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유린 팩스로 고발
  • 김당 기자 ()
  • 승인 199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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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지> 지령 300호 … 강기훈씨 출옥 소감 특종 보도



인권 유린 현장을 고발하고 진실을 전달할 목적으로 지난해 9월7일 창간한 국내 최초의 일간 팩시밀리 신문 <인권하루소식>(<소식>·발행인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소장)이 12월3일자로 지령 3백호를 맞았다.

발행 부수 5백여부
한 주에 다섯 번(일·월요일 제외) 배달되는 <소식>의 발행부수는 5백여 부(팩시밀리 발송 포함). 그러나 독자층이 인권 관련 민간 단체와 정부 기관(검찰·경찰·안기부·청와대 비서실 등), 국회의원, 변호사, 신문사, 방송사 등 이른바 여론 주도층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인권 분야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영향력을 지닌 인권 전문지로 인식되고 있다.

<소식>을 발행하는 인권운동사랑방(인권사랑방)에 따르면, 해외로 나가는 부수는 20부, 통신료 때문에 그 중 5부만 팩스로 전송하고 15부는 우편 배달한다. 주요 독자는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호주 홍콩 등지의 한국 관련 주요 단체와 기관들이다. 이 중에는 엠네스티 인터내셔널(국제사면위원회) 런던 국제사무국, 미국 케네디 인권센터, 미국 국무부 한국과 등 한국 정부가 무시 못할 기관 독자들이 꽤 있다.

이를테면 엠네스티 런던 사무국으로 전송된 <소식>은 현지 자원봉사 회원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믿을 만한 중요 인권 침해 사례는 즉각 전 세계 엠네스티 조직에 전파된다.

지난해 안기부가 이른바 ‘남매 간첩’으로 구속한 김삼석·김은주 씨가 엠네스티에 의해 신속하게 양심수로 규정된 것도 그런 연유이다.

인권사랑방은 앞으로 유엔의 인권 관련기구도 <소식>의 정기 독자로 유치할 계획인데, 이를 위해 사전 준비로 <소식> 영문판도 발간하고 있다.

이 신문이 가진 미덕은 마감 시간이 유연한 팩스 신문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하루하루의 인권 상황(핫 뉴스)을 신속하게 전달한다는 데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른바 유서 대필 사건으로 3년형을 살고 나온 강기훈 씨의 출옥 소식 보도일 것이다. 이 날 ‘관례’에 따라 새벽에 출소한 강씨는 대전교도소 앞에서 간단한 신고식(환영식 및 ‘두고 나온’ 양심수 석방 집회)을 치른 뒤 아침 8시께 서울로 와 청진동의 한 해장국집에서 출소 소감을 밝히는 기자 간담회를 가졌었다. 미리 지면을 비워놓은 채 대기하던 <소식>의 한 기자가 전화로 송고한 강씨의 출소 소감 기사가 가장 빠른 특종 보도가 됐음은 물론이다.

재야 단체 통해 밀착 취재
발행인 서준식 소장(29쪽 인터뷰 참조)에 따르면 <소식>은 특종을 좇지 않는 방침을 택하고 있다. 다만 일간지들이 ‘어떤 사건’을 외면함에 따라 <소식>의 기사가 자연스럽게 특종이 된 사례가 많다. 그 대표적 사례는 이른바 신 공안정국 와중에 고등학생들을 무리하게 국가보안법으로 엮으려 했던 ‘샘’ 사건 보도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같은 특종은 <소식>을 발행하는 인권운동사랑방이 다른 재야단체들과 ‘유착’된 관계에서 비롯된 밀착 취재 덕분이다.

신 공안정국에서 이적성 여부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진주 경상대 <한국사회의 이해> 파동의 조짐을 <소식>이 맨 먼저 보도한 것은 제보 덕분이지만, 이 사건에 대한 집요한 속보와 사법부의 ‘이적성 없음’이라는 결론에서 보듯 전문성과 신념에 의한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안·시국 사건 보도에서와는 달리 <소식>이 다룬 국제 인권 기사는 ‘십중팔구’가 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특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 인권 자료도 수집
서준식 소장에 따르면, 어느 일간 신문보다도 풍부하고 정확한 국제 인권 기사를 <소식>이 전할 수 있는 것은 이 신문을 직접 취재·편집하는 홍보실을 뒷받침하는 자료실과 국제연대실 덕분이다. 특히 유엔이나 인권 관련 기구가 발간하는 국제 인권 자료와 정보를 수집해 이를 전산자료(DB)화 하고 있는 자료실과, 해외 인권·종교 단체에서 경험을 쌓은 활동가들의 국제적 네트워크, 전문성이 돋보이는 국제연대실은 인권사랑방의 자랑거리이다.

최근의 동(東)티모르 관련 보도와 자료집은 바로 이 신문이 표방한 인권운동의 전문화를 가장 잘 반영한 사례로 보인다.

광주 학살 진상이 ‘역사의 심판’에 맡겨지는 가운데 창간된 <소식>이 지령 3백호를 맞게 된 지금 이른바 문민 시대의 검찰은 12·12 쿠데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다시 역사의 심판에 맡기려 하고 있고, 집권 여당은 또다시 국회에서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소식>의 창간사 대목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인 셈이다.

‘법이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아니 제도와 국가는 누구의 것이며, 누구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가? 하는 괴로운 질문에 우리는 날마다 맞닥뜨리며 살아가야 한다. 안보와 질서의 이름 아래 인권이 광범위하게 유린되고 있는 사회, 우리는 감히 말하건대 문민 정부의 현실을 이렇게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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