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龍되고 싶은 중국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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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일시적’ 협조


日王 방중으로 경협가속… 군사이해 달라 속으론 경계


‘深感痛心’. 중국을 방문중인 일왕 아키히토는 지난달 23일 저녁 환영만찬회에서 과거사 문제를 이렇게 얼버무렸다. 이것은 2년전 노태우 대통령 방일 때 일왕이 피력한 ‘痛惜의 念’ 발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수준으로, 일본 정부는 이번에도 “불행한 시기+유감+되풀이돼서는 안된다”는 상투적인 어구로 사죄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당초 일본 정부는 자민당 일부와 우익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일왕의 이번 중국방문을 ‘사죄 여행’이 아니라고 부정해왔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일본이 중국 국민에 다대한 고난을 부여했다”는 사죄 부분은 일본 언론들의 자평대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히 밝히고 있어 과거의 사죄발언에 비해서는 일보 전진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하고 있으며 알기 쉬운 ‘사죄’라는 단어는 한자도 찾아볼 수 없다. 또 30만명에 이르는 군인과 양민을 학살했다는 남경사건이나 종군위안부 문제 들을 ‘다대한 고난’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얼버무리고 있어 그동안의 사죄 도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평가가 더 합당할 듯하다.

일왕을 ‘평화의 사자’로 치켜세워

일본과 중국의 언론을 제외한 각국 언론은 이 점에 대해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CNN 등은 “일본천황, 전쟁에 대한 유감만을 표명하고 공식적인 사죄 표명은 유보”라고 보도하고 중국인 2천만명(추정)을 살상했던 잔혹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때마침 일왕의 방중과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독일을 방문하고 있었는데 독일 언론들은 일왕 발언을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 인민의 깊은 상흔에 유감은 표명했지만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대만과 홍콩의 언론들은 “《북경주의보》의 조사에 따르면 대륙 인민의 90%가 일왕이 사죄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기대는 크게 빗나갔다”고 큰 불만을 표시했다.

정작 당사국인 중국 언론의 반응은 기묘했다. 10월24일자 <인민일보>는 ‘환영연에서 아키히토 천황의 인사말’이라는 제목으로 일왕 발언 전문을 게재하는 데 그치고 논평은 일절 싣지 않았다. 또 <공인일보>는 아예 일왕을 ‘평화의 사자’로 치켜세우고 아키히토가 역대 왕들과는 달리 ‘겸허한 인품의 소유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검격히 통제받는 언론이란 사정을 감안하면 중국 언론의 이러한 반응은 예상되었던 것이다. 반일인사와 데모주동 학생을 지방에 격리시킨 중국 정부의 탄압도 여론에 침묵을 강요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음은 물론이다.

중국은 20년전 일 · 중공동성명에서 대일 전쟁 배상금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당시 모택동은 일본군의 대륙침략으로 덕을 본 것은 오히려 중국공산당인데 정쟁배상이 웬 말이냐는 시긍로 허세를 부렸다. 중국은 그 대신 79년 이후 세차례에 걸쳐 엔차관 1조6천8백억엔(현재 환율로 약 1백40억달러)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냈다. 이번 일왕 방중에서 중국이 과거 문제를 덮어두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도 중국식 실리외교가 크게 작용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은 현재 21세기 중엽까지를 경제건설이 처진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상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80년의 국민 총샌산(GNP)을 90년에 두배로 늘리고 금세기 말에는 네배로 늘려 다음 세기 중반까지는 중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3단계 발전전략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또 최근 폐막된 제14차 중국공산당대회에서는 당초의 GNP 6% 성장 계획을 8~9% 성장으로 상향조정하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21세기 중반에 아시아의 4마리 小龍을 제치고 大龍으로 비약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자본과 기술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 6대 종합상사 중국러시 조짐

일본과 중국의 현재 무역액은 연간 약 2백30억달러, 중국의 대일수출액은 5년 연속 증가세를 보여 일본 시장에서 미국 다음가는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며 대일흑자도 4년째 지속되고 있다.

‘11억 시장’을 내다본 일본의 중국투자도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작년 일본의 직접투자는 2백46건 5억8천만달러에 달해 재작년보다 약 70%가 늘어났다. 중국측은 아직도 일본의 절대투자액이 다른 나라에 비하면 보잘것없다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작년 일본의 아세안지역 투자가 10%나 감소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일본 기업의 중국 러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일 · 중 양국의 경제협력은 일왕 방중 이후 더욱 가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6대 종합상사는 일왕 방중에 때맞추어 중국 북동부에 대규모 석유화학 콤비나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상담은 총액 40억달러 규모로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양국의 최대 프로젝트 사업이 된다. 올해 일본의 중국 투자는 15억달러에 이르러 재작년 규모보다 세배나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두 나라의 경제적 접근은 물론 중국의 개혁 · 개방 노선분 아니라 체제 유지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일본은 천안문사태 이후 서유럽 각국의 견제를 뿌리치고 16개월 만에 엔차관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들어 엔차관을 재개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속셈은 중국에 대한 경제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겠다는 데 있었다.

중국은 일본의 엔차관 재개로 개혁 · 개방노선을 추진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 일왕이 한국에 앞서 중국을 방문한 데는 이러한 복선이 깔려 있다.

천안문사태 이후 세곅정세는 크게 변했다. 옛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이 사용해왔던 ‘중국 카드’는 큰 의미를 상실했다. 미국이 최근 대만에 F 16 전투기를 팔기로 결정한 것이 그 반증이며, 미국의 중국정책 초점은 오히려 ‘힘의 공백’을 틈타 군사 진출을 노리는 중국을 봉쇄하는 정책으로 옮아가고 있다

대중강경론을 펴고 있는 클린턴의 등장도 중국에는 골치아픈 문제이다. 클린턴은 ‘자유유럽방송’이 동유럽 불괴를 촉진시킨 예를 들어 가칭 ‘자유아시아방송’을 만들어 중국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발언할 정도로 강경하다. 이 때문에 클린턴의 당선 이후 미 · 중 관계가 더욱 악화되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和平演燮論’(자본주의 선진국이 평화적인 수단으로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한다)을 주장하며 미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경제수단으로 ‘일본 카드’를 사용하려고 일본과의 정치적 접근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로가 상대의 군사위협 의식

이러한 ‘일 · 중 제휴론’은 일본 국내에서도 제기되어 일왕 방중을 성사시킨 큰 추진력이 되었다. 걸프전쟁 이후 일본 우익세력은 ‘?歐人亞’를 주장해 왔다. 일본의 ‘아시아 중시외교’는 아키히토 일왕의 첫 해외방문지로 동남아시아가 선정됨으로써 구체화했고 이번 중국 나들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우익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신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기 위해 일왕 자신이 그 첨병으로 동남아시아와 중국을 방문했다는 얘기이다. 정치대국화 야망을 키워가고 있는 일본은 유엔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오는 95년까지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거부권을 가진 중국의 협조 없이는 그 실현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경제대국 일본과 아시아지역에서는 유일한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국의 정치 · 경제적 접근은 당연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일왕의 방중이 단기적인 일 · 중간 전략상의 합치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이것이 장기적인 ‘일 · 중 제휴’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일본은 최근 중국의 해 · 공군력 증강을 일본의 안보에 직결된다고 보고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우익은 중국을 봉쇄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또 중국의 일부 보수파들은 당면의 가상 적인 미국보다 일본의 잠재적인 군사 위협을 중시하며 대일본 포위망 구축을 제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한 · 중수교 이후의 ‘한 · 중제휴론’, 그리고 일왕 방중 이후의 ‘일 · 중제휴론’은 똑같이 등소평의 브리지게임보다 더 흥미가 없는 한낱 게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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