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김일성에 말발 설까”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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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개화와 척사》, 개화기 인물들의 ‘북한 개방 훈수’그려



 왕세자로서 스물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한 조선조 임금 익종이 저승에서 한반도를 내려다보며 탄식한다.

 “지금 저 사람 하는 짓은 어쩌면 그리도 그 무렵의 흥선과 흡사한가. 흥선이 그러했듯이 저 사람도 이즈막에 사면초가가 아닌가.”

 ‘이 책을 김일성 주석 부자에게 드린다’는 서문을 달고 나온 이호철의 《개화와 척사》(민족과문학사)는 백년의 시간차를 두고 재연되는 개화기정국을 읽어내는 모범적인 길잡이 구실을 한다.

 작가는 양이파와 개화파로 갈라져 사생결단하던 구한말의 개화정국은 다시 백여 년이 흐른 오늘날 남북 분단 상황과 고리를 맺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즉 쇄국양이의 거두였던 흥선대원군과 그 쪽 맥락에 있는 일련의 사람들, 흔히 척사 위정파라고 불리는 이항로 · 기정진 · 최익현 등을 필두로 전봉준의 동학군, 유인석 기우만 신돌석 이강년 허 위 안중근 등 숱한 의병들, 무력항쟁파들은 요즘에도 남쪽보다는 북쪽으로 연(緣)을 대고 있으며, 대원군도 더러는 북쪽 김일성 주석의 꿈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서 계속 양이론을 펴며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식이다.

 익종과 초기 개화파의 지도자 격인 박규수가 만나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걱정하며 ‘척사파의 뜻을 받들되 김주석을 개화 쪽으로 끌어내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누구를 김일성에게 들여보내야 ‘말발이 먹힐는지’ 고심한다. 그 때문에《개화와 척사》의 소설적 구조는 김옥균 · 박영효로부터 전봉준 · 신돌석에 이르는 개화기의 수많은 인물들을 하나하나 끌어내 검증하고 심사해 가는 과정을 택한다.

 그들은 박영효로 하여금 김영삼의 꿈 속으로 들어가게도 하고, 유길준을 김종필의 꿈속으로 스며들게 하기도 하지만, 김일성에게 보내는 최후의 인물로는 의병대장 의암 유인석을 선택한다. 김주석에게 제대로 말발이라도 설 수 있는 인물은 그래도 ‘순정 척사파’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결론은 여러모로 음미할 맛이 난다.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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