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회부터 구슬려라
  • 길정우 (민족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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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치른 열흘 간의 국정감사에서 정부 정책이 심도있고 균형있게 검증되었으리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회는 두주일 남짓 남겨둔 대통령선거에도 불구하고 밤 늦게까지 회의를 계속하였다. 미국에서는 선거가 있는 해에 2년회기를 의회를 앞당겨 폐회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회기 중에 산적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회의를 강행했던 거이다. 물론 올해는 대통령선거와 함께 하원의원 4백35명 전원과 상원의 3분의 1이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선거전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미 의원들도 선거가 없는 해에 비하여 회기 중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기는 하였다.

한국의 국회는 정기국회 회기를 1백일로 정해놓고 있으나 그나마 각 정당간 의견대립이 심할 경우 회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공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미 의회는 연방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낸 의회를 열어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양당간 합의에 따라 임시 · 하기 휴회 등을 정하고 있다. 미 의회의 회기 중 평균 업무일수는 2백75일에 이른다.

미국 의회와 한국 국회는 모두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를 견제하여 균형을 이루는 기관으로 그 위상이 규정되어 있다. 이같은 역할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예산의 심의와 지출에 관하여 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수행된다. 미 의회는 1년 내내 예산과 관련한 세부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며, 특히 예산 방출을 결정하는 상 · 하원세출위원회의 권한은 막강하다.

자유무역 강조, 한국 겨냥한 언급은 없어

미 행정부의 통상정책에서도 의회의 입김은 대단하다. 한국이 막대한 영향을 받아온 1988년의 종합통상법이라든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 연장법안, 러시아 경제지원 법안 및 외국인 투자규제법 등이 모두 미 의회의 논의를 거쳐 입법되고 행정부의 시책으로 구현되었다. 이는 미 의회의 역할이 실효성을 갖고 광범하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의회는 지지가 결여된 행정부 정책수행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실효성과 지속성면에서 명백한 한계를 지니게 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금융실명제나 토지공개념, 수입규제조치 등 사회정의 · 무역적자 문제와 관련한 주요 경제사안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에도 구체적 대안 없이 언론을 의식한 공허한 주장만 난무했을 뿐, 알맹이 있는 토론은 거의 없었다.

미국에 새로 들어서게 된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한국 수출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클린턴 정부 출범 6개월 내에 외교력 집중해야

올해 미 대통령선거의 주요 쟁점이 국내경제의 회복에 있었기 때문에 클린턴의 선거 전략도 국내경제를 되살리는 구체적인 대안 제시에 집중됐었다. 대외 경제정책은 자유무역주의와 공정한 무역관행 원칙을 철저히 이행하자는 것 이외에 한국을 특별히 겨냥한 언급은 없었다.

이미 대미무역에서 적자로 돌아선 한국에 대해 경제력에 상응하는 시장을 개방하고 공정한 무역관행을 준수해야 한다는, 공화당 행정부와 다를 바 없는 원칙론 이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되지도 않았으며 확정되지도 않았다.

실무진용이 갖추어지고 정부부처가 제대로 운용되기까지 적어도 6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관례를 볼 때 이 기간은 한국정부와 기업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부)차관보 이상 3천여명의 관리가 새롭게 들어서게 될 미국의 새 행정부에 대하여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대한정책 결정의 기초작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번 미 의회에는 선거를 통해 적어도 1백20명 이상의 신진의원이 진출하게 되는데 이전에 비해 더욱 민주당 일색이 되어 전통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강한 이 당은 클린턴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보강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내 이익단체와 외국정부, 업계 및 이를 대변하는 로비스트의 활동은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하는 1월 말을 전후해서 매우 활발해질 것이다. 그때문에 신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의회를 상대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정책구상을 제시하고 이익당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의원들 주장에 끌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는다. 한국은 미국의 새 행정부 관리들의 면모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회의 구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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