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국회의원 총사퇴
  • 서명숙·김재태 기자 ()
  • 승인 1990.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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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원들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행했다. 사퇴서 수리 여부와 조기총선을 둘러싼 여야간의 첨예한 대립에 국민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원직 사퇴에 대한 견해를 학자 2인에게 들어본다.

허영 연세대 법대교수 1936년 충남 출생. 서독 뮌헨대 법대(법학박사). 뮌헨대 계약교수.

찬 “조기총선이 오히려 정치안정 가져온다”

● 의원직 사퇴를 찬성하는 이유는?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정상적인 의회정치 상황에서 의원직 사퇴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의정치는 일정한 임기 동안 신임에 바탕을 두고 책임정치를 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민·민주 두 야당의원들의 집단적인 의원직 사퇴는 현재의 우리 의회정치 현실에서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도 차선책은 된다고 생각한다.  거대여당이 ‘다수결 원리’를 ‘다수세력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원리’로 착각하고 ‘소수의 보호원리’를 ‘소수의 배제 원리’로 변질시키는 등 의회정치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채 우리 헌정사상 그 전례가 없는 불법적이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중요법률안을 통과시키는 의회정치의 실종 상태에서 야당이 원내투쟁으로 얻을 것은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이다.

● 현행 국회법에는 의원직 사퇴는 허용하되 국회의 의결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고전적인 대의정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의원직 사퇴 허가를 의회의 의결로 처리케 하는 것은 의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려는 대의정신의 제도적 표현이다.  또 국민소환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대의제도에서는 의원직 사퇴 여부를 선거구의 유권자들이 결정할 수 없다.  의원들은 비록 각각 다른 선거구에서 선출되지만 일단 선출된 다음에는 각자의 선거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동질적인 국민대변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의회 스스로가 의원직 사퇴를 결정하는 것은 이론상 대의제도의 이념과 모순되지 않는다.

●현행 헌법에는 유권자들이 직접 의원들을 심판하는 국민소환제도가 없어 의원이 자진사퇴할 경우에만 유권자들의 재선택이 가능한데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

  국민소환제도는 그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거의 도태된 제도이고, 우리 헌법이 국민소환제도를 배제하는 것도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 헌법이 채택한 대의제도는 순수한 고전적인 형태는 아니고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정치 요소를 가미한 현대적·절충식 대의제도이기 때문에 의원직 사퇴도 가능하고 의원직 사퇴의 경우 유권자들이 재선거의 기회를 갖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 야당이 주장하는 13대 국회해산 및 조기총선거 실시를 찬성하는 이유는?

  우리의 정부형태는 순수한 대통령제가 아니고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절충형이기 때문에 국회의 임기중 해산이 헌법이론적으로 우리 정부형태와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이 분명히 금지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발동과 같은 타율적인 해산이다.  그러나 국회가 스스로 해산 결의를 하고 자율적인 해산을 하는 것까지를 우리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해산결의에 의한 자율적인 해산은 우리 헌법이 채택한 직접민주적인 요소라든지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감안할 때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더욱이 헌법을 해석적으로만 접근하는 19세기의 법실증주의적인 사상이 퇴조하고 헌법의 기능과 목적을 중심으로 헌법을 이해하려는 현대적인 헌법철학의 차원에서 볼 때, 이미 국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국회가 오히려 정치적인 안정과 사회통합에 장애가 된다면 하루속히 해산하고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헌법이 추구하는 정치안정과 사회통합의 목적에도 적합하다.  그에 더하여 지금의 국회내 세력분포는 국민의 뜻과는 무관한 3당합당이라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정당개편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 국회의 정책결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적정당성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민주정치가 요구하는 정책결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의 관점에서도 국회해산과 새 국회 구성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독도 82년 12월 당시 콜 총리 주도로 총선거를 겨냥한 국회해산 결의를 하고 그에 따라 83년 3월 총선거를 실시한 바 있는데, 서독 기본법에는 그러한 형태의 해산 결의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연방헌법재판소가 그 해산 결의를 합헌적이라고 결정한 것은 헌법을 기능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 사퇴정국이 앞으로의 정치흐름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조기총선이 실시되고 국회가 민주적 정당성에 뿌리를 두고 새로 구성될 경우 그것은 정국안정과 사회통합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지난 4·26총선거에서 주권자가 내린 국회 구성에 관한 정치적 결단을 몇사람이 인위적으로 왜곡시킨 3당합당에 대한 정치적 심판을 함으로써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준기 경희대 정경대 교수. 1935년 충북출생. 경희대 정치학과 벨기에 루벵대(정치학박사). 경희대 한국정치연구소장.
반 “야당의 국회해산 요구는 위헌이다”
● 의원직 총사퇴에 반대하는 이유는?

  의원직 사퇴는 의원 스스로가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으로서 국민들의 불안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중요법안을 단 33초만에 날치기 통과하는 150회 임시국회에서 나타난 거대여당의 횡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이번 법안 강행통과에 나선 의원들이 수십년 동안의 야당생활에서 ‘다수에 의한 횡포’를 뼈저리게 느껴온 민주계 의원들이란 점은 통탄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일제히 의원직 총사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총사퇴는 오히려 더 큰 정치불안만 낳고 그 피해자는 전적으로 국민들이 된다.  거대여당의 파행적 의회 운영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야당의 ‘거리투쟁’도 비판받아야 한다.  정치인들은 지금이라도 국민의 좌절감과 분노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고 하루 빨리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 현행 국회법에는 국회의 의결 과정을 거치면 사퇴가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왜 위법이라고 주장하는가?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재적수 3분의 2의 동의를 얻으면 의원직 사퇴가 가능하나 현행 헌법에는 의원직 사퇴규정이 없다.  이렇듯 두 법이 상충할 때는 상위법을 따라야 하는게 원칙이다.  따라서 법적인 문제를 떠나 정치적으로 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다.

● 현행 헌법에는 유권자들이 직접 의원들을 심판하는 국민소환제도가 없어. 의원이 자진사퇴할 경우에만 유권자들의 재선택이 가능하다.  국민소환제에 대한 견해는?

  파행적인 국회운영을 하는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국민소환제는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의원 자질이 없는 국회의원, 부정과 관련된 의원들에 대해 소환할 권리가 국민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국민소환제는 의원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민주적인 국회 운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 야당이 주장하는 13대 국회해산 및 조기총선 실시에 반대하는 근거는?

  현행 헌법에는 국회해산 규정이 없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13대 국회 초기 여당은 여소야대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한때 국회해산을 시도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위헌이라는 강력한 반대여론에 부딪혀 실현하지 못했다.  마찬가지 논리로 여대야소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야당이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것도 위헌이다.  야당의 요구에 의해 무리하게 국회해산이 이뤄질 경우 훗날 여당이 국회해산 선례를 정권적 차원에서 악용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또 조기총선은 헌정중단·정치혼란과 더불어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불과 2년만에 총선이 실시된다면 그에 소요될 막대한 선거자금은 인플레를 야기해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7월16일자 <동아일보>의 여론조사만 보더라도 응답자의 66%가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의원직 총사퇴·조기총선’ 방안보다는 여야 대화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하지 않았는가? 야당이 3당합당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3당통합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지지는 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심판은 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내려줄 일이다.

● 사퇴정국이 앞으로의 정치흐름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세계질서는 민주주의와 자국민의 자유·복지의 증진이라는 도도한 조류 속에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동유럽권의 변화와 사실상의 독일통일이 이미 이루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동북아의 정치질서 개편, 그 중에서도 남북한의 변화이다.  서독에 의해 독일통일이 주도됐듯이, 경제력과 정치체제면에서 우위에 있는 남한이 통일실현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또 국회 차원에서는 통일을 향한 마스터 플랜을 세워서 제시해야 한다.  이렇듯 여야 정치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내부를 정돈하고 국민적 에너지를 조직·정비해야 할 시기에 파행정국으로 치닫는 것은 나라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벌써 북측은 우리 국회의 파행을 트집잡아 국회회담 자체를 연기시키지 않았는가? 게다가 우리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정치혼란은 경제·사회적 혼란을 가중, 민주화를 지연시킬 것이다.

● 그렇다면 사퇴정국의 타결책은?

  국가젹으로 유례없이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대변화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성숙된 민주주의는 ‘거리정치’가 아닌 의회내에서의 대화와 타협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현재의 파행정국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여야가 하루속히 영수회담을 열어 대화와 타협을 시도해야 한다.  그런 다음 13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14대 총선에서 나타날 국민들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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