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개척해야 할 새 시장”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4.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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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금성상사 박수환 사장 인터뷰 / “기업 투자, 정부가 교통정리해야”

핵 문제로 말미암은 긴장과 김일성 사망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교역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지난 7월까지 남북교역 승인 실적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0.5%가 늘었고, 7월중에는 교역 규모가 전원 대비 62.4%나 늘었다. 북한과 교역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91년 이후 남북 교역은 주로 재벌그룹 종합상사들이 주도해 왔다. 럭키금성상사는 (주)대우 삼성물산(주)와 더불어 남북 교역을 주도하는 3대 종합상사의 하나이다. 특히 대기업들이 주력하는 위탁가공 교역에서 럭키금성상사는 계속 수위를 달리고 있다. 남북교역의 현장에 있는 우리 기업인들은 북한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럭키금성상사 朴秀煥(57) 대표이사 사장에게 들어보았다.

럭키금성상사가 대북 교역에 적극 나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북한은 우리가 개척해야 할 새로운 시장입니다. 그룹 내에서 저희 상사는 동유럽권과 같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첨병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시장을 또 하나 개척한다는 측면에서 북한과 교역을 해왔습니다. 아직 공산사회로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통일이 되면 국내 시장이 됩니다. 기업 처지에서는 지금이라도 개척해서 협력을 늘려야 합니다. 북한이 경제 발전을 이루려면 외부에서 투자가 들어가야 합니다. 동족인데 잘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거들어줘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북한과의 협력 강화에 대해 어떤 불가피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순수한 기업인 처지에서 볼 때 북한이 다른 ‘개척 시장’과 특이한 점이 있습니까?
 북한은 오랫동안 소수의 사회주의 국가와만 무역해온 나라입니다. 그것도 대부분 물물교환의 청산결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무역 관행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습니다. 국제 무역에서는 신용이 기본인데, 북한은 국제 무역 관행을 무시하고 자기 편한 대로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과의 장사가 실제 이익이 남는 장사입니까?
 장사는 반드시 이익이 남아야지요. 북한하고는 사실 남는 것도 있고 안남는 것도 있습니다. 원래 사업이라는 것이 이익이 안생기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익을 못내는 기업은 존립할 필요도 없습니다. 북한과의 교역도 기본적으로는 이익이 나야 하겠지요. 그러나 한국 기업 처지에서 ‘북한 비즈니스’를 이윤이 남느냐 안남느냐 하는 차원에서만 생각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남북한 간에 돕고 협력한다는 차원에서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어떤 대북 사업을 추진하고 계십니까?
 우리 그룹의 강점이라면 석유화학이나 에너지ㆍ전자ㆍ전기ㆍ반도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교우위를 북한에 심어 북한을 도울 수 있다고 봅니다.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분야에서도 마음은 있지만 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을 우리 상사가 도와줄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현재 에너지 부족이 가장 심각합니다. 그 때문에 공장가동률이 40% 이하입니다. 특히 수송 부문에 어려움이 많고 전력 부족도 심각합니다. 식량도 크게 부족합니다. 곡물 생산은 해마다 줄어 식량 사정도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부문에서 국내 기업 중 특히 저희가 북한과 협력할 점이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무슨 무슨 사업이다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미ㆍ북한 회담이 잘 진행돼서 남북 관계가 풀리면 북한이 어려움을 타개토록 지원하고 협력하자는 논의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 때 적극 참여하겠다는 게 저희 입장입니다.

북한의 나진ㆍ선봉 경제특구 진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의 새로운 체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어쨌든 북한 주민들에게 ‘이제는 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개방하고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특구를 만들어 외국 자본을 유치하겠다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방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나진ㆍ선봉 특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외국 자본 유치가 안됩니다.

북한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선 행정으로나 제도로 투자에 대한 보장을 해주고 남북한 간에 확실한 투자보장 조약이 있어야 합니다. 투자에 대한 확실한 보장없이 한국이나 외국 기업이 투자하지 않습니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투자하는 기업이 북한과 그 시설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냥 투자만 하라는 식인데, 투자를 기부하듯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럭키금성상사의 경험으로 볼 때 북한과의 교역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어려운 점은, 북한에 자유로이 들어가서 북한 실정을 우리 스스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하는 데 폭을 조금 넓혀 주었으면 하는 게 저희 바람입니다.

현재 미ㆍ북한 회담이 진행되면서 우리 정부가 다소 배제되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이 배제된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만이 계속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이 돈을 내는 것이라면 경수로 건설도 한국이 주도하고 한국 기업이 참여해야 합니다. 북한과 미국만이 대화하는 것은 남북한 간의 경제 협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북한 정치 협상이 빨리 재개되어야 합니다. 미국하고 상대한다고 한국은 상대를 안하려는 자세가 북한에 있습니다. 이 자세를 버리게 해야 합니다.

북한의 개방이 동북아 경제권의 물류 흐름에 미칠 변화는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의 개방이 가속화한다면 동북아 경제권이 앞으로 급격히 변화할 것으로 봅니다. 현재도 이 지역의 연평균 교역 증가율은 10%가 넘습니다. 앞으로 중국ㆍ러시아ㆍ북한의 자원이나 노동력과 한국ㆍ일본의 자본과 경영이 결합한다면 이 지역의 경제가 크게 발전할 것으로 믿습니다. 동북아 지역의 물류 흐름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아울러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많이 향상될 것입니다. 북한에 여러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준비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되겠지요.

우리 대기업들은 북한이 언젠가는 내수 시장이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대북 전략을 짜는 것 같습니다. 그 점 때문에 과당 경쟁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남북 경협에서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표를 국가 차원에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과의 경협은 한반도의 공동번영을 위해 추진되어야 합니다. 지금 북한과 교역이 증대되고 정치적 이야기가 오가니까, 한국 기업들이 서로 들어가려고 난리입니다. 중동 건설 붐이 일었을 때도 우리끼리 덤핑하고 제살깎기 경쟁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진출에서도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난장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정부가 교통정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에너지 부문은 누구다 하는 식으로 정부차원에서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너무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남북 경협도 어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추진해서는 안됩니다. 민족의 번영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북 경협은 반드시 정부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혹은 남북의 경제 통합에 대한 국가 차원의 준비가 없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는 전문가가 아닌 제 처지에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대비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남북한은 오랫동안 다른 체제를 유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모든 면에서 북한과 대한민국은 의식이나 사고방식이 너무나 다릅니다.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큰 과제입니다. 앞으로 통일이 된다해도 흡수 통일이 될지 점진적 통일이 될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북한 통합을 위해 각 부문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는 생각해야 합니다. 쿠바 사람들이 미국으로 도망치는 식으로 북한으로 난민들이 한국으로 넘어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南裕喆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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