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해빙무드에 국방비 성역 ‘흔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09.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DI, 예산정책협의회에서도 바위비 재검토 주장

“룸살롱의 팁이 방위비를 높여준다.” 80년대 중반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나돌았다. 그때까지 국민총샌산(GNP) 계정에 포함되지 않던 팁이 GNP에 포함된 뒤 나온 얘기였다. ‘우리 방위비가 GNP의 몇%’라는 식으로 GNP에 연동, 편성됐기 때문이다.

이 예는 국방환경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편성되어 집행되던 ‘방위비 성역’에 대한 경제학자들읜 불만을 잘 보여준다. 지난 79년 미국과 우리 정부의 협약에 의해GNP의 6%를 방위비로 편성하기로 한 ‘GNP 연동제’는 80년대 중반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군 관계자들은 절대규모보다는 GNP 대비 비중을 방위비 지출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GNP의 몇% 이하는 안된다는 식의 논리를 펴왔던 게 사실이다. 올해 5월 말 국방부가 발행한 영문판 90년 국방백서에도 “74년 이래 북한의 방위비는 GNP의 20~24%에 이른 반면 남한은 5% 정도”라면서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는 미국 소련 등 12개국의 GNP 대비 방위비 수준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되어 있다.

“방위비 지나치고 사회개발비는 부족”
그러나 남북한의 GNP 격차를 고려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남한의 군사비 지출은 이미 76년에 북한을 앞섰다.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더라도 작년 한국의 방위비 지출은 89년 불변가격 기준으로 99억달러로 북한의 1.8배에 이른다(표 참조). 이 규모는 정부예산의 약 30.4%로 긴축압력을 받는 정부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방위비 절감문제는 최근 예산편성때마다 경제기획원과 국방부 사이에 논란이 돼왔으며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국방부에서는 경제기획원에 총 9조3천억원의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올해 예산 7조4천억원에 비하면 약 25% 가량이 증가된 금액이다. 경제기획원에서는 91년 방위비 예산의 증가율인 12%선에서 동결시킨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방위비 삭감을 주장하고 나선 곳이 군부와 함께 가장 보수적인 집단의 하나로 손꼽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라는 사실이다.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원장 崔鍾賢)은 지난달 12일에 배포된 분기별 정기보고서인 ‘3/4분기 경제동향과 전망보고서’를 통해 “국제연합에 대한 남북한 동시가입 등의 평화무드 조성에 따라 국방비의 점진적 삭감이 고려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92쪽으로 구성된 이 보고서에서 국방비 삭감을 주장한 부분은 이 단 한줄이었다. 이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경련은 국방부로부터 강한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장은 “정부가 경제안정을 취해 총수요 억제정책을 펴면서도 내년의 정부예산은 올해 대비 증가율이 24%를 넘는 33조5천억원 규모로 편성되어 있고, 방위비와 같은 경직성 경비 대문에 당장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재계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공동작성자 가운데 문제가 된 부분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ㅇ연구위원은 “단 한줄의 글이 이렇게 큰 파문을 불러올 줄 몰랐다”면서 “이 주장이 전경련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 줄의 글이 이렇게 큰 파문을 불러오는 것만 보더라도 이 주장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파문이 커지자 전경련은 문제가 된 부분을 지우고 보고서를 배포했다.

같은 달 16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대회의실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서도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KDI의 李啓植 연구위원은 ‘제7차 계획기간 중 재정규모 및 조세부담률 전망’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방위비 일반행정비 지방교부금 등 경직성 경비의 비중을 줄여야 하며 방위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재정지출 구조를 세계 각국의 평균에 비교해 볼 때 방위비 분야는 지나친 반면 사회개발비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재정의 주요 당면정책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한 한국외국어대 崔洸 교수도 “장기적으로 국방비와 경제개발비를 줄이는게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전쟁의 기초는 경제력인데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의 7배를 넘어섰고, 우리나라 GNP가 급격히 즈악하여 GNP 대비 비중과는 무관하게 절대적 규모에서 북한과는 비교가 안된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으로 국방환경이 변한 상황에서 국방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안이 아니냐”고 거듭 밝혔다(보조기사 참조).

“자료 주면 조언할 용의 있다”
반면 李鍾九 국방장관은 같은 날 영자지 <코리아 헤럴드>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서 “앞으로 3~4년간 방위비는 GNP의 4.5%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작년의 경우 4.1%인 것을 감안하면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그는 그 근거로 동서진영과 남북한간의 해빙무드에서도 불구하고 북한이 생화학무기와 재래식무기, 심지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안보를 낙관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5년간 방위비의 증가율이 둔화되는 추세임을 강조하면서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국방부의 입장을 집약해서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90년 국방백서에는 “국방에 대한 누적적 투자는 95년에 가서야 같아질 전망이며, 공산주의 국가와 자본주의국가간의 의사결정이나 무기구입 과정상의 차이로 군사적 균형은 2천년대 초가 돼야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방위비 삭감 논쟁의 점은 △남부한의 전쟁수행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군축을 고려해야 할 만큼 국방환경이 변화했는가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데는 아직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초 한 교수가 어느 신문에 국방비 가운데 운영유지비를 절감할 여지가 많다(이 주장과 관련, 인터뷰 기사 참조)는 기고를 하자 국방부의 한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절감해야겠느냐”고 비아냥거린 일이 있었다. 그때 이 교수는 “운영유지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자료를 모두 주면 조언을 할 용의가 있다”는 주장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고 한다. 국방과 관련된 초보적인 자료도 공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