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의 무관심에 떠내려간 공원묘지
  • 김종환 사회부차장 ()
  • 승인 1990.10.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도 한계 노출 … ‘물난리’ 때 경기지역 1천여기 유실

일산 한강둑을 끊어 큰 물난리를 일으켰던 집중호우는 경기도 용인군과 광주군 일대 공원묘지에 또다른 비극의 장을 만들어놓았다. 온다던 태풍이 비켜지나가고 햇빛이 나온 9월18일, 산사태로 많은 묘가 씻겨 내려가거나 흙더미에 파묻혀 있는 광경은 참혹한 것이었다.

 가장 큰 산사태를 만났던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삼성공원묘지는 무자비하게 덮쳐내린 갈색 흔적으로 사람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묘지 입구 개울가에 나뒹굴고 있는 널조각과 비석들은 그래도 보기에 나은 편이었다. 평소 장례가 있는 날이면 ‘갈비탕’ 손님으로 북적대던 식당 밖 개울가엔 뻘을 뒤집어쓴 의자 1백여개가 뒹굴고 있었고 뒤편 널찍한 평지엔 불도저 한대가 뻘 속에 반쯤 잠겨 있었다. 산꼭대기 부근에서 묘역확장 작업을 하다 기슭까지 3백m 이상 떠내려와 쳐박혔으니 무덤인들 온전할 리 없었다.

 

“어머니 묘소가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다”

 석축째 떠밀려 흙더미 돌더미에 삐쭉삐쭉 고개를 내민 관들은 다행한 편에 속했다. 뻘 속에 파묻혔거나 아예 빈 관만 남은 것이나 관째 떠내려가버린 것이 문제였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나와 유실된 부모형제의 주검이나마 찾고자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의 원망은 하늘로 향하기보다는 온통 관리사무소로 쏟아지고 있었다.

 사무소에 혼자 남은 백발이 성성한 여자 이사장 金鎭貞씨를 앉혀놓고 따지는 10여명의 묘주들 옆에는 그들이 집어던진 의자와 관리 비대장 등 서류가 흩어져 뒹굴었다. 공원묘지 협회의 방침이 정해지는 대로 보상방법을 정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이사장도 산이 무너진 현실 앞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서울 사당동에서 왔다는 李 儀(50)씨는 “해마다 큰 비만 오면 위태로웠다. 몇년 전 대홍수 때도 부모님 묘소 위쪽이 무너진 적이 있어 관리인에게 손좀 봐달라고 몇차례나 부탁했지만 차일피일 미뤄 결국 우리 형제가 와서 고쳤다”라며 묘원측의 관리태만을 따졌다.

 이씨의 경우는 산소 일부만 무너지는 데 그쳐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천시 주안동에 사는 申南淳(37)씨는 “어머님 묘소가 떠내려가 흔적도 못찾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 관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 하고 안타까워했다.

 삼성공원이 골짜기 하나가 무너진 상태에서 속수무책인 것과는 달리 거기서 수원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용인군 모현면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는 이미 체계적인 수습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입구 부근 도로변과 개울가에서는 포크레인이 동원되어 흙을 걷어내고 관을 발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활발한 수습 노력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난 피해는 삼성공원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묘역의 중심부에 우뚝 솟은 십자가 동산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검은 관 하나가 나와 있었다. 마스크 쓴 서너명의 인부를 태우고 고갯길을 오르는 경운기에 실린 새까만 나무상자는 관이었다. 제 자리를 이탈한 것을 신원 식별을 위해 가매장 자리로 옮기는 중이었다.

 십자가동산 너머 왼쪽 기슭 아래로는 골이 패인 골짜기 주변에 이리저리 흩어진 관이며 널조각들 사이로 하얀 비닐에 덮힌 관 잃은 주검들이 보였다. 이곳은 원래 계곡이었으나 도로에서 아래쪽으로 직경 60cm 정도의 주름진 고무관 2개를 나란히 묻어 배수로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묘지를 조성한 것이 화근이었다. 묘의 안위를 확인하러 모여든 연고자들은 이틀간 계속 쏟아진 장대비에 도로 위쪽 계곡으로 쇄도하는 물을 감당못한 배수관이 터지면서 묘역이 내려앉은 것으로 보았다.

 이 미증유의 묘지 집단유실사태의 피해는 매우 크다. 이날까지 경기도의 보고된 내용만 보아도 피해지역과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삼성공원 3백5기, 천주교 용인공원묘지 3백3기 등 도내 5개 시ㆍ군 7개 공원묘지에서 모두 9백기가 유실되었다는 것이다. 공설 공원묘지 피해는 안양시 청계동 40기와 양평읍 8기 등 두 곳에서 모두 49기가 유실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날 <경인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들 외에 4개 공원묘지에서 모두 1백39기가 유실되고 70기가 훼손된 것으로 나타나 유실된 묘만 무려 1천기를 넘어서고 있다. 복구작업이 진행되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땅값과 관리비를 꼬박꼬박 받는 공원묘지의 피해가 극심한 것은 영리 위주의 묘역조성과 관리부실의 운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내 실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공원묘지가 공동묘지로 된 지 이미 오래다. 단지 관리사무소가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라고 말했다.

 공원묘지 설립 허가는 골프장과 마찬가지로 미리 청와대에서 내인가를 받고 집행하는 것이 유신 이후 5공화국 시절까지의 관행었다는 것이다. 허가 자체가 큰 이권이었던 만큼 퇴역장성이나 전직고관이 경사가 급해 달리 이용가치가 없는 야산을 싸게 사서 허가를 받고 10억원 정도에 운영권을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업계 주변의 이야기다. 몇차례 손을 거치다 보면 관리는 소홀해지고 값만 턱없이 올라 좁은 면적에 보다 많은 묘를 쓰기위해 도로나 조경에 사용해야 할 땅까지 잡아먹기 마련이었다. 공원묘지 수가 늘어나면서 유치경쟁이 치열해지자 알선해준 장의사에게 묘지 사용료 30%까지를 사례금으로 집어주는 관례마저 생겼다. 이러한 부조리로 인해 결국 무리하게 묘역을 조성, 묘주만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경기도 당국자가 밝힌 공원묘지 시설규정에 따르면 묘지로 쓸 수 있는 땅은 총허가면적의 40%에 불과하다. 나머지 60%는 녹지 40%, 도로부지 9%, 주차장 3%, 관리시설 3%, 공원시설 3%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정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에 83년 시행 이후 신설된 공원묘지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산의 경사도에 대한 규정은 관대하다. 산 전체의 경사가 아무리 급해도 묘지 경사도가 36도 이상만 넘지 않으면 허가가 나온다. 허가조건이 유독 경사도에 대해 후한 것은 공원묘지제도를 도입할 당시 못쓰는 땅에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국민의식 때문에 정책시행에 큰 어려움

 풍수지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 崔昌祚교수(지리학)는 이번에 산사태를 만난 공원묘지들 가운데 일부는 큰 비를 맞지 않았어도 이미 훼손상태에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계곡이 아니라도 처음부터 지하수맥 가까운데로 자리잡았다면 사태가 안났어도 관이 서서이 떠내려갔을 것이다. 지하수맥에 의해 시신이 떠내려가는 곳을 풍수학에선 逃屍?이라고 부른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현상이 잣다. 겉보기에 아무 탈이 없는 묘일지라도 주변만 쭉 훑어보면 몇가지 현상으로 알 수 있다.”

 묻으면 탈이 나는 장소를 무리하게 묘소로 쓰는 이유는 땅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번 공원묘지 집단유실 사태는 우리나라의 묘지제도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음을 경고하는 하늘의 심판으로도 볼 수 있다. 지난 4월 보건사회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89년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의 분묘수는 1천8백41만기로 전국토면적 9만9천1백68㎢의 0.9%인 9백29.88㎢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연평균 21만기의 분묘가 새로 생겨 서울 여의도 면적(8㎢)의 1.3배인 10.4㎢를 잠식해간다.

 정부당국에서는 묘지가 점유하는 땅을 줄이기 위해 묘지의 집단화와 공원화, 화장률 제고, 묘지면적의 점진적 축소 유도, 장묘에 대한 국민의 의식구조와 관행 개선을 정책방향으로 삼고 있으나 그 시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묘지를 집단화하고 공원화할 경우 토사의 유출로 인해 인근 하천의 바닥이 높아져 홍수를 유발할 위험이 생긴다. 화장률은 유교 관념에 물든 국민의식이 매장을 선호하기 때문에 높이기 힘들다

 보사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에 대한 화장자의 비율은 89년에 19.2%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1.8%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연간 화장건수는 83년 1만2천9백69구에서 89년 1만1천3백16구로 6년 사이에 12.7%가 낮아진 반면 매장건수는 83년 1천6백41구에서 4천3백62구로 무려 1백65.8%나 증가했다.

 최창조교수는 “풍수에선 화장된 유골도 매장하면 마찬가지로 취급한다. 고려시대 중엽까지 화장이 성행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잘 안 알려져 국민들이 화장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화장률 제고를 위해 어린이 교육부터 실시하되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묘지면적의 점진적 축소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현재 9평까지 허용하고 있는 것을 2~3평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법정면적을 초과한 호화분묘도 문제다. 돈있는 사람들이 사후에 대비해 대규모의 가묘를 조성하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까지 비록 공원묘지나마 널찍하게 자리잡자는 과시욕이 생겨나는 것이다. 말썽이 날 때마다 단속을 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묘지행정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한 전문가는 “자기 산에 자기 묘를 쓰는데 장례행렬을 가로막을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고발할 경우 오히려 양성화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묘를 쓴 후 3년 안에 검찰에 고발하면 벌금 2백만원 정도만 물면 되므로 결국 양성화하는 것이다. 또 민법상 20년 동안 무단점유 사용하면 연고권이 발생하는데 그때가서는 파헤칠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현실은 죽은자들마저도 한 자리에서 편안하게 쉴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비록 큰비이긴 했지만 무덤마저 떠내려가는 현실은 결코 예사로울 수가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