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색문화, 한국서 활갯짓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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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제도·권위주의 등 식민잔재 그대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길거리에서 보이던 한글만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일본과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적어도 외형상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말입니다.” 재일교포 2세인 姜信子(29·자유기고가)씨는 비교적 유창한 한국말로 이렇게 ‘한국속의 일본’을 표현했다. 강씨는 일본인들의 악덕으로 유명한 ‘혼네 다데마에’(본심과는 달리 때와 장소에 따라 태도를 바꾼다는 뜻)까지 한국인들에게 전염된 것이 아니냐며 웃었다.

 굳이 강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사회 여기저기에서 쉽게 ‘일본색’과 ‘일본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텔레비젼 만화영화를 박수치며 보는 어린이들, 가나를 읽지도 못하면서 일본 연예잡지를 열심히 사는 청소년들, 일본 패션 잡지에 실린 옷차림을 흉내내고 일본노래가 흘러나오는 카페를 단골로 드나드는 대학생들, 퇴근 후 가라오케·비디오오케 술집에 들러 노래를 불러제끼는 샐러리맨들, 일제 전자제품과 화장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주부들…. 그밖에도 전자오락실을 휩쓸고 있는 일제 프로그램, 파라볼라 안테나 등 근래에는 대중·소비문화에서의 '일본 범람‘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말 남용이 더 심각

 또 불식되지 않은 채 ‘면면히’이어져 내려오는 일본유산도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교육제도다. 연세대 金仁會교수는 최근 어느 기고문에서 “학교교육만을 중시하는 제도교육 절대주의, 정권에 예속된 제도교육, 과밀교육과 집단적 획일주의, 중앙집권적인 교육행정체제, 사범교육, 교육법 및 교과서제도 등은 모두 일제식민지 교육체제의 잔재”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언론·출판계에 뿌리박고 있는 일본 잔재도 만만치 않다. ‘교정스리’등 전문용어의 태반이 일본말인 것은 물론, 제목뽑기·편집방식·차례구성 등 제작의 거의 전과정에서 일본의 것을 답습하고 있다. 요즘 한창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포츠신문의 각종 폭력·외설만화도 일본 저질만화를 모태로 한 새로운 유행이다. 방송에서는 뉴스·드라마·쇼·퀴즈게임 등 각 방면에서 일본 방송을 모방하고 있으며 몇몇 상품광고의 경우는 배경과 모델만 바꿔 일본 것을 복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또 우리 예술 일부에 반영된 일본문화 특유의 말초적 감각주의와 광적인 열정주의, 일본에서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체제와 맞물려 유지되고 있는 권위주의, 군대식 사고 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일본말이 남용되고 있는 우리의 언어생활이다. 마호병·소데나시 등 일상용어, 에어콘·리모콘 등 일제 외래어, 택시 할증료·아파트 단지 등 일본식 조어법에 의한 한자어 등 그야말로 오염 정도가 극심하다. 金烈圭교수(서강대·국문학)는 “언어는 무의식 속에 근원적인 사고방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언어체계의 일본화는 그 어떤 것보다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일본의 흔적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수는 총 3천여명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회사원 등 화이트칼라이며 업무외의 일로 한국인과 공식적인 교류를 갖는 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우리 사회에 발휘하는 영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다음 일본문화의 직접적인 유입통로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일본인 관광객 및 방문단이다. 일본인 입국자는 해마다 증가, 89년의 경우 약 1백38만명(교통부·한국관광공사 자료)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외화획득의 소득은 있었으나 일본인들은 섹스관광 등으로 서비스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安鍾允교수(한양대·관광학)는 “ 그 책임은 일본인이 질 게 아니라 국가간 상거래의 원동력인 관광산업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가 져야 한다”고 꼬집는다.

 

“증오·열등감 뒤섞인 결과”

 결국 ‘한국내 일본의 범람’은 우리 민족이 일본에 대해 갖는 복잡한 감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김열규 교수의 분석이다. 즉 이는 과거 ‘쪽발이’라고 일본인을 깔보던 심리, 임진왜란 이후 누적된 증오심과 적개심.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일본에 느끼는 열등감과 선망 등이 뒤섞인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재일교포 2세 강신자씨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사람들은 ‘일본의 문화침략’에 대해 한결같이 우려를 표명했지만 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일종의 피해의식이라 할까요. 많이들 걱정하는 일본식 옷차림의 청소년들과도 만나 대화해봤지만 그들은 모습만 일본 청소년과 같았을 뿐 생각이나 의식은 전혀 달랐어요.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소화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한국이 진정으로 극일하고 발전하는 길은 피해의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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