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폭행에 칼까지 휘둘렀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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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떠 있는 포로수용소. 文得萬씨(27)는 지난 4개월간 자신이 탔던 오징어 유자망어선 제7금도호를 이렇게 부른다. 8개월 계약으로 출항했지만 기관고장으로 4개월 앞당겨 8월10일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 문씨는 “이제야 살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살았다는 기쁨도 잠깐, 망망대해에서 4개월간 짐승보다 더한 고초를 받은 것을 생각하니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억울했다. 그래서 문씨를 비롯한 금도호 선원 5명은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선례를 남기겠다”는 뜻으로 부산해경과 부산지검에 갑판장과 상급선원, 그리고 이를 묵인한 선장을 상습폭행 혐의로 고발했다.

문씨가 선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올 3월초.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농고를 중퇴하고 서울 구로구 독산동에 있는 조그만 금형공장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아 좀체로 목돈을 쥘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한 스포츠신문에서 ‘연봉 1천만원 보장’이라는 외항선원 모집광고를 보고 솔깃해졌다. 문씨는 “눈 딱감고 3년 고생함녀 한몫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광고에 나온 대로 용산역 근처 ‘씨-코’라는 유령회사를 찾았다. “고생이 되더라도 상선보다는 원양어선을 타야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회사측의 꾐에 넘어가 어선을 타기로 결정했다.

문씨가 ‘소개비조’로 20만원을 낸 다음 넘겨진 곳은 부산 자갈치시장에 있는 ‘채낚기갑판장협의회’. 문씨처럼 목돈을 벌기 위해 모여든 ‘밑바닥인생’들이 승선할 배가 정해지는 곳이다. 시중에서 5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선원필수품을 15만원에 강매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3월말 ‘조일’(배를 수리하거나 페인트칠을 하면서 출항준비하는 작업)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7금도호에 오른 문씨는 그때서야 자신의 동료선원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난생 첯음 배에 오른 하급선원들은 출항 전까지는 “매우 인간적인” 대접을 받았다. 출항 전까지 간부선원들은 신참들이 눈치 채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따뜻하게 대해주기 때문이다.

“닻을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배안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문씨는 “오륙도를 돌아서자마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리 정도로 상황이 급변했다”고 한다. 위압적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김진희 김용욱씨는 영도 앞바다에 투신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들은 끝내 배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이런 소란을 치르고서야 제7금도호는 목적지인 북태평양을 향해 키를 돌릴 수 있었다.

4월20일 목적지 도착. 이때부터 신참선원들은 “고대 노예선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길이 2m, 폭 60㎝, 높이 70㎝의 침실에서 “매일 관속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잠을 청해야 했다. 하루 24시간 조업해야 하기 때문에 그나마 대여섯시간의 수면을 여섯차례로 나누어 자는 ‘쪽잠’으로 때웠다. 자다가도 봉변을 당했다. “돈이고 뭐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문씨는 “잠을 자도 그물이 목을 휘감는 악몽만 꾸었다”며 치를 떨었다.

상급선원들로부터 “너희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죽이고 나서 실족사로 처리하면 그만이다”라는 폭언을 밥먹듯이 들어야 했다. 문씨는 “동료들이 얻어터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저 내가 폭행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일단 배에 오른 이상, 어느 누구도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5월7일 새벽2새. 그물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던 중 작업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갑판장 신용택씨(34), 상급선원 김종섭(23) 조휘삼(29) 정대현(23)씨 등이 전선원의 속옷을 벗긴 후 살이 터질 때가지 투망대로 둔부를 수십차례 구타했다.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한 세월이었다.

5월18일 그물 감는 기계에 손이 빨려들어가 문씨의 왼손 인지가 부서졌다. 그러나 치료는커녕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안면을 구타당했다. 7월9일 컨베이어에 실려 올라가던 고기가 문씨의 얼굴에 떨어져 다치자 선장이 마취도 하지 않고 다섯바늘을 꿰맸다. 그렇다고 작업에서 ‘열외’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저는 다른 동료들에 비하면 덜 맞은 편입니다. 술에 취한 상급선원들이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나쁘면 나쁘다고 휘두르는 주먹질과 발길질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칼을 휘둘러 온몸에 상처를 입은 동료도 있습니다.”

4개월 고생하고 문씨가 손에 쥘 수 있었던 돈은 1백60만원. 목돈을 벌어보겠다는 꿈은 사라지고 망가진 육신과 허물어진 정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요즘도 문씨는 매일 ‘배에 오르는 악몽’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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