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땅에 심는 만델라 신념
  • 워싱턴 ·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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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곳마다 열과, 연예인도 줄이어 … 남아공 정부 큰 부담

 “한낱 인간을 神처럼 떠받드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신은 더더욱 아니다.” 27년만에 형무소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가 그의 첫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6주간의 유럽 · 북미 방문길에 올라 캐나다를 거쳐 지난달 20일 첫 기착지 뉴욕에 들른 만델라는 흑인 시장 딘킨스가 마련한 화려한 환영대회에 참석한 다음날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행함으로써 감동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보스톤을 방문한 그는 케네디기념도서관에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 케네디가족과 회식을 한 뒤 그 곳에 유학중인 두 딸과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25일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난 만델라는 남아공 백인 소수정권이 인종차별의 마지막 빗장을 걷어치울 때까지 미국 정부가 드 클레르크 대통령에게 차별 철폐를 계속 요구할 것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드 클레르크 정권에 대한 경제봉쇄를 완화하지 말도록 요구했다. 그는 혹시라도 미국이 경제봉쇄를 완화하거나 해제한다면 이는 “마치 내 등에 비수를 꽂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부시는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그리고 아라파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에 대한 만델라의 우호적 발언과 태도가 反서방적임을 환기시켜 간접적으로 만델라의 노선과 경제봉쇄 문제가 맞물려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의회 양원합동회의에 초청받아 연설한 만델라는 “남아공은 지금 결정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는 지금 승리를 눈앞에 바라보면서 마지막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다. 아무리 기진맥진해도 주저 앉을 수는 없다”고 굳은 결의를 밝혔다.

 인종차별의 두터운 벽은 아직도 엄존해 있고, 이러한 불의가 소멸되려면 인종에 따라 주거를 제한한 법을 비롯한 인종차별을 합법화한 모든 악법이 철폐돼야 하며, 3천명이나 되는 정치범이 석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이 모든 것이 성취되도록 미국 국민이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만델라가 미국 8개도시를 순방하는 목적은 경제봉쇄를 풀어줄 기미가 보이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미국 국민의 압력을 증대시키는 것과 지원금 모금운동을 벌이는 것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10만명을 수용하는 축구장이 초만원이 되기도 했고, 헐리우드의 한 환영만찬회 입장권은 1장에 5만달러에 팔리기도 했는데 이름난 배우와 가수들이 줄을 섰다. 이런 현상은 만델라가 전설적 인물임을 입증한 것이었다. 그의 미국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5천명의 국내외 기자들이 미 국무부에 취재허가를 신청했는데 이는 미 · 소정상회담 취재때 몰려든 기자수와 맞먹는 것이었다.

 1962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제보로 숨어 있던 곳이 알려져 체포된 이래 30년 가까이 영어의 몸이 됐던 그는 “미국에 섭섭한 생각을 갖고 있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중요한 것은 오늘과 내일일 뿐”이라고 받아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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