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시대’의 易術 열기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2.02.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층 구분없이 확산… “생활철학” 주장에 “혹세무민” 반론

占은 동서남북(口)에 깃대(卜)를 세워 앞날을 예견한다는 뜻을 가진 상형문자이다. 전망이나 비전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말은, 그러나 易과 더불어 그 본디의 뜻과 멀어져 있다. 서구의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물론, 사람의 운명을 감정하는 易術人들도 점이란 용어를 기피한다. 점은 아직 공식문화의 대열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친다’ ‘역학한다’ ‘전망한다’ 사이의 간격은 크다.

하지만 현실은 이중적이어서 “낮에는 전망, 밤에는 점”의 형국이다. 과학적 사고에 바탕한 전망을 목말라하면서도, 첨단과학기술 문명에 탐닉하면서도 그 뒤편에서는 易學에 귀를 기울인다. 四柱풀이로 대표되는 ‘밤의 논리’가 합리성을 척도하는 ‘낮의 논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은 것이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한국역술인협회(회장 지청오)에 따르면 무당 등 세칭 ‘점쟁이’들을 제외한 역술인의 수는 10만에 가깝다. 한 역술인이 하루에 5명의 운명을 감정한다 할 때 수십만명이 매일 생년월일과 태어난 時를 들고 역술인 앞에 앉아 운세를 듣는 셈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입춘 직후이거나 입시철이면 잘 알려진 역술인의 집은 문전서이시다. 선거철도 큰 대목이다.

사주와 관상으로 대표되는 역학이 얼마나 우리 일상과 밀접해 있는가를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용하다”는 역술인을 찾아다니며 당락을 묻는다. 대통령선거 무렵이면 “누구누구는 임금상이 아니야”라는 ‘봉건적인 평가’가 제법 설득력있게 시정을 돌아다닌다. 최근에는 국회의원 선거일을 吉日 중에서 택하기로 했다는 신문보도도 나왔다. 기업가들도 역학에 기댄다. 회사 이름을 역술인들에게 부탁하는가 하면, 신입사원 면접장에 관상가를 앉히기도 한다. 지배집단만 역학과 손을 잡는 게 아니다. 사주보기를 즐겨하는 이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의출생에서 입시 결혼 취업 이사에 이르기까지 삶의 중요한 대목들에서 사주풀이가 일러주는 길을 택한다.

사주로 대표되는 역학이 우리 사회 피라미드의 모든 계층과 삼투하는 한편으로 최근 학계와 젊은이들은 역학의 ‘아버지’인 주역을 ‘대안의 학문’으로 삼고, 주역에서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확인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고 있다(34쪽 기사 참조).

근자의 동양철학 붐은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하지만 우선은 서구 과학기술 문명의 폐해에 대한 직시이며 그 반작용으로 보인다. 일찍이 C. G. 융이나 카프라, 엘빈 토플러 등 우리에게 낯익은 서구의 학자들이 서양철학(과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양 세계관과의 만남을 시도해왔다. 영어권에서 선불교나 老莊, 인도신비주의가 역수입되는 현상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87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주역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곽신환 교수(숭실대 · 철학)는 주역에대한 학문적 관심과 역학의 대중적 확신을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징후로 해석한다.

운명감정의 대명사 ‘사주명리학’
흔히 점으로 뭉뚱그려져 불리는 운명감정의 종류는 20여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33족 기사 참조). 운명감정법은 통상 둘로 대별되는 데 그 하나가 四柱(생년월일시)를 풀어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내다보는 四柱命理學이고 다른 하나가 점이다. 사주명리학은 周易에서 원리를 추출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해석해내는 것으로 흔히 역학 역리학 추명학 역술 등으로 통용된다. 이에 비해 점(점쟁이)은 神을 불러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초능력(자)을 말한다. 대개의 역술인들은 신과 교통하는 ‘점쟁이’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점에는 어떤 법칙이 없으며 수련과정도 없다. 역술인들이 사주와 점을 명확하게 구분지으면서 점을 기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周易은 한자문화의 발원이면서 동시에 귀결이라고 말해진다. 곽신환 교수는 “주역은 동양 한문문화권에서 가장 오랫동안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왓다”고 말한다. 주역은 문자이전 시대인 중국 주나라 때 태호복희씨(동이족, 즉 우리 민족이란 주장이 있다)에 의해 선천팔괘와 64괘가 만들어졌고 문왕과 주공 그리고 공자를 거쳐 주자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공자 · 맹자(유교)는 물론 노자 · 장자(도교)도 주역을 경전으로 삼았고, 조선조의 지배이념인 성리학도 주역에 뿌리를 두었다. 신흥 민족종교도 주역을 응용해 교리를 세웠다고 알려지고 있다.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한 젊은 역술인 김준구씨(지난해 《알기 쉬운 역의 원리》를 펴냈다)는 “주역은 변화 음양 四象 三才 팔괘 六爻 64괘 등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마디로 우주만물의 변화를 체계화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주역이 대자연의 변화에 관한 철학이라면 사주명리학은 주역의 기본 원리인 五行을 인간의 운명에 적용시킨 과학”이라고 말한다. 역학은 주역의 하위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주역과 역학은 그간 공식적인 연구대상에서 제외돼온 탓에 주역 역학 점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쓰여져왓다.

<한국이로> 문화센터에서 相學(관상학)을 강의하는 신기원씨(최근 《관상학》을 펴냈다)도 “사주풀이를 해놓고 주역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한다. 거의 모든 역술인들이 역사학의 아버지는 주역이라고 규정하지만 李泫承씨(韓一易理學會 회장)같은 이는 “주역이 역학에서 나왔다”는 정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다.

사주를 보는 법 자체는 간단하다. 사주의 ‘각 기둥’을 이루는 생년 · 월 · 일 · 시는 각기 조상 배우자 본인 자식, 또는 해 달 지구 빛의 각도를 나타낸다. 이 연월일시에는 각각 저마다의 60갑자가 들어 있는데, 책력(만세력)에서 네 개의 시간에 해당하는 갑자 8자를 뽑아낸다. 흔히 ‘사주팔자’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 8자를 바탕으로 10년마다 변하는 대운과 1년마다 바뀌는 세운의 조화를 통해 운명을 해석해내는 것이다. 40년째 사주를 풀고 있는 서울 청구동의 임명학씨는 “사주가 推命學으로 불리는 것처럼 추리력과 응용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같은 법칙은 어떤 원리에 바탕하는 것일까. 김준구씨는 “줄발점(태어난 시간)을 알면 도착점(죽는 시간)을 알 수 있다는 태극의 원리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한사람이 태어난 계절과 당시의 자연적 조건을 보면 그 사람의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주 속에는 5행(수 금 화 목 토)이 들어 있는데 5행은 각기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다. 좋은 사주란 오행이 적절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 오행의 조합과 해석을 통해 1년 신수 10년 대운 · 평생사주 등의 운세뿐 아니라 성격 · 재능 · 배우자 · 건강 · 좋은 방향 · 좋은 날 · 취업 · 이사 등 삶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풀어내는 것이다.

역학에 관한 시비의 핵심은 결국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이다. 또 다른 문제는 왜 같은 사주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오느냐는 것이고 또한 같은 사주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서로 다르게 살아가느냐 하는 의구심도 있다. 우연한 기회에 사주를 보았다는 회사원 김모씨(29)는 “틀리는 것은 확실하게 틀리고 맞는 것은 애매하다”고 말하면서 사주풀이에 사용되는 수사학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올해 변동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 변동수가 직장을 옮기는 것인지, 이사를 하는 것인지, 여행하는 것인지 막연하다는 것이다.

역학은 불안심리를 먹고 자라는 나무
같은 사주가 보는 사람마다 다른 연유는 역술인마다 해석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술인들은 연구와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의 해석법을 터득하고 있다. 그리고 역술인들은 사주 하나만으로 운명을 풀어내지 않는다. 사주를 기본으로 관상이나 성명학 등을 병용한다.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서로 다르게 살아가는 이유는 부모와 조상 등의 영향이라고 역술인들은 설명한다(31쪽 박재완옹 인터뷰 참조).

사주에 관한 일반의 시각은 전혀 관심이 없는 축과 ‘상담’의 차원으로 사주를 대하는 부류, 그리고 전적으로 사주풀이에 의존하는 이들로 삼분된다. 괴로운 일이 생기면 역술인을 찾는다는 한 전문직 여성(33)은 “나 자신과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사주를 본다”면서 “한번 가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 때만다 찾게 된다”고 말한다.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역술인을 ‘고문’으로 삼고 있다. 그 사장은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그날의 일진을 전해 듣는 한편으로, 계약과 같은 중대사가 생기면 반드시 의논해 역술인의 말에 따른다. “올해는 무슨 일을 해도 다 성공한다”는 역술인의 말을 듣고 사업을 벌이는 사업가도 있다. 운명론과는 상극인 운동권 ‘투사’출신 중에도 사주를 보는 사람이 있으며, 기독교인 중에도 역술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같은 ‘역학 현상’은 당연히 사회적 불안심리와 함수관계가 있다. 혼돈스런 사회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만든다. 개인들은 또한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채 돈과 욕망에 휩쓸고 다니는 천민자본주의에 매몰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쉽게 ‘부빌 언덕’은 사주 혹은 점이다. 역학 비판론ㄷ자들은 “역학은 대중들의 불안심리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역학 현상에는 역사적인 배경도 없지 않다. 강신표 교수(한양대 · 문화인류학)는 “예전부터 우리에겐 점을 치는 문화적 전통이 있어왔다”고 말한다. 자연의 순리에 적응해야 한다는 의식은, 자연의 변화와 자연이 알려주는 ‘변고의 조짐’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또하나 “집단의 조화를 위해 어른에게 자문을 구하는 문화적 전통과, 농사를 점쳐야 하는 농경사회의 습속이 이어진 것”이라면서 “오늘날 역학의 기능은 카운셀링”이라고 말한다.

역술인들도 역학의 현실적 기능은 카운셀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현구씨는 자신의 사무실을 ‘생활상담 단원의 집’이라고 지었으며, 주역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는 ‘천기누설 구통도가’에서는 사주를 ‘천기누설 카운셀링’이라고 부른다. 이 카운셀링을 통해 역술인들이 ‘고객’에게 강조하는 것은 “자기 분수와 운명을 알아서 허욕부리지 말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사주란 오행의 넘치는 것과 모자라는 것의 조화를 추구하는 중용의 道”라고 鄭慈善華씨(60)는 말한다. 서울 상월곡동에서 24년째 사주를 봐오고 있는 정씨는 “유혹이 많지만 역학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김준구씨는 “역학은 행복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고 천명에 순응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역학은 없고 역술인만 있다”
그러나 “역학하는 사람들 열 가운데 일곱은 사이비”라는 한 역술인의 ‘자아비판’처럼 역학, 역술인의 폐해도 적지 않다. 먼저 역학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는 것이다. 학원이나 문화센터에서 몇달 배워서 거리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소양과 안목 없이 기계적으로 타인의 운명을 풀이하다가는 혹세무민하기 십상이다.

20년 이상 경력의 역술인들은 “사주가 좋지 않다며 공포감을 자아내고, 부적을 사라고 하는 경우는 대개 사이비”라고 비난한다. 또한 “자칭 도사연하는 부류들도 믿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煞)을 없애기 위해 부적을 강요하는 경우는 그 피해가 개인적이지만 한 집단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다. 80년대 중반 혜성처럼 나타났던 C식품회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 회사는 회사 이름을 한 역술인에게 부탁앴는데 그 이름이 당시 정치적 기류와 묘하게 맞물리면서 그 회사 제품이 전혀 판매되지 않았다. 회사 이름과 관련된 유언비어 때문에 그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역학은 선거의 ‘대중심리전’에 이용되기도 한다. 정치권과 역학과의 관계에 정통한 정치인 김모씨는 “역대 정치지도자들은 거의 모두 역술인과 교륲가 있었다”고 말한다. 선거전에서 한 후보는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당선되는 사주’를 만들어 상대편 후보에게 흘리는 수를 쓰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사주를 알아내 그 약점을 치고 들어가기고 하며, 취약지역의 역술인을 매수해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상대방의 대운이 끝났음을 넌지시 일러주게 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대부분인 고객들은 이 역술인의 말을 퍼뜨리기 마련이다.

사주를 보러가는 사람들이 사주에 대한 기대심리에도 잘못이 있다. 역술인들은 “사주는 참고사항일 분인데 다짜고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돈은 달라는 대로 다 줄테니 해결해달라”며 역술인에게 애원했다가 역술인의 ‘예언’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역술인을 고소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역학계 안팎의 장애물들이 치워진다고 해도 문제들은 남는다. 사주명리학과 한국표준시의 ‘어긋남’이 그 하나이고, 주역과 사주의 ‘음양’은 서로 다르다는 견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합리적이라는 일반의 비판적 시각이 그것이다.

사주에서는 생년월일시가 잘못되면 모두가 어긋나는 셈이다. 그런데 박재완옹이 일찍이 지적했듯이 우리가 현재 쓰는 시간은 우리나라의 표준시가 아니고 동경표준시이다. 동경표준시는 우리보다 30분이 빠른 것이다. 하루를 12단위로 구분하는 역학에서 30분은 태어난 시와 날짜까지 뒤바뀔 수 있는, 적지 않은 변수이다. 우리 역학계에서는 이 표준시 차이를 대수롭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사주를 무시하는 것은 지적 오만이다”
사주가 주역에서 원리를 가져왔다지만 그 적용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주역학회 회원인 宋恒龍 교수(성균관대 · 유학)는 “주역이 점과 관련은 있지만 일반 역술인들이 변형, 실용화한 사주는 학계와 거리가 멀다”면서 “자연의 변화에 대한 기호논리학인 주역의 본래 의미를 사주는 잘못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역은 변화의 학문인데 사주는 변화를 부정하는 획일주의라는 것이다.

송교수는 또한 자연에서의 음양은 그 자체로 자연인데 비해, 사주는 인간의 길흉화복에만 중점을 두어 양만을 지향한다고 진단한다. 이는 “실재(자연)와 윤리 혹은 가치(인간)와의 차이를 간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송교수는 “사주를 무시하는 것은 지적 오만이다. 사주를 많이 본다는 것은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증거이며, 인간이 모르는 것은 너무나 많다”고 덧붙였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박이문 교수(포항공대)는 “주역도 사건을 에측하는 틀이란 면에서는 과학의 테두리 안에 들지만, 사주는 실증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이론적으로는 사주에도 자연과학의 법칙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풀이하는 말이 지나치게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박교수는 “에너지와 시간의 낭비인 사주 대신에 좀더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자기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역술인은 “20년 넘게 사주를 봐왔는데 그간 문제가 생겼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반론을 편다. 역학은 있지만 역술인은 없고, 역술인은 있지만 역학은 없는 것처럼 보여, 역학에 대한 논란은 쉽게 매듭지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사람들은 생년월일시를 들고 역술인 앞에 가 앉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