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음에 비해 북한학자들은 모두 단일한 ‘주체의 사상 · 이론 ·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한학자들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이 다양성도 북한학자들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이 다양성도 북한학자에게는 ‘부르주아계급의 잡사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한학자는 이를 학문의 자유가 없다고 비판하지만 북한학자는 주체사상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면서 사회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남한쪽에 사상의 자유가 없다고 맞받아친다.

과학기술분야 교류 가능성 가장 높아
 학계에서 남북학술교류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분야는 고대사연구 어문학 민속학 등 인문과학분야와 의학 자연생태계조사 과학기술 등 몇가지에 국한되어 있따. 사회과학분야는 방법론과 이론, 사회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아직 특별한 진전이 없다.

 반면 과학기술분야에는 북한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교류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로 꼽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8월19일 열린 과학기술자대회는 남북교류가 어떤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전범이 될 듯하다. 이날 대회는 남한측에서 1백1명, 북한에서 조선과학기술총연맹 허병진 부위원장 등 46명, 중국에서 조선족과학가협회  貴吉 회장 등 2백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오는 93년 삼지연에서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할 예정인 북한은 약물검사 분야에 큰 괌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따. 지난 90년 북경대회 때도 중국 관계자들이 우리 기술을 배워간 적이 있는데 북한체육과학연구소는 이 분야에서 우리와의 기술교류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학술교류는 대개 학자들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진행되기 때뭉네 뚜렷한 방향과 원칙이 서 있지 않은 상태이다. 어떤 학자는 “학술교류는 경제통합으로 가기 위한 준비단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정치 · 경제교류는 북한을 자극하기 쉽기 때문에 비정치적 삭술교류에서부터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재야의 한 소장학자는 “모든 교류가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마당에 순수한 의미에서의 학술교류는 힘들다”는 회의적 견해를 보였다. 남북학술교류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학술교류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학술교류의 지향점이 좀더 분명해져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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