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자’ 서태지의 또다른 내기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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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 도입, ‘통일.교육’ 주제 담은 3집 충격…음악 완성도는 떨어져



‘서태지의 반란’. 3집 음반을 발표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대중가요계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댄스 그룹에게서는 예측할 수 없었던 메탈 장르의 음악을 발표한 데다, 강한 비트에 ‘통일’과 ‘교육’이라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예민한 문제들을 실었기 때문이다. 서태지가 일으킨 반란의 여파는 한동안 대중가요계를 뒤흔들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13~1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몰려든 3만여 서태지 지지자들은 그같은 예상을 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신곡 발표회 사흘째인 15일 체조경기장. 공연 시작 10분 전 무대 뒷편에 몇몇 중년 부인이 들어서자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 부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어머니들이었다. 농구공이나 축구공에 관중의 눈이 쏠리듯 서태지와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성이 일었다. 강력한 음향과 현란한 춤으로 무대를 채우며 1시간여를 보낸 다음 서태지는 음반의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를 이렇게 소개했다. “옛날에 우리는 만주까지 진출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반으로 갈라져 있어요. 발해를 꿈꾸면서 나라를 통일해보자는 뜻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 말이 끝나자 그들의 뒷편에서 큰 태극기가 올라갔고 객석에서는 작은 태극기가 물결쳤다.

랩과 힙합이라는 댄스 음악으로 지난 2년간 가요계를 평정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번 3집의 색깔을 록으로 입혔다. 록이라는 범주 안에 얼터너티브 록, 트래시 메탈, 펑크, 발라드 같은 다양한 장르를 들고 들어온 것이다. 가요계에서는 댄스 그룹인 이들이 새 음반에 힙합.레게 정도를 담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서태지는 일반적인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자기 음악의 출발점이었던 록으로 돌아왔다.

1, 2집 음반에서도 서태지는 개척자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 땅에서 생소했던 랩 장르의 대중화에 성공한 1집에 이어, 힙합과 메탈을 적절히 배합하고 국악기인 태평소 소리까지 가미한 2집도 93년 6월로서는 앞서가는 것이었다. 3집의 주류를 이루는 헤비 메탈은 그동안 국내에서 많은 그룹이 시도했지만 대중화하기에는 불가능한 장르라고 판가름 났고, 세계적인 음악 조류인 얼터너티브 록도 지난해와 올해 국내에서 몇몇 그룹이 시도했으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음반 제작사들이 아예 상업성이 없는 음악이라고 분류해 제작을 포기했던 장르인 것이다.

좀더 강렬하고 좀더 자극적인 음악을 추구해온 서태지의 변신은 대중을 상대로 한 일종의 도박으로까지 평가된다. 음악 평론가 강헌씨는 “서태지의 3집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주류 대중음악에서 대중음악의 대표자가 지지 기반을 대상으로 내기를 건 최초의 예가 될 것이다”라며 변신 자체를 높이 평가했다. 서태지의 내기는 음악 양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10대를 상대로 하는 대중가수가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노래한 것이다.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을 도입한 서태지의 3집에 대해 가요 평론가 임진모씨는 “90년대 슈퍼스타의 자신만만함이 보인다. 서태지의 3집은 가요사적으로 랩과 힙합에 대한 일종의 장례식인 동시에 록 정신으로의 회귀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했다.

“록 음악 언어와 자기 스타일 결합 실패”
메시지는 없고 리듬만 있다는 1, 2집에 대한 비판을 일거에 해소한 3집은, 그러나 음악의 완성도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음반이 나오기도 전에 백만장 가량이 예약되고, 나오자마자 다른 가수들의 음반 판매를 봉쇄하리만치 상업적인 성공은 이미 확보했지만, 음악 자체와 가사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다. MBC FM 음악 담당 프로듀서인 이우용씨는 “이번 음반에서 슈퍼스타로서의 이름값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서태지의 강점은 빠른 리듬 속에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과, 우리 가사.리듬.멜로디를 잘 배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3집은 표현 방식이 대체로 평범하고, 문화 배경이 다른 미국 사람들의 연주로 녹음한 탓에 가사와 리듬이 서로 부딪쳐 가사 전달이 잘 안되는 결점을 안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통일과 교육 문제라는 노래말의 소재는 주목 받을 만하지만 가사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다. 강 헌씨는 “서태지가 록을 통해 전개하려 한 화두는 수사학적으로 정돈이 되어 있지 않다. 록 음악 언어와 자기 스타일을 결합하는 데는 실패했다”라고 말했다. 스타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통일과 교육이라는 화두가 새로운 상품 가치를 창출하는 한 요소로 도입되었는지도 모른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무대에서만 승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이미지 사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예 사업에서도 탁월한 면모를 보인다. 새 음반을 내기 위해 철저하게 잠적해 궁금증을 넘어 신비감까지 자아내는가 하면, 3집 발표를 대중 매체가 아니라 제한된 공간의 체육관에서 펼쳐 폭발력을 과시했다는 점 등 대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에서도 서태지는 다른 가수에게서는 보기 드문 치밀한 전략을 구사한다. 허락 없이 자기 인형을 제작한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한다든가, 한 회사와 계약을 맺고 ‘사전 검열’을 거쳐 사진 같은 상품을 판매하는 일은 평범한 것에 속한다. 텔레비전의 연예 프로그램이 자기들의 공연 일부를 함부로 방영하지 못하게 할뿐더러, 8월20일 공연 실황을 녹화 방송한 KBS의 특집 프로그램 편집에도 참여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했다. 한국 가수 중 어느 누구가 흉내낼 수도, 흉내내려고도 하지 않는 일에 그들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문화 과학> 주간 이성욱씨(문학 평론가>는 “서태지는 스타 시스템의 핵심적인 요소를 장악하고 있다. 새 노래 <교실 이데아>의 가사는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것이다. 이 가사가 서태지와 합쳐졌다는 데서 묘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2년 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평범하게 사느니 죽음을 달라’는 것이 자기들의 신조라고 밝혔다. 상업적 성공은 보장되었으나, 음악 장르와 가사에 담긴 10대를 향한 그들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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