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와 교육은 똑같습니다”
  • 정리 김당 기자 ()
  • 승인 199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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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밀분교ㄷ 학부모들 《시사저널》에 호소문

두밀분교(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두밀리) 학부모들이 “법관의 지혜와 양심에 두밀분교의 미래를 맡기기로” 결정하면서 ≪시사저널≫에 호소문을 보내왔다. 두밀리 주민들은 지난 3월부터 교육부의 폐교 조처에 반발해 자녀들의 다른 지역 학교 등교를 거부한 채 마을회관에서 손수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시사저널≫ 제231호 참조)

그러나 등교 거부가 계속되자 가평군 교육청은 아이들의 ‘학습권’을 내세워 학부모 전원에게 과태료 통지서를 발급케 하고, ‘무인가 교습 행위’를 한 ‘엄마 선생’ 2명과 학부모 대표 왕종설씨 등 3명을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발했다. 한편 농사철을 맞아 더는 자녀들을 가르치기가 어렵게 된 두밀리 학부모들은 4월19일 두밀분교 폐교를 철회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교육부에 청구함과 동시에 폐교 명령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서울고법에 제출했다. 이로써 농어촌학교 통폐합 정책은 최초로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지게 되었다. 아래의 호소문은 교육 행정가들에게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편집자>

저희들은 교육 전문가는 아닙니다. 산골에서 농사 짓고 나무를 가꾸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저희들은 비록 복잡한 현대사회의 이치에 밝지는 못하지만 대신 자연 순리에 맞춰 살면서 거기서 지혜를 발견하곤 합니다. 두밀분교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선 농사를 짓는 것과 어린이를 교육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 이치와 방법상에 큰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농사꾼이나 교육자나 모두 미래의 풍성한 수확에 희망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밀리 주민들은 알찬 벼이삭, 잘 여문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흘려 씨 뿌리고 거름주고 김을 맵니다. 교육자들은 아이들을 훌륭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농사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간의 예산 절감을 내세워 두밀분교와 같은 산간 벽지 학교의 폐교 조처를 명령한 교육행정가들은 아직도 자연의 순리를 터득치 못한 미숙한 ‘사람 농사꾼’인 듯합니다. 두밀분교의 문을 닫겠다는 사람들은 비옥한 농토를 두고도 재료값이 아까워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우매한 농사꾼과 다름없습니다. 농번기를 맞은 두밀리 주민들은 비탈진 산골 전답에 온 식구의 생계를 걸고 있지만 무턱대고 값싼 종자나 모종을 찾지 않으며, 땅이 모자란다고 해서 빽빽하게 심지도 않습니다. 당장 돈과 힘이 든다고 해서 거름주기와 김매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투자와 노력이 없이 알찬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은 농사일이나 교육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땅의 교육행정가들은 미래의 결실을 생각지 않는 사람 농사꾼들입니다. 이들은 작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이들 교육에 나쁘고 학생 수가 많은 큰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말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두밀분교와 같은 농촌 벽지 학교를 폐교하는 것이 두밀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크게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콩나물 교실에서 자라는 연약한 도회지 아이들과 비옥한 자연환경 속에서 순박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두밀분교 아이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지금 당장 1년에 천만원 정도의 예산을 절약하겠다고 두밀리 아이들을 복잡하고 오염된 도회지 학교로 몰아내는 교육행정가들의 손에 우리 아이들을 무조건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제 농사철이 다가와 더는 자녀들의 수업을 대신 맡기 어렵게 된 저희 두밀리 학부모들은 법에 따른 공정한 처분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부디 법관의 양심에 따라 조속히 폐교 문제가 해결되어 더는 두밀분교 학생과 학부모들의 희생이 계속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리 · 김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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