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와 ‘보상의 원칙’
  • 김성동 (중앙대 교수.산업경제학) ()
  • 승인 199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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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경제학의 시조인 알프레드 마셜은 경제학이 인류를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연구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제학이 피와 살을 가진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의 학문이어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스승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뛰어넘는 경제학 체계를 세운 것이다. 기업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우해 경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가 조화롭게 발전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예정조화론은 30년대 초의 세계적인 대공황을 분수령으로 효력을 잃었다.

 최근 ‘잘 나가던’ 문민 정부 치세에서 잇달아 터진 일련의 패륜적 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는 사회제도에 문제가 있느니 없느니로 그 책임과 대책이 갈리는 형편이다. 대체로 가진 자, 특히 아주 많이 가진 자의 자숙과 나눔 정신을 강조하기 보다는 인륜적?도덕적 측면에서 패륜성을 부각해 저신 이상자들이 개인문제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런 현상 호도적인 시각이 언론 매체의 주류를 형성한다.

계층간 격차는 물신주의 결정체
 전자의 주장을 따를 경우 필연 경제 정의 문제가 대두하고 사회제도와 경제 체제의 개혁이 불가피해진다. 후자의 논리는 기득권과 기존 체제 고수를 전제로 도덕적 교육론을 강조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여당 대표의 민자당원 대전 교육 훈화가 대표적인 에이다. “우리 사회가 뭐가 잘못 됐느냐. 백만 장애인들도 꿋꿋이 살고 있지 않느냐‘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태어날 때부터 패륜아였으므로 이 문제는 개별적인 사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신고전학파 주류경제학이 패권을 잡게 되자 자본주의는 ‘돈이 곧 신’으로 떠받들리는 물신주의가 팽배했다. 이 과정에서 마셜의 경제적 기사도 정신이나, 막스 베버의 금욕적 자본주의 정신은 쇠퇴했다. 생산 경제의 왕성한 기업가 정신보다는 소비 경제의 탐욕스런 돈(富)의 위력 행사가 특징이 되는 이른바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가 판을 치게 된 것이다.

 천민자본주의는 물신사상이 지배하는 체제를 방패로 삼아 기득권과 개인 향락주의가 발호하는 온상이었다. 그로 인해 초기 자본주의 단계의 서구 사회는 그 죄값을 톡톡히 치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등장과, 한때 지구의 반이 공산화에 휩쓸리는 위기도 있었다. 각종 사회 문제가 터져나오 구미 사회의 몰락마저 예견된 그 위기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물신주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빈익빈 부익부로 압축되는 계층간?산업간?지역간 격차 문제는 물신성(物神性)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속 성장했으나 개혁엔 실패
 이같은 체제 위기 의식을 반영해 제시된 처방 중 하나가 칼도스와 힉스의 ‘보상의 원칙(The Principle of Compensation)'이다. 모든 경제 활동과 정책 변화 과정에서 이득을 본 쪽이 해를 입은 쪽에 보상하는 제도가 강구되어야 한다는 주자이다. 이 원칙은 그후 구미 사회의 경제철학 및 정책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가지지 못한 자, 적게 가진 자를 염두에 둔 재정?조세 정책의 보완, 확고부동한 토지 및 부동산 대책, 공익성 개념의 농축산업 보호 육성, 지나칠 정도의 사회보장 및 복지정책, 그리고 인간 중시 환경대책 등 각종 사회개발 정책을 종래의 경제개발 정책에 끊임없이 주입하여 수정자본주의 체제의 양대 수레바퀴를 형성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구미 자본주의 사회는 이제까지 인류가 개발한 가장 훌륭한 체제라고 칭송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나름대로 고속?압축 성장에 성공했으나, 이후의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층과 아주 많이 가진 계층에게 사회가 온통 장악되다보니 김영삼 정부의 개혁은 한계를 보인다. 실제 중요한 개혁 조처의 고비마다 제동이 걸리고 있다. 총체적으로 한국 사회는 부패와 나태, 물신주의 팽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서나 보던 천민적 구호와 물신주의가 도리어 자유 시장 경제 체제의 본질마저 갉아먹고 있다. 정?관계, 종교계, 학계, 언론계의 기본이 물신사상의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층간?지역간 격차와 산업간 불균형은 경쟁력 제고라는 구호 아래 오히려 합리화되는 지경이다. 개혁이 뒷걸음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이 빈곤과 소외계층 문제를 국가에 떠넘기고 부의 향락에 도취해 있다.

 제2, 제3의 지존파 사건을 막으려면 우리는 사회 체질과 경제 제도를 인간 중심 자본주의 체제로 발전시키는 일대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것은 비단 김영삼 정부의 과제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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